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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동행의 스페이스자원의 완성은 행복한 동행입니다.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행복한 동행 / 지구촌 종교 심판과 심판자들 ! ( 35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행복한 동행 / 작성자 / 조옥현 ( cho. ok . hyun )
하늘과 땅과 사람은 하나 !
하늘과 땅과 친구는 하나 !
하늘과 땅과 사랑은 하나 !
하늘과 땅과 지구촌은 하나 !
하늘만큼 / 땅만큼 ... 세계는 21세기에 와서 왜, 미래 예측을 중요하게 생각할까요 ?
< 왜 인류는 미래 예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 >
세계는 미래로 갈수록 불확실성이 증폭되듯이 점증 되고 있는 현상으로 표현할까요 ?
과학 기술의 급속한 발전 등으로 , 기후 변화, 에너지 위기 등으로 자원의 고갈 , 인구 폭등
대내외 경제 사회적 자본론적인 ,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회적 환경 여건의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 주저 앉는 모습으로 , 가속화 된 적자적인 누적으로 , 부정 부패의 현실을
호소 하고 있을까요 ? 국가와 기업, 개인등은 다가올 미래 사회의 변화에 대비하고 불확실성에
따른 위험요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 미래예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특히 통계학
적인, 분석학적인 , 평균치를 주장할수 있는 사회 즉 미래의 예측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를 대비하고 예측하는 능력이 국가와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최우선 과제라고 한다.
세계속에서 위치 파악과 지향할 바람직한 미래상에 대한 방향 설정은 나침판과 같은 존재가
되기를 구제 제도화 관계속에서 원하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 미래학 이란 ? >
과거 또는 현재의 지식 정보를 바탕으로 미래 사회의 모습들을 예측하는 학문으로
바람직한 미래를 건설하는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로 기상 관측으로 ,
기후 관계를 미리 알려주는 기상대 같은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으로 , 받아들이고 있다.
미래학이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를 잡게 된것은 20세기 중반 부터지만 , 그시작은 19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모든 데이타를 종합산출하여 , 분석과 정보와 평가를 바탕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는 학문을 이야기 할수 있는것입니다.
1893년 시카고 세계 박람회에서 당대 최고의 미국 두뇌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100년후의
미국을 예측 하였다. 이중 몇가지를 소개 하면 ?
" 모든 가정에 텔레폰이 설치되어 세계 누구와도 대화를 하게 된다,
" 인류는 하늘을 자유롭게 날게 된다.
" 미국이 북미와 중남미를 지배하고, 세계 초 강대국이 된다.
" 세금이 필요 없을 정도로 경제가, 사회가 발전할것이다.
당시에 예측한 미래의 모습중에서 오늘날 당면하게 느끼는것도 있지만 100년 전에는
파격적인 아이디어 였다. 이외도 SF 문화를 확립한 쥘베른 ( Jules Veme ) , 소설
" 타임머신의 웰스 ( H.G. Wells ) 가 유명하다. 이렇게 20세기 초반까지는 미래를 예측
하기 위해 한 두사람의 지식에 의지하다가 제 2차 세계 대전이후 미래학이 군사적인
과점에서 본격적으로 연구 되었다. 그 선두 국가가 미국으로 세계 최초로 원폭을 개발 하였고
그것을 직접 사용 하였으며 , 또 그영향으로 인하여 세계의 체계를 변화 시키고 , 국제적
금융시스템을 설치하듯 국제 연합 UN을 세워 놓아 세계를 통합 관리하는 문명으로 변화하여
21세기의 첨단 과학의 미래 세계 경제 사회의 문명을 바꾸어 놓았다는것 , 그 누구
보다도 원폭 공격의 위험성에 대해 알기에 , 그 누구도 항거할수 없었다는것이다.
그후 세계의 복지 사회의 제도화 시켜, 경제는 국제적 4대 노동법으로 , 체제를 만들었다.
과거의 역사속에 위인들 또한 , 어느 누구도 미래의 문명을 항거할수 없었다는것이다.
세계의 금융 자본시장으로 국가와 민족의 생존과 번영이 세계 국제 연합기구의 손안에 놓여
이기 때문으로 그 시대적인 배경의 역사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그 누구도 잘 먹고 ,
잘 살수있기 때문이다.
국제적 안보 체계도 세계의체제 변화에 따라 달라졌다.
그 국제적 시스템으로 인하여 , 세계 안보적 정보화 통신시스템체계로 변화 시켰다.
그래서 세계의 모든 국가관계들은 공군을 중심으로 기술예측과 전략 수립을 위한
프로젝트팀을 발족 하였으며 미국은 이를 기반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랜드 ( RAND )
연구소를 설립하여 , 전세계속에서 " 랜드 " 라는 브랜드를 언어 창조 시켰을것이다.
랜드 연구소는 1948년에 설립된후 지금까지 미국 내 안보 및 정치 , 경제에서부터
세계 군사 전략, 테러리즘 , 보건 , 지역문제 , 어린이 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연구 결과를 생산하는 미국 최고의 싱크탱크, 이다. 특히 이 연구소에서 개발한
텔파이 기법과 시나리오 플랜닝은 보다 연구기관, 기업 , 정부부처, 에서 이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 프로그램 프로젝트를 통해서 미래를 기획하여 ,
미래를 예측 하고 있는것입니다. 미래 연구를 통해 우리는 바람직한 미래가 현실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미래의 모습을 미리 예상 하여야 하고,
이에 따른 대안적 미래를 설계 하여야 한다, 미래의 예측은 세계의 모든 단체의
법인화 시켜있기 때문에 , 공인으로 인증을 확실하게 받는것이므로 공신력있는
신뢰적인 모습으로 성장과 발전이 될수 있는것이라고 말할수 있는것이다.
" 세계의 미래학회 ( Word Future Soclety ) 는 2009년 및 그 이후에 대한 미래 전망에
관한 연례 전망 보고서를 발표 ( 2008, 6 )
세계 미래 학회는 다음과 같이 12개 분야에 대한 미래 전망 제시
1) 비즈니스 및 경제 / 2) 컴퓨터/ 3) 인구/ 4) 에너지 / 5) 환경 및 자원/ 6) 보건 및 의약
7) 정보 사회/ 8) 기술과 과학 / 9) 교통 / 10) 가치및 사회 / 11) 직업 및 경력
12) 세계 정세 "
" 예수께서 가라사대 , 세상을 주관하는자도 좋고, 천기를 운용하는자들도 다 좋은데
왜 , 너희들은 표적이 되어 있는냐 ? 라고 경고를 하셨을 까요 ! "
예비된 천국은 목자의 올바른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
천둥소리에 두려워 말라.
이미 벼락이 떨어졌다는 뜻이고
벼락이 떨어졌다는것은
우리가 그에 맞아 죽을 염려가 없다는 뜻임에도
우리는 천둥소리에 놀라 벌벌 떨기 일쑤다.
- 톨스토이 -
또 세계를 자본적인 창조론을 강조 합니다. 하지만 사회는 자신들의 체계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히고 ,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 계승과 세습을 하려고 합니다.
바로 그것이 지구촌의 사회 체계입니다. 하지만 체계를 계승하려면 , 시스템화적인 사회
창조론을 주장 할수 없다는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할것입니다. "
" 세습과 계승에는 창조론이 필요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은것입니다. "
인류가 산다는것은 자연의 변화속에서 인간은 비가오면 비가 오는데로 사는것입니다.
눈이 오면 눈이 오는데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태양이 떠오르면 , 낮으로 살아야 하며 , 달이 뜨면 밤으로, 휴면으로 사는것입니다.
지구촌의 자연 재해 " 쓰나미가, 지진, 그리고 허리케인이 몰려오면 , 스치고가면
우리들은 그 자리에 또 다시 복구를 하고 살아가는것이, 지구촌 사회에서 동행하며
사는 것은 다 그러계 인생이여, 삶이여, 공동체여 ! 하며 , 산다는것은 다 그런것입니다.
바로 지구촌의 인류는 봄, 여름, 가을 , 겨을 , 사계절에 적응 당하며 , 사는것입니다.
미래의 창조적 사회 자본론은 , 한사람이 할수 없는 의미 있는 일을 여러사람이 함께
만들어 가는것이며, 이윤을 목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환경의 가치의 창조로 최선을
다할때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외부환경에 대응하고 내부 혁신을 이루었는지에 대한
소통할수 있는 의사 결정의 전달 방식의 구도적인 체계를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볼때 없어서는 안될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 창조적 자본론 이
가야할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경제인 빌게이츠 회장은 세계 기업들은 각국의 정부나 비영리단체들과 협력해
지구촌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수있는 " 창조적 자본주의 ( Creative Capitalism )
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서 , 적극적인 실현 조치법으로
사회의 경계인들을 . 부랑자와 짚시들 , 가난한자들을 , 정책으로 구제하는 방식의
법을 이야기 하는것이다. 그 에로 들면 , 유럽 통합 기구를 형성하고, 각국의 최고
지도자들이 모여 , 개방 개혁 사회체계속 경계선상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부랑자와
짚시들을 구제하였다는 방식의 법을 말하는것이다.
빌게이츠회장은 세계 최고의 부를 벌어들이는것을 , 지구촌 사회체계의 가난한자들에게
미안하였는지 , 그의 연설 내용은 세계는 더 나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아지고있는 속도는 빠르지 않고 더딥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가는것도 아닙니다. ( 선부론과 균부론 ) 우리는 부유한 사람들에게 유리한 자본주의가
가난한 사람에게도 이익이 될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 빈부 격차 )
저는 이러한 생각을 창조적 자본주의 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
바로 21세기 전후 시대에서 , 부르짖는 소리는 창조 과학이었다.
창조 과학시스템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자들을 위해서 , 사회의 환경의 삶을
개선시켜야 하는 사명을 가져야 한다 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서 부자가 , 있는자들이 ,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것이 곧 창조적 자본주의가
할 도리라는 것을 강조 하였다. 다시 말해서 , 21세기 창조 과학이라고 말하는것이다.
" 인간은 인간을 마음에 두지 않고는 목적이 없는것이다. 그래서 자연적인
과정의 산물이라고 말할수 있다. "
21세기 시작부터 , 지구촌의 인류는 시대마다, 역사마다, 문명을 변화 시킬 욕심으로
진화론과 창조론 과 지적 설계론을 항상 이노베이션적인 모습의 학문적으로 사회를
시끄럽게 , 혼잡하게 , 요란하게 , 혼란하고 복잡한 사회를 만들고 있다.
인류의 진화적인 지적 설계론 즉 창조론으로 간단하게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할때 , 인간을 만들어서 , 남자와 여자로 표현하였다.
인간은 항상 , 남자와 여자가 ,생식적인 방법으로 생명이라는 자식을 만들었다.
하나님의 창조론을 통해서 , 인류는 21세기 까지 이끌어 왔다는것이다,
하지만 , 21세기까지 온 나자신도 , 생식기가 신체에 다른 부분에 , 있지 않고,
내가 낳은 자식들도 , 생식기는 똑같은 곳에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세상이 변론적으로 토론하는 진화와 지적 설계론적인 창조론은 , 인간의 생식기가 다른곳에
붙어있는가 ! 부터 , 우리는 다시 시작하여야 할것입니다.
우리들은 , 인류가 힘을 합쳐 과거부터, 만들어진 사회체계속에서 ,지구촌 환경속에서
진화와 지적 설계론적인 사회 문명을 찾고 , 성장과 발전적인 창조과학론을
주장 하여야 할것입니다.
지구촌 친구 여러분들도 , 우리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
지구촌 친구여러분들의 생명이라는 자식들은 생식기가 신체의 다른곳에 붙어있습니까 ?
아닙니다. , 만물의 영장 즉 인류의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는것입니다 .
지구촌의 사회체계, 환경 즉 문화,와 문명을 잘살수 있게, 계승할수 있게 만들어서
사는것이 , 자원의 완성으로, 행복하게 살수 있는 방법인것입니다.
우리모두 , 열심히 노력하며, 잘살아봅시다. / 아멘 !
지구촌의 엉터리 철학은 어떠한 의미로도 삼색 인종의 동등함을 믿지 않으며, 우월주의가
되어 , 패권주의 다툼으로 , 경쟁과 싸움 그리고 통합 정치를 하였다는것이 모든것이다.
그 예로는 , 과거 독일 나치들과 히틀러를 대표적으로 이야기 할수 있다.
지구상의 많은 학자와 정치가, 종교인들이 많지만 , 또 주장 하는학문도 많다.
히틀러의 " 나의 투쟁 " 이라는 초판 책에서 하틀러는 그 글을 쓰는 당시에 젊은 지구
창조론자임을 주장 하였다. 다른 쪽에서 그가 창조론에 기울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 지구촌에서 우월주의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 모습, 즉 통치자를 표현한것이다.
인간 문화의 존재가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파괴됨으로 인하여
쇠퇴하게 되는것은 철학의 눈으로 본다면 가장 혐오할 범죄이다. 어느 누구도 주의
가장 고결한 이미지에 감히 손을 얹으려고 하는자는 자비로운 창조자에 대한 신성모독을
범하는것이며 , 낙원의 추방에 일조하는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싸워야만 하는것은 우리 인종과 우리인민들의 존재와 번식을 보호하기
위한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인민들은 아마도 , 우주의 창조주로부터 할당 받은 의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어른으로 성숙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내가 전능하신 창조주의 뜻에 따라서 행동하고 있다는것을 믿는다.
유대인으로부터 나 자신을 방어함으로써 , 나는 주님의 일을 위해서 싸우고 있다.
지극한 인간애를 보존 시키고 발전 시키는 일은 , 전능하신 분의 자비로움으로
이 땅에 주어진 , 진정으로 고귀한 소명으로 보인다.
21세기 전후 , 세계 사회체계의 개방 개혁속에서 , 신자유주의을 주장하는 신 나치주의들의
투쟁하는 모습을 우리들은 국제적 언론을 통해서 보았다. 특히 유럽의 가톨릭 교황청의
교황께서 , 과거의 역사는 신나치들과 대항한 역사라고 발표 하셨다.
바로 여기서 , 지구촌의 우월주의 모습들을 볼수 있다.
지구촌의 역사는 우월주의 라는 , 진화와 지적 설계론의 창조 과학으로 체계를 이어나가고
있을 따름이다.
" 21세기 신나치에 의해서 , 로마 가톨릭 교황청은 ,
지금도 지구촌의 인류에게 생명윤리법을 호소하고 , 주장하고 있을 따름이다. "
누군가의 행위를 이해한다는것은
말 그대로 그 이유를 해명하는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행위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존재는 그 행위를 위대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존재는 그 행위를 아름답다고 이야기 합니다.
존재는 그 행위에서 가치를 인정합니다.
존재는 수단과 방법이 될수 없습니다.
존재는 세상에서 가장 존경과 명예를 원칙으로 합니다.
존재는 우주의 유인력처럼 , 자석의 원리처럼 , 이끌어 갈수 있습니다.
존재는 자원의 완성을 행복한동행을 원합니다.
존재는 생명으로 태어나기에 위대한것입니다.
존재는 생명예찬을 하기에 지구촌에서 유지를 할수 있는것입니다.
존재는 진리로 너희들을 자유케 한다는 모습입니다.
존재는 바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그런 사람입니다.
사흘만 볼수 있다면 ( Three Days to See ) - 헬렌 켈리 -
만일 내게 유일한 소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죽기전에 꼭 사흘 동안만
눈을 뜨고 세상을 보는것이다.
만약 내가 눈을 뜰수만 있다면
나는 내눈을 뜨는 첫 순간
나를 이만큼이나 가르쳐준 내 스승
에미 설리반을 찾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손끝으로 만져 익숙해진 그 인자한 얼굴
그리고 그 아름다운 몸매를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 모습을
내 마음 깊숙이 간직해 둘것이다.
그 다음엔 내 친구들을 찾아갈 것이며
그 다음엔 들로 산으로 산보를 나가리라.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잎사귀들
들에 핀 예쁜 꽃들과저녁이 되면
석양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다.
다음날 일어나면 새벽에는 먼동이 트는 웅장한 광경을
아침에는 메트로 폴리탄에 있는 박물관을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같은 밤 하늘의 별을 보면서
또 하루를 보낼것이다.
마지막 날에는 일찍 큰길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아침에는 오페라 하우스
오후에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보고 싶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건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 한복판으로 걸어 나가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쇼윈도우에 진열된
아름다운 물건들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
사흘 동안이나마 눈으로 볼수 있게 해주신
나의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 가리라.
- 헬렌 켈러 -
" 세상은 헬렌 켈러가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일것 입니다. "
2006년에 러시아에서 가장인기 높은 사회학 " 레바다 연구소 " 는 러시아 국민들의
역사의식을 조사 했다. 이결과에 따르면 20세기의 소련 및 러시아 최고 지도자들중에
가장 인기가 높은 인물은 다름이 아닌 레닌이었다.
레닌을 이어 나온 인물은 KGB 출신인 안드로포프 ( 1914- 1984) 와 소련의 말기를
상징하는 브레즈네프 ( 1906 - 1982) 였다.
스탈린은 4위였다, 엘친이나 고르바초프처럼 민주화 및 자유화를 주장 ,개혁한 인물은
가장 인기가 낮았다. 러시아 민족들은 , 세계의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는것인가 ?
또 2003년에 실시된 여론 조사에 의하면 고르바초프 개혁을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20.4% 에 불과했고, 이 개혁이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40.6% 에 달했다. 반대로 1917년 혁명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사람들은 28.2%
였고 ,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람은 37.4 % 였다.
러시아 민족은 , 반세계를 원했던것인가 ?
러시아 민족은 , 안정된 사회를 원했다는것일것이다 .
1990년 대 초는 구소련에서 희망과 낙관이 가득찬 시기였다.
소련 사람들은 미국이나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을 모범으로 보고 그들처럼 시장 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사회를 건설하면 모든 어려운 사회적 문제를 하루 빨리
해결할수 있을줄 알았다. 러시아 민족은 1917년 혁명부터 소련 땅에서 벌인 공산주의
역사적 실험을 그리고 유산을 빨리 없애 버리려고 최선을 다 했다.
하지만 최근에 러시아의 사정은 많이 바뀌었다.
공산주의 독재의 오류와 범죄를 잘 보여주는 자료가 계속 나오고 있지만 ,
이 새로운 증거들이 대중의 의식을 더 이상 바꾸지 못하고 있다.
소련의 과거에 대한 공감이 제일 잘 표시한 사람은 다름 아니라 푸틴 대통령이다.
2005년에 그는 " 소련의 붕괴를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가슴이 없고
소련의 부활을 생각하는 사람은 머리가 없다 " 라고 말했다.
21세기전후 개방개혁, 세계화속 소련의 분열속에서 ,대립과 갈등속에서 , 양극화 사회로
많은 시간이 흘러 잃어버린 70년를 생각하였을것이다.
"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 레닌의 무덤을 보고, 현시대에 존재 가치가 없다는 표현을 하였다.
러시아 독립 기구 사회속에서 의 빈부격차 때문일까 ?
중국의 시장 경제, 또한 선부론에서 , 빈부격차때문에 , 균부론을 선택하지 않았는가 ?
지구촌을 21세기 개방 개혁 정책을 주관한 세력으로 , 세계화로 바꾸어 놓았지만
만족을 할수 없었던 , 다시 탈세계화를 주장하는 분위기는 무엇때문일까 ?
현재의 사회적 지위를 불만족 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중에는 과거 사회주의 시대 때
특권이 많은 군사공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이야기한다.
러시아 독립기구를 형성시키는 과정에서 , 위치다툼으로 인하여
최고의 지도자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 투쟁하였기 때문일것이다.
구소련에 대해 공감을 갖는 사람 대부분은 사회주의 경제때문이 아니라 , 잃어버린
초강대국 지위를 아쉬워 한다 . 이러한 신흥국가주의, 민족주의는 현재 러시아의
사회 분위기에 심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1990년대 중반부터 소련 사람들은 연방의 붕괴를 정신적인 문제로
보지 않았지만 세월이 갈수록 초강대국을 잃은 러시아 민족이 수치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생활형편이 미국이나 서유럽을 능가하는 수준까지 향상
될줄 알았다. 그러나 1990년대 소련은 사회 혼란과 경제 위기가 도래하여 자본주의가
초래할 경제적향상을 희망했던 서민들의 실망이 클수밖에 없었다.
2007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사람은 미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보고 중국을
제일 우호적인 국가로 생각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에서 민족주의 , 인종주의가 과격해지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극한 민족주의, 극우 인종주의, 의견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네티즌이
많을 뿐만 아니라 세월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것 같다.
바로 탈소련, 러시아가 , 독립기구연합을 이끌기 때문일것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는 인종의 평등을 기본 원칙으로 선언한 ,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러시아는 민족주의와 인종주의가 빨리 성장하고 있는것이다.
" 세계 러시아 민족들이여 !
힘내어라, 그리고 술에서 빨리 깨어나서
세계가 원하는 등불이 되어라. "
- 러시아 협의회 일동 -
과거부터 , 러시아는 민족 자결을 인정하기도 했고 모든 소수 민족들에게 폭넓은 자치권을
약속했다, 사실 이러한 소수 민족 정책은 공산당의 승리를 초래한 요인중의 하나로 볼수 있다.
1920년대 초에도 공산당 정부가 약속했던 민족자결 원칙을 실현하여, 민족 평등과 무차별에
대한 약속은 결코 선전이 아니라고 평가 하고있다.
다시말해서 소련은 형식적으로 민족국가로 구성된 연방국가였다.
공화국숫자가 1922년에는 4개국가에 불과했지만 , 1950년대 중반에는 15개가 되었다.
1920년대 당시 공산당 고급 간부들의 경력을 보면 제정 러시아에서 심한 차별을 당했던
유태인들을 비롯한 소수민족출신이 적지 않았다.
1930년대 중반까지 소련 정부는 소수민족들에게 중요한 특권을 주었다.
소수민족 출신이면 대학 입학이나 사회진출에서 슬라브계 출신보다 더 쉽도록 했다.
재미있는 사례는 중앙 아시아였다. 공산주의 혁명까지 전근대 사회로 남아있던
이 지역에 터키어부족이나 이란계에 속한 수많은 방언을 사용하는 수십개 부족들이
있었다. 이들은 민족의식이 전혀 없었고 자신의 정체성이 왕이나 종교에 따라 결정했다.
소련은 중앙 아시아 지역에서 5개 가맹공화국을 만들어 각 공화국마다 어떤 방언을
" 문화어 " 표준말로 결정하여 학교, 신문, 방송을 통해 확산 시켰다.
지금 중앙아시아 지역의 5개 독립국가는 모두 소련의 민족정책의 결과이다.
1991년 역사는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소련 연방국가가 완전히 붕괴 되어
러시아는 250년대 걸쳐 늘어 놓은 국토를 하루 아침에 버렸지만 독립국가가 되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러시아가 소련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러시아 정치에서 민족주의는 주변세력으로 남아 있었다.
소련 붕괴 직후 소련 사람 대부분의 희망과 기대는 공산주의 체제와 " 기생적인 "
소수민족의 부담에서 벗어난 나라가 짧은 기간동안 미국이나 유럽 생활 수준을
능가할뿐 아니라 미국에 도전힐수 있는 초강대국이 될것으로 생각했다.
" 민족주의는 자신의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민족과 비교해야만 하였기 때문일것이다."
통합된 러시아를 미국처럼 초강대국으로 계속 인정해줄것이라고 생각했을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희망대로 되지 않았다.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가 심한 경제
위기에 빠졌을때 서방의 지원이 없지는 않았으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또 미국을 비롯한 서양 국가들은 러시아의 위기를 이용해서 모스크바가
" 러시아의 자연스러운 영향권 "으로 여기는 지역에서도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
시켰기 때문이다. 다시말해서 러시아는 통합세력이며, 개방개혁을 주관하는 세력이다.
하지만 , 역행적으로 서방세력은 , 러시아를 개방 시켰던것이다.
통합된 러시아는 , 모든 분야에서 , 특히 ,경제와 종교정책에서 개방을 할수밖에
없는처지가 되었던것이다. 개방 개혁을 위해서 양보할수밖에 없는처지에 놓였기때문이다.
러시아의 고르바 초프 대통령의 아시아를 향한 개방 개혁의 정책은 실패라고 생각해본다.
바로 미국의 통합 정책이 경제와 금융에서 위기에 처한 이야기로 볼수 있는것이다.
" 러시아의 영향권 " 은 구소련의 공화국이나 세계 위성국가였다.
하지만 이들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해 적대감과 불신감이 컸졌기때문에 미국이나 ,
유럽 통합기구의 나토연합들은 러시아의 진출을 막을수 있는 세력으로 보고
미국의 정치 참여를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외교적으로통합 러시아는 약점이 되었다.
러시아가 주관하였던 개방 개혁 통합정책으로 인하여 , 역류현상으로인하여
러시아 안으로 많은 이민자들이 투자가와 사업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여,
다원화 문화와 자본시장이 형성이 되고 ,국제적 사회의 오류와 충돌하는
다문화와 , 민족주의가 만들어져, 이주와 이민 정책으로 경쟁을 하기시작하였다.
러시아는 잘사는 나라가 아니지만 모스크바를 비롯한 대도시에서 돈을 버는 기회가
많다, 모스크바에서 미숙련 근로자의 월급은 300-400 달러 정도이지만
중앙 아시아 독립국가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30달러를 벌기 힘들다고 이야기 한다.
그래서 구소련 국가 출신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에서 취업하려고 한다.
이민자 대부분은 3D 업종에 종사하고 있지만 , 수많은 경우중 소기업, 특히 상업을 하는
이민자들이 있다. 현재 이민자들은 압도적으로 카프카스 산맥이나 중앙 아시아 출신
이지만 중국, 베트남 이민자들도 있다.
이민자 대부분이 불법체류자라고 합니다. 그들에 대해 통계가 정확하지 않으나 최근
추정에 의하면 현재 러시아에 체류하는 이민자들은 600- 700 만명 정도이다.
전체 러시아 인구의 5% 정도이다. 그래서 그런지 인종주의 차별과 폭력이 많이
일어나기도 한다 . 사실 이민자 대부분이 " 이민자가 아니라 러시아 국적을 갖춘
소수민족이 많다고 한다. 다시말해서 러시아 우익 인종주의와 극우파 민족주의는
항상 위협하는 세력으로 이야기 할수 있다고 한다.
21세기 지구촌의 개방개혁의 통합정책속에서,미래예측의 사회체계의 로드맵은
어느 방향으로 청사진을 세워놓을것인지 , 불확실한것은 현실이다.
로드멥은 말그대로 도로지도이다. 어느 누가 더 빨리 , 네비게이션 으로 마래의 비젼이라는
길을 찾을것인가 ? 지구촌 친구 여러분들도 함게 찾아볼수있기 바랍니다.
커리어의 관점으로 , 개발과 계획을 명확히 세워놓을수 있는 , 끊임없이 노력할수 있는
도태되지 않는 커리어적인 로드멥 을 우리는 미래의 비젼으로 제시하여야만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특성이나 특질을 갖고 있으므로 자기와 같은 사람은 지구상에
단 한명도 없을것이다, 하지만 , 공동체의 생활속에서는 각자의 업무를 분담하기에
다 같이 같은 일을 , 공통된 작업을 그룹으로, 팀을 이루어서 하는것입니다.
성공을 너무 결과론적으로 보지말고, 참모습의 삶으로 보아야 할것입니다.
21세기의 과학문명을 우리들은 맞이 하였다.
지구촌의 미래 과학의 문명을 이끌수있는것 ,세계를 이끌수있는 사회제도는
무엇으로 표현할수 있을까 ? 우리들은 많은 학문을 제시할수 있을것이다.
지금 현실은 지구촌의 경제위기, 금융위기, 자원위기, 인구위기 ,분쟁과 전쟁위기 등으로
국제 관계는 위기에 허덕이며, 살아가고있다,
이 위기를 극복할수있는 방안으로는 , 많은 사회제도를 제시할수있을것이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사회제도를 추천하고 싶다,
지구촌 친구 여러분들도 , 자신이 알고 있는 방법과 대책을 제시하여보아야 할것이다.
세계의 로펌을 소개하고 싶다, 로펌이라고 하면, 생소하겠지만 , 항상 우리주변에서 해결사
역할를 하는 , 법무법인체 즉 로펌 사회제도를 이야기하고 싶은것이다.
" 로펌의 정의는 변호사로 구성되어 법률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말한다.
전문분야로 나뉘어 다양한 종류의 서비스와 자문을 한다.
세계적으로 영미권 로펌 제도가 강세이며, 선진국일수록 규모도 매우 크며 세계 각지에
분포해 있다. 국제 로펌제도가 ,위기속의 지구촌을 살릴수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가진자들의 로펌이 아니라, 노동자의 로펌제도를 활성화 시켜서 , 투쟁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볼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구촌 사회를 열려있게 만들수있는 로펌의 역할은 무엇으로 표현할수 있는것인가 ?
국가관계속에서 , 대통령의 변호인단부터, 시작하여, 사회 경제, 모든 분야, 특히
전쟁, 분쟁을 해결할수 있고, 사회체계속에서 종교단체의 모든것을 해결할수 있으며,
특히 서민들의 민생을 대변할수 있는 , 보호정책을 이야기 할수 있는것입니다.
과거에는 있는자들의 로펌 즉 특권으로 이야기하였습니다. 하지만 , 21세기 미래에는
노동자, 인민들의 민주 인권투쟁을 대변하여,시위적인 투쟁을 줄일수 있는 방법이며,
복지사회를 유토피아 로 만들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해봅니다.
미래의 사회를 창조 과학의 시대라고 하면 ,현실의 경제, 금융위기 사회환경을
이끌수 있는 방법은 로펌의 사회제도로 미래를 열수 있을것이다.
아직까지도 로펌의 제도화의 역할의 중요성을 우리들은 모르고 , 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로펌의 제도는 , 오랜역사속에서,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으로
통합체계를 만들었다고 할수 있을정도로 우리의 삶과 질서에 커다란 변화를 바꿔놓았다.
국제적 사회체계의 금융시스템 제도와 유엔국제연합의 활동을 공인과 공증을 하는 과정으로
, 로펌의 역할로 보고 있는것이다. 지구촌의 모든것을 변호해 주는 제도를 로펌의 제도라고
이야기 할수 있는것이다.
21세기 미래 세계의 사회체계, 즉 로펌 제도를 활성화 하여 미래 예측을 할수 있을것입니다.
유엔 국제 연합은 , 세계 금융시스템과 세계 안보는 로펌 제도를 활성화 시키는것이 ,
사회 환원하는길이라고 생각하여야 할것입니다.
세계 로펌의 사업활동만큼은 다양한 사회 활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무료 법률 서비스와 자선활동, 국제분쟁해결지원, 아동구호운동,등을 통해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세계적 법률회사인 만큼, 사회 활동의 범위는
미국을 넘어 지구촌 전체에 미친다.
활동의 목표는 법률 시스템에 접근할 여력이 없는 취약계층에게 법적 도움을 주는것이다.
세계적 로펌단체들은 아동의 권리보호, 저소득층의 이주지원, 과 보호시설마련, 예술 진흥.
환경규제, 주택 공급 , 가난구제와 같은 분야에 기여하고 있다.
고객들 스스로 무료 봉사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도록 도와주는 역할도 한다.
대표적 활동은 다음과 같다.
1) 기후변화법 제정 지원 ( CCLaw Assist )
2) 각국의 청소년들에게 글로벌 문화 보급
3) 국제 분쟁해결지원
4) 재생 가능한 에너지와 국제법 사업
5) 아동구호 사업
나는 믿는다. 그분도 가실때 , 누구처럼 ... " 이제 나도 다 이루었다. " 라고 하셨으리라고!
그렇지 않고 죽으러 남과 북을 왕래하기는 없었으리라. 내가 이땅에 내뜻을 이루러온것이
아니고 다만 아버지의 뜻을 이루러온것이 아니고 다만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와서
내가 할바를 다하고 그 아버지의 뜻을 이땅에 뿌리고, 가노라고... 그러셨으리라. 고 믿는다.
몸이 아무리 가까우면 뭣하는가 ? 지척도 천리이며, 몸보다 마음이 성령으로 하나되면
천리도 지척인것을 ... 그 씨앗이 싹틔우기가 이리도 더딘것도 아버지의 뜻이런가 ?
우리는 그것을 따질수없다. 그저 앞 뒤를 헤아릴때가 아니다.
옆에서 손잡고 격려하며, 서로 긍휼로 하나 되어 갈거라고 보내진 사람만 잃지 말고
갈일이다. 그 안에서 가라지가 있다는것이 아프지만 애통하는자만 복을 받을것이다.
우리가 살아서 그렇게 한 너를 위한 일이 결국 나를 위해 돌아온다는것을 믿는다.
예수의 길이 그랬다는것을 믿는다, 지구촌의 모든 성자의 길이 그랬다는것으로
주님의 성령이 하나가 되어 일치하다는 소리가 지구촌의 외침으로 다르지 않다는것을
나는 믿는다. 어느 사상가의 울분이 토해 나와 세상에 빛이기를 바랍니다.
지구촌의 정상들의 미래 예측의 정책은 어떤 문제들이 있는가 ?
그리고 미래의 문명을 변화 시키고 바꿔놓을수 있을까 ?
" 미국의 벽을 허무는 브릭스 ( BRICS ) , 첫 정상회담 "
브릭스 ( BRICS ) 라고 하면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네나라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 신흥 경제 4개국이 밤사이 러시아에 모여 처음으로 정상회의를 열고 국제 금융시스템
개혁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채택했습니다.
후진 타오 중국 국가 주석과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룰라 브라질 대통령 , 만모한 싱
인도 총리 같은 세계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세계의 국가관계의 회원국 모습들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브릭스 정상회의, 개최의 의미와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
사상처음으로 브릭스 정상들이 공식적으로 모여 회의를 했는데
바로 부릭스 정상회담 자체가 최대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미국등 , 선진 7개국 G7 이라고 합니다. 선진 7개국 주도의 세계 증시에 대한
어떤 반감이 이들을 모이게 한 배경이 있고 , G7 에 대해 나름의 도전장을 내미는
회의가 바로 , 브릭스 ( BRICS ) 정상회의 라고 할수 있는것입니다.
세계 문명의 발생지인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개막 했다.
그 내용으로는 , 기축 통화 문제가 논의 되었고 , 이와 함께 국제 통화기금인 IMF 에서
개혁을 비롯한 국제 금융질서 재편 방안 ,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공동대응방안
그리고 주요 20개국, G20의 위상 강화 방안 등이 주로 논의 되었다.
이번 정상회담논의에 가장 관심을 끌었던 대목이 기축 통화 문제였다.
달러화를 대체할 기축 통화문제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논의가 될것이다.
브릭스 국가들의 미래적인 경제적 위상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에도 과도한 무역수지 적자가 중국등과 같은 신흥개도국들의 미국 채권매입등
으로 보전되는 소위 글로벌 인밸런스 , 글러벌 불균형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이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을것이다. 중국, 러시아, 등이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국제 통화기금의
채권매입, 그리고 국제 통화기금의 의결권 확대, 이것은 기축 통화 대체 문제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인 중국은 이미 국제 통화기금에
3.66% 의 의결권을 갖고 있습니다. 이 자체로보면 벌써 불균형적이지 않습니까 ?
그리고 러시아도 2.69% , 인도와 브라질이 각각 1. 89% 와 1.38%의 의결권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이 16. 77% 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과 러시아는 국제 통화 기금의
채권을 매입을 통해서 의결권 비융을 높이면서 ,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여 가겠다는
전략입니다. IMF 는 채권국과 각종 중앙은행들을 상대로 채권을 판매하고 있는데
바로 이것은 특별 인출권 등으로 점차 달러화를 대체해보겠다는 것이 브릭스 ( BRICS )
정상들의 전략입니다.
" 달러화를 대체하는 새로운 기축 통화 도입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 지구촌의 미래 경제를
변화 시킬수 있는 방안이 제시 될수 있을것인가 ? 제시할수만 있다면 세상이 바꿔질것이다.
브릭스 네나라의 정상회담 직후에 나온 성명의 내용을 보면 국제 금융기구 결정의 체택과
이행에서, 민주주의와 투명성, 견고한 법적 토대 등을 강조했다.
브릭스가 대응할 내용이다, 특히 오늘날 전세계가 글로벌 금융위기, 또 경제 위기의 고통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 그리고 정작 이 문제를 발생 시킨것은 선진국입니다.
물론 산진국 국민들도 고통을 받고 있지만 , 개도국 국민들의 피해가 더욱 더 큰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브릭스와 같은 경제 신흥국가가 오히려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면서 세계 경제
회복의 구원투수로 나서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불공정한 상황, 조화롭지 않은 세계 경제
질서를 개선해 보겠다는것과 국제 통화 기구를 견제 해보겠다는 그들의 의미라고 생각할수
있는것입니다.
또 다른 주요 의제로 UN 의 역할, UN의 총체적 개혁문제가 거론이 되었다.
지금 개도국 문제가 더욱 더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것에 대해서 선진국들이 적극적인방어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이런것들에 대해서
선진국들이 적극적인 방어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이런것들에 대해서 조금 더 적극적이고
공정하게 문제를 해결하는것들이 제도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 브릭스 국가 들의
입장이라고 한다. 브릭스 4개국이 세계 GDP 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15%라고 한다.
이런 경제 규모뿐만 아니라 인구 비중은 더욱 더 큽니다. 약 브릭스 4개국 인구가 29억명
정도인데 전세계 인구의 40% 를 차지하고 있다.
외화나 보유국의 42% , 그리고 특히 이번에 기축 통화문제와 함께 중요한 미국 국채를
사실상 G7 보다 브릭스 국가들이 더 많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G7 이 약 9.255억 달러치의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데 비해서 브릭스 4개국이 약 1조 달러
이상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브릭스 국가들이 미국 국채를
팔기 시작한다면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도 혼란을 피할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또 다른 의제로는 브릭스 정상회담에서 앞으로 4개국 정상회담을 상설 포럼화 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브릭스가 단일 경제 공동체를 만들어서 공식적인 연합체게의
기구로서는 공식적인 경제 블럭으로 진화할 가능성은 없다.
브릭스가 미래의 단일국가로 연합기구체계로 만들어질 확률도 없다.고 생각한다.
먼저 아시다시피 , 지리적으로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브라질은 국제 질서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핵을 다른 나라와는 달리 보유하지 않고 있다.
또한 경제적 격차가 각각으로 보면 , 너무크다는것과 중국의 비중이 나머지 3개국을
합친것보다 크다는 것을 이야기 할수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브릭스 국가들이 공식적인
경제 블럭 으로 당장 진화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 국제적 미국의 벽을 허무는 브릭스 ( BRICS ) 첫 정상회담으로 영향이 반영되었는지
모르지만 브릭스 정상 회담의 영향때문인지, 지켜본 , 미국은 , 금융 규제 개혁안을
발표했다 합니다. 미국 정부가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 FRB 에 강력한 규제 권한을
주는 금융 개혁안을 발표했다.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들은 이 개혁안에는 FRB 가
금융 시장 전반의 문제점을 점검하는 역할을 맡아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기구로서의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된다고 보도 했습니다.
" 다가오는 미래 사회는 노인이 없다 . ( 고령화 사회 ) "
베이비 붐 세대들이 현재 가장 숫자가 많은 세대이며, 가장 영향력이 높은 세대이다.
1945년 2차 대전 이후 즉 1946년 생부터를 10년간 태어난 세대를 베이비 붐 세대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1953년 한국 전쟁이후 탄생한 세대를 베이비붐 세대라고 한다.
서구에서 이 베이비붐 세대는 워낙 숫자도 많고 , 산업화 시대를 이끌어온 역꾼들이며
강건한 의지를 가진 세대로, 지구촌 사회를 바꾸면서 커 왔다.
그들이 몸에 딱 맞는 옷, 가지른한 머리손질이 싫고, 캐쥬얼 세대라고 하며 , 자유를
원한다면서 " 히피 " 운동을 벌인 세대이다. 곧이어 이들이 인권운동 즉 흑인 인권운동
여성인권운동, 남녀 동등운동, 여성 우월시대등의 운동을 벌였다.
이들이 월남 전쟁을 반대하면서, 반전 운동의 기수가 되었고 , 이들이 문화운동을
벌이면서 전위 예술가등이 탄생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마침내 " 야피운동 " 까지 벌려 혼자 아이없이 잘먹고 잘살자는 저출산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들이 노인이 되어 은퇴하는 시기가 막 2006년 부터이다.
이들은 이미 노인 인권운동을 시작하였고, 1979년에 준비 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10년후 1989년에 , UN 아동권리협약을 만들어 아동의 시설수용을 불법화 하였듯이
이들이 조사한 결과 즉 노인들이 시설수용을 거부하고 각자 자신의 집에서 끝까지
거주 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하고, 노인 시설수용거부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은 지금 막 수많은 노인 시설을 지어 노인 복지를 확보하겠다고 하지만
이 " UN 노인 권리협약 " 에서 시설수용을 불법화하면 , 재택 복지 즉 성인 가정위탁으로
갈수밖에 없어지기 때문에 1979년에 미국 연방법으로 1989년에는 대부분의
미국 50개주에서 성인가정위탁을 법으로 제정, 운용하기 시작 하였다.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진행되는 나라가 한국이다.
노인 인구는 2000년에 7.2% 로 고령화 사회 ( Aging Society ) 에 진입한 이후
2018년에 14.4% 고령사회에 들어서고 2026년 20.0% 로 초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2050년에는 이 숫자가 34.4%로 세계의 최고령국가가 될 전망이며, 그것도 합계 출산율을
1.4% 정도로 유지할때 그러하고 , 지금과 같이 출산융이 1.2%수준이 유지될 경우에는
2050년의 노인 인구 비율은 40% 가까이 될것으로 보인다.
한술 더떠서 맥켄지 보고서는 2050년에 55세 인구가 절반이 된다고 보며
유엔 미래 포럼연구 결과는 1900년대 지구촌 백인 인구는 50% , 2005년 백인의 인구는
20% , 2050년 백인의 인구는 2%로 준다고 한다. 2020년 중국인구는 19억 , 인도는 17억
아프리카 16억 , 이 되고 아시아인구가 54억이 된다고 한다. 바야흐로 백인은 사라지고
아시아 인구가 늘어난다. 2050년이 되면 미국은 멕시칸 남미인들이 미국을 접수하고
유럽은 아랍 아프리카인들이 접수 한다고 한다. 다 출산율 때문이라고 한다.
서구의 경우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로 변화하는 소요기간이 상당히 길었다.
프랑스는 115년, 스웨덴은 82년 , 미국은 69년 , 그리고 영국은 46년
그리고 일본은 25년이 걸렸다. 이들은 산업발달과 더불어 노인 인구가 서서히
증가 하였기 때문에 노인 문제해결을 위한 자원조달과 서비스 개발을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점진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실시해 올수 있었다.
한국의 경우는 2000년에서 2022년까지의 불과 22년 만에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로
변하고, 그보다 더 짧은 2022년에서 11년 후 2033년 경에는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다.
21세기 시작부터 고령화 사회를 부작용 사회라고 말하는것은 , 인류를 불신 시키고
인류를 말살 시키려는 작업 즉 죽음의 행진 이라고 이야기 할수 있을것이다.
하루 빨리 생명윤리법으로 , 충효의 사상 바탕으로 , 지구촌의 질서가 회복 되어야
할것입니다. 과거부터 , 고령화 시대에 애견하고 , 21세기 복지 사회를 강조하고,
발전 시켜왔기 때문이다. 지구촌안에서 자식들이 태어나는것까지도 출산율까지도
문제를 제시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앞으로 출산율저하로 그 비율이 선진국의 수준까지
갈것으로 본다.
가족부양하는 기능이 바뀌고 핵가족은 자녀 양육에 치중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고
가족부양관계에서는 고령화 사회가 될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핵가족으로는
고령화사회의 부양에 치중를 할수 없다는것이다. 핵가족 사회는 , 부모를 부양하기
힘든 제도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것을 빨리 이해가 될수 있을것이다.
대가족 제도에서도 , 부모를 공경한다는것도 매우 힘든 사회로 이야기 한다.
핵가족 사회 제도는 부모를 공경한다는것은 복지 시설을 이용하는것 뿐이 없다는
결론에 이를수 밖에 없는것을 명심하여야 할것입니다.
우리들은 미래 사회를 위해서 충효사상에 대해서 꼭 반성하여야 할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믿음의 모습일것입니다.
"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가족이 축소되고 , 해체되어 친족 공동체가 악화되고
공동체로부터 분리되고 확대 가족이 핵가족으로 축소되어 핵가족은 개인으로 분리
되는 단계적 변화를 거쳤다. 가족과 가족밖의 공동체인 연대가 약해져서 가족이 고립
화 되고 가족의 규모는 줄어 든다. 가족 변화는 고립화, 축소 , 해체로 가고 있다.
미래로 갈수록 친족 공동체가 발맞추어서 , 해외로 이주와 이민으로 이사가는 과정에서
고령화 사회의 부양관계가 먼저 해체된다. 취업등 노동시작의 참여와 교육 등 , 개방
개혁의 영향으로 세계화에 분열이 되어, 가족제도는 없어지고 해체 될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본다. 세계 가정 연합 단체가 결성 되어 , 인권을 주장하고, 평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세계화의 정치적, 정책적모습의, 쇼로 인하여 점점 더 가족이 파괴되는 현상이
만들어지고 있는것도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 다원화 문화 )
" 가족이란 ? 생계를 같이하는 혈연이나 결혼 입양으로 맺어진 공동체라고 할수 있다.
( Gough , 1922, 24 ) 저출산으로 가족이 변화를 겪는데, 이를 가족 다양화라고 보고
있을수만은 없다. 핵가족화, 이혼 , 가족의 부양 및 양육 부담감 증가 , 저출산으로
나타나는 변화를 막거나 과거의 가족제도로 되돌리거나, 불가능하다면 대안이 있는지
찾아보아야 한다. 가족 사회복지 정책이란 ? 사회가 가족자체를 지원함으로써 가족이
스스로 가족 구성원의 행복을 지켜주기 어려운 상황을 개선하는 전반적 대책이라고
할수 있다. 가족 연대를 강화 하거나 , 가족해체를 예방하기 위해 가족을 보호하거나
가족 부양 역량을 보완하는것을 말한다, 개인주의를 강화 시킴으로써 가족 밖의
공동체는 물론 , 가족 공동체마저도 파괴하는 경향을 보인다. . 이런 이산의 직접적
계기를 제공하는것은 노동시장이다, 일반시장의 상품 이동은 상품만의 움직임입니다.
하지만 노동시장은 운송 물류가 유통적으로 인력지원이 이동하듯이 , 노동시장에서는
상품과 그 소유자도 같이 이동할수밖에 없는것 같다, 그래서 그 소유와 분리 시킬수
없다는것이다. 노동시장의 상품 이동은 노동력이라는 상품 자체의 움직임일뿐만
아니라 그것을 소지한 사람의 움직임도 같이 한다. 그래서 노동시장의 거래는
기존의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시간과 공간의 관계가 성립될수 밖에 없는것이다.
바로 21세기 세계화 개방 개혁의 사회체계에서 인력의 자원을 물류혁명이라고 ,
국제사회에서는 규정하고 있다. 그 예로들면 21세기 시작의 문명을 , 바코드 물류
혁명으로 , 운송과 유통으로 자본론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 바코드 물류를
더욱 발전하여 , 유비퀘터스 바이오칩 ,RFID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는 산업 자동화 시스템으로 세계사회체계를 만드는것으로 자본주의적, 분업화가
일반화 되면서 무수한 직업들이 만들어지고 , 가족원들이 다양한 노동시장에 참여 하면서
가족원이 , 값싼 인력 자원을 얻기 위해서 인력 자원이 싼 , 지구촌의 지역으로 몰리는
시장 경제의 모습 때문이다, 하지만 , 지방 자치제도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와 같다고
긍정적으로 보면 될것이다.
노동시장에 참여한 남성들의 노동은 상품 생산, 즉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이지만
여성의 가사 노동은 상품을 생산치 않는 가치도 생산치 않는 노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21세기 사회에 와서는 ,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 가사노동에서 떠나가는 , 사회의
노동시장으로 여성들도 몰려들고 있으며, 맞벌이 부부로는 전향하면서 , 노동 시장의
판도는 많은 변화 시켜가는 인력자원의 남녀의 평등을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사회속에서 남녀 간의 불평등 구조가 형성될수 없는 인력 자원의 혁명이 이루어
졌다고 이야기 할수 있는것이다.
" 생산 노동은 화폐로 계산 되지만 , 가사 노동은 화폐로 계산되지 않아 , 국민 총생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21세기 미래의 사회는 가사 노동도, 화폐의 가치로도 인정하는 사회가
되어야 할것이다. 가사 노동을 가정의 관계로만 이야기하여서는 안될것입니다.
시장의 원리가 노동시장이 부부관계를 분리의 계기를 제공하면서 , 전업주부가 노동시장
즉 상품생산 시장이 확대 되어야 하고, 산업 자동화 시스템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 남녀
노소 누구나 만족할수있는 , 노동 시장이 형성 되어야 할것입니다.
하지만 , 현실은 산업자동화 생산 라인 즉 생산시스템으로 인하여 노동시장이 축소 되어
있으며, 인력이 많이 필요치 않는 , 생산 라인 구조로, 국민 ( 노동, 근로자 ) 모두가 불만을
토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래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자본 축적을 위해서는
상품시장이 확대되어야 하고 저렴한 노동력 대신 값싼 여성 노동력을 구매한다.
현실적으로는 노동시장에서 남성과 여성이 경쟁하면서 주부를 시장으로 끌어내 가족을
통합하고, 가족의 안팎 구별을 없애고 시장 보편주의, 즉 보편시장 ( Universal Market )
이 확립 되었다. 여성이 노동시장에 참여함으로써 남녀 간의 차이에 바탕을 둔 상호의존이
약해지면서 동등한 증가로 독립성이 강해지는 사회 구조체제가 만들어졌다.
남녀의 물질적인 상호의존은 사회적 생산성이 증가하기 때문에 더욱 더 약해지면서 결혼도
줄고 이혼이 늘어 난다. 여성 노동시장 참여로 인해서 남녀간 분업 체계가 세워지고
역할의 갈등이 생긴다. 또한 가정의 부작용 오류는 남녀 갈등이 세대 갈등과 중첩되어
나타나며 , 가부장제로서 확대 가족이 주로 며느리와 시부모간 갈등, 그리고 여성 노동시장
참여로 부부간의 갈등이 중첩되어 나타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 결혼, 이혼, 재혼
동거, 미혼, 의 삶의 유형이 나타난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비 가족 현상이 나타났다.
고 이야기 할수 있다. 가족이 공동체로부터 더 분리되고 , 더 축소되고 더 해체되는것을
의미한다. 가족 자체는 물론 , 결혼과 이혼도 , 약혼과 파혼도, 가족의 속박과 책임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등을 구가 할것이다. 가족 해체는 가족 부양 능력 약화가 문제로 출산을
기피하는데 부양과 출산을 누가 대신 할것인가 ? 사람을 고용하여 부양 받는데는 철저한
이해 타산적 관계인데 인간이 행복할수 있는가 ?
국가가 사회를 지속 시키고자 한다면 국가가 세금을 거둬 출산과 양육을 직접 담당하거나 ,
사업자에게 위탁하는수밖에 없다. 평등 사회에서 사람들은 세금을 내고 출산과 양육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 전문가의 손에 맡기는 사회가 된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가족 친화적인 방식으로 변화 타협을 추구해야 한다.
전통적 가족 그자체가 아니라 공동체적 인간 관계 개선이다.
변화된 조건속에서 공동체적 인간관계르 유지하려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지난 50년간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가족 안팎의 공동체는 약화 되고
가족은 고립화, 축소 해체의 길을 걸었다.
세대간에 남녀간 갈등과 분열이 일고, 가족의 부양 기능이 약화 되고
약자를 기피하게 되었다. 그러면 새로운 가족 모형 찾기에 사회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실천은 가족과 지역의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가족 사회복지 정책의 노력이 절실하며, 가족 공동체에 대해 시장주의를 완화 시켜
나갈 필요가 있으며 , 가족의 독립 보다는 가족간의 연대를 , 가족의 축소보다는
확대를 가족 해체보다는 통합을 지향 하여야 한다.
" 가족 해체보다는 통합을 , 축소보다는 확대를 , 고립보다는 연대를 추구 하여야 한다.
인류를 위해 자본주의가 존재하지, 자본주의를 위해 인간이 있는것이 아니다.
가족은 행복한 삶의 동행자이며, 연대를 보호 강화하기 위해
자원의 완성을 위해서 사회적인 조치를 제도화 하여야 한다.
인간 관계를 위해서는 시장 외적인 활동의 공동체 생활, 자원봉사, 취미 공유를 위한
사회적 자원과 개인 집단적 노력이 필요하다.
지구촌은 물질 만능주의 자본론으로 표현되지만 , 이물질 만능주의는 단순한 가치관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물질적 토대를 가진 가치관을 이야기 하는것이다.
개인에 대한 집착을 최소화 하면서 공동체를 지향하려는 의식적 개인 집합적 노력만이
필요할 따름이다. 탈가족화는 가족 연대를 약화 시키기도한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고, 자식이 부모를 보살필 필요가 있다.
가족의 부양을 사회화 시키는것이 바람직하다.
가족이 담당하는 사회는 대체하는것이 아니라 , 보완의 방식이 좋다.
자식이 부모에게 용돈을 주고, 자식이 부모를 모시도록 , 국가가 자식들을 지원해야 한다.
지난 50년간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가족 안팎의 공동체는 약화되고
가족은 고립화, 축소 해체의 길을 걸었다.
세대간에 남녀간 갈등과 분열이 일고 , 가족의 부양 기능이 악화 되고
약자를 기피하게 되었다. 그러면 새로운 가족 모형 찾기에 사회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실천은 가족과 지역의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가족 사회복지정책의 노력이 절실하며, 가족공동체에 대해 시장주의를 완화 시켜
나갈 필요가 있으며 , 가족의 독립보다는 가족간의 연대를 , 가족의 축소보다는 확대를
가족 해체보다는 통합을 지향하여야 한다.
국가에 세금을 내고 , 부양자는 국가에 직 간접적으로 고용되어 , 국가가 가족을 지원하되
현존의 가족 기능을 약화 시킬 정도로 지원하면 안되며 , 개별 가족원보다
가족과 공동체를 지원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미래를 지향하는 사회복지제도의 모습이다.
다시말해서, 복지국가의 종교는 , 정부가 지원하는 신앙의 형식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일것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전개되면서 가족 자체와 가족의 부양 능력이 약해져서 노인 부양의 주된
주체는 가족과 국가일수 밖에 없다, 가족과 국가의 부양과제 나누기가 대안이다.
물질적 자원 공급은 국가가 소득 보장 방식으로 부양에 책임을 지고
서비스 공급은 가족과 국가가 분담하며 , 심리적 부양으로 경애 는 주로 가족이 하되
국가가 보조해주고 과제 부여는 가족과 국가가 분담하면 된다.
국가가 물질적인 제공과 부양서비스를 전담하고, 가족 부양과 사회부양의 융합 병행도
가능하다. 국가와 가족 안팎 공동체의 협동 부양이 가능하다.
노인은 관혼상제의 주관자, 갈등의 중재자 등으로 역할이 주어져야 한다.
노인의 경애나 과제부여는 공동체에서 제공하고 , 공동체는 노인들의 가족부양을 보완하는
역할을 햐야 한다. 주거 환경의 변화를 통해 공간적으로 밀착되어 있으면 가능하다.
이런 주택 공급이 불가능하지 않다.
노인 가정위탁의 역사는 200년을 넘었다.
고령화 사회에 간호사, 복지사, 의사 등이 모두 노인이 되면 , 사실상 노인이 노인을 돕는
시대가 오며 , 미국등 서구에서 이미 노인이 노인을 돕기, 한가정이 노인가구 돕기가
시작 되어 미시간주등에서는 노인 복지 시설수용보다, 75%의 예산을 절감하고 있다.
" 숫가락 하나 더 놓기 운동을 이야기 하는것이다. "
모든 사물은 태어남, 삶, 죽음이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회 원리를 세상은 모든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는것이다. 산업 혁명에서도 ,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이기도하다.
산업 기계화 생산제품들도 마찬가지로, 오래된 제품은 , 도태되고, 새로운 제품이 만들어
지기 때문알것이다. 바로 산업 디자인 작업 , 즉 이노베이션 에서도 느껴지는 지국히
세속적인 모습이다. 바로 창조 과학 시대라고도 말한다.
우주가 형성되고 시간이 형성되고, 공간이 만들어져, 천지가 창조된 새롭게 변화된
모습일것이다. 눈앞에 놓인 대상이 한정된 시간만 존재하는 사물 , 단지 순간을 사는
생명이라는 생명이 없으면 , 생명을 부여 시키는 , 사실을 깨닫는 순간 ,
우주 말물이 형성 되는것이다. 모든 사물은 자연의 순환 혹은 자연의 힘에 의하여
삭고 , 사라지며 이는 또한 태어남의 과정을 세월의 창조적인 역사라고 이야기 한다.
태어나고, 살고, 죽어 사라지는것은 모든 생명과 사물의 원리로, 시간이 이를 측량하고
계산하며, 우주 공간의 시간은 바라본다. 그 순간의 사실을 깨닫는 순간 사물과 삶은
기억속에 흡수 되는것이다. 바로 우주속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처럼 , 우주를 흐르게 하는
유인력의 법칙처럼, 우리 인류가 사회를 형성 하듯이 , 이끌려가는것을 의미 부여한다고
이야기 하는것이다. 지구촌안에서 개인 또는 공동체의 삶에 있어서 , 세기의 종말은
어떤 사물을 스치고 , 지나치는 순간 역사의 의미가 부여되며 시작 된다.
그 예로는 페인트칠은 햇빛에 분해되어 퇴색하고, 문명은 한때 번성했을뿐 대부분이
사라진다. 미래적인 새롭게 오는 문화의 시대적인 모습을 막을수 없기 때문이다.
흙으로 환원되는 자연물 처럼 지상에 솟은 모든 인공구조물은 중력이란 영원한 힘에
영원한 힘에 의해 무너져 내리고 부스러져 황무지에 평평하게 퍼진다.
오지의 여행자는 사물을 보는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일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 그림, 문학 , 또는 지식과 사진을 통해서 사물을 찍어서,글을 저장하여
보관하듯이 사진이 있다는 사실로 세계는 지속된다고 믿는다.
건축가 , 디자이너는 이노 베이션 함으로써 그들이 보는 사물은 문화속에서 역사가
이루어지는것이다. 영원하다는 의미부여 시킬것이다.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먼지 크기도 안되는 우리의 삶인것을 이에 집착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절망할 이유도 없으며, 다만 주어진 시간에 성실하게, 정당하게 살아가는
것 뿐이라는 명제가 의미 부여 처럼 주어진다.
그렇기에 생명은 태어남의 순환관계속에서 , 창조의 가치가 인정되고, 공증을
받을수 있는거이다.
생명은 순환 관계의 법칙 처럼 , 항상 태어나기에 위대한것입니다.
생명 예찬을 하기에 지구촌에서 유지를 할수 있는것입니다.
진리는 너희를 자유케 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진리는 생존과 경쟁을 통해서 , 자유케 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 태어남과 죽음이 인간 통제의 바깥에 놓여 있다면 그나마 조절 가능한것은 성장이고
그 조절의 모습이 매일 드러나는 삶의 단면일것입니다.
성장하는 생명이 보여주는 역동성은 종말과 죽음을 향한 시공간의 흐름에 대한
저항의 모습일것입니다.
인물과 사물 즉 현상은 시공간적 맥락의 어딘가의 환경에 자리 잡기 마련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유 분방은 화려한 만큼이나 생명이 짧았지만 , 집중력과
열정에서 보이는 통합성에는 미학적이고 , 지적이면서 , 동시에 해학적이며
쾌락적이거나, 또한 낙관주의적인 모습이 만들어진다.
정해진 것이 시간이라면 속도를 높임으로써 그 효율을 올릴수 있는것을 성장과
발전이라고 가치를 인정할수 있는것입니다.
그 예로는 지구촌의 기술지상주의자들은 거침없는 속도와 긴박한 시간으로
그리고 사건으로 인간의 미음을 사로잡는것을 문화, 문명 이라고 평가를 하고
있는것입니다. 바로 지구촌안의 기술 지상주의자들은
왜 ! 미래 예측을 중요하게 생각할까요 !
지구촌의 정상들의 미래 예측의 정책은 어떤 문제들이 있는가 ?
그리고 미래의 문명을 변화 시키고 바꿔 놓을수 있을까 ?
지구촌 친구! 여러분들이 찾아서 정렙 시켜야 할것입니다.
21세기 지구촌의 시대적 변화는 자유와 인권 그리고 변화 속에서 미래의 지향적인
모습으로 , 환경의 변화와 세계화, 사회체계 미래의 인류의 모습이 표현 되었다.
과거부터 케네디는 자유를 , 마틴 루터 킹은 인권을 오바마는 변화를 키워드로 인류는
무엇을 미래의 정당한 가치라고 요구하고 원할것인가 ? 만족할수 있는것은 무엇일까 ?
소크라테스 같이 진정한 " 정의 " 가 무엇인지를 가치가 무엇인지를 요구하는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삶을 통해서 자신의 진실성을 보여주었다는것은 다 알고 있다.
직접 전투에 참여했으며, 죽음으로 자신의 진실성을 보여주었다는것은 다 알고있다.
직접 전투에 참여 했으며 , 죽음으로 자신의 가치를 지켰다.
그의 언행일치는 그를 위대한 철학자로 인류의 동행자로 역사에 남게 했다는것이다.
바로 세계를 변화 시킨 사람들의 긍정적인 공통된 모습의 사상으로 가치를 이야기
할수 있는것이다. 소통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통해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 보여줄때
가 21세기 시작하는 모습속에서 , 시대적인 빛을 발할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바뀌었다, 세상은 변화 되어가고 있다.
"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 는 유명한 말로 끝맺는 이 연설은 영국의 식민지인
아메리카가 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기 1년 2개월 전에 1775년 4월 23일
패트릭 헨리가 버지니아 식민지 의회에서 행한것이다.
당시 영국은 식민지 주민들의 불만을 무력으로 다스리려 하였고 ,견디다 못한
식민지는 마침내 혁명을 꿈꾸게 된다.
이혁명의 폭탄에 도화선 역할을 한것이 바로 패트릭 헨리의 이 연설이다.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행복한 동행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꼭두야 꼭두야, 아라리 난다.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타박 타박 타박네야 , 아라리 난네.
자원의 완성은 행복한 동행입니다.
May 08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행복한 동행 / 지구촌 종교재판과 심판자들 ! ( 34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행복한 동행 / 작성자 : 조옥현 ( cho. ok . hyun )
하늘과 땅과 사람은 하나 !
하늘과 땅과 친구는 하나 !
하늘과 땅과 사랑은 하나 !
하늘과 땅과 지구촌은 하나 !
하늘만큼 / 땅만큼 .... 지구촌 친구 여러분 !
우주 만물의 모든 생명력을 예찬하여 영원한 행복한 동행을 합시다.
21세기 시작 부터 세계화 사회는 극심한 사회적 길등과 패권다툼과 분쟁의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한 진일보를 이루었다면 좋으련만 현실은 오히려 반대의 결실을
맺고 있는듯하다. 오랜 세월 수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이 서린 희생을 토대로 쌓아올린
민주주의와 인권 , 그리고 자유의 가치는 불과 10년의 세월동안 잃어버린 백년으로
퇴화 해버린것 같다. 세계는 국가적 정책을 탓하는것이 아니라, 외부적 요인으로인하여
탓만 하고 , 합리화를 시키고 있을 따름이다. 세계의 회복은 자신들로 자화 자찬을 한다.
그 결과 경제적 양극화와 상권다툼 으로인하여 극에 달하여 가진자들은 위기를 이용해
더 큰 부를 , 권력을 획득할 기반을 구축하여, 바벨탑으로 요새화 시켜보기위해 , 기반을
다지고 있다 다시말해서 선부론으로 지구촌 모든 인민들을 희생 양으로 만들었다.
반면에, 서민들의 삶은 그나마 있는것조차 다 내어줘야 하는 곤경에 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양극화의 문제는 비단 경제에 국한되지 않고 교육, 사회, 정치, 문화, 예술을 망라한
전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
" 문명의 패러독스 란 ?
인간은 자연이다. 하지만 자연을 파괴하면 , 인간도 파괴된다는 법칙이다.
우주 만물의 모든 생명력를 에찬하여야 영원히 행복한 동행을 할수 있는것이다.
하늘아래 , 사는 모든 신을 섬김의 인본주의 사상은 항상 평등 할수 밖에 없다.
지구는 동그랗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 항상 인류와 생명력은 항상 제자리에 서있는 모습이다.
생명은 시대마다, 역사마다, 항상 태어나기에 위대한것입니다. "
< 백범 일지 / 돌베게 >
우리는 우리의 시체로 성벽을 삼아서
우리의 독립을 지키고 , 우리의 시체로
발등상을 삼아서 우리자손을 높이고 ,
우리의 시체로 거름을 삼아서
우리의 문화의 꽃을 피우고 , 열매를 맺어야 한다.
나보다 앞서 세상을 떠나간 동지들이
다 이일을 하고 간것을 ,,,
나는 만족하게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 비록 늙었으나 이 몸뚱이를 헛되이 썩히지 아니할것이다.
나라는 내 나라이요 , 남들의 나라가 아니다.
독립은 내가 하는것이지 따로 어떤 사람이 하는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 삼천만이 저마다 이 이치를 깨달아 이대로 행한다면
우리나라가 독립이 아니될수 없고, 또 좋은 나라 큰 나라로
이 나라를 보전하지 아니할수 없는것이다.
내 자신이 변화되면, 세상도 변화될것이다.
나 김구가 평생에 생각하고 행한일이 이것이다.
< 백범일지 서문중에서 ... >
1993년 뉴욕 세계무역 센터에 폭탄을 놓았다가 붙잡힌 람지 유세프를 헬기에 태워 압송하던
수사관은 유세프의 눈가리개를 풀어주고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무역센터 건물을 가리키며
말한다. " 저 건물이 보이나 ? 자네가 무너뜨리고자 했던 바로 그 빌딩이야 , 꿈쩍도 않고
서 있지 ? " 유세프는 잠시 내려다보다가 대답한다.
" 돈이 없었어, 내가 폭약을 충분히 살수만 있었다면 저게 지금 남아 있겠나 ? "
그로부터 8년 뒤인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아침 , 위풍당당하던 110 층 무역 센터 건물
은 잿더미가 되어 내려앉는다. 9. 11사태 이후 미국은 그 이전의 미국이 아닐것이라고
세계 언론은 입을 모아 말한다. 9. 11 사태의 내면에는 또다른 이야기가 있다.
국제 연합을 뉴욕에 정하고, 세계 평화의 날을 채택하였다. 하지만 , 세계 평화의 날을
공표하기전에 , 미국의 평화를 싫어하는 세력에게 , 9. 11 사태를 만들게 했다.
다시말해서 , 과거 공산주의 사회는 , 고층 빌딩을 보고, 자본주의의 상징이라고
주장하였기때문에 본보기로 파괴를 하였는가 ? 다시한번 , 겸허한 자세로 , 반성을 하여야
할것이다. 어떠게 보면 , 지난일이라고 쓴 웃음을 웃을수 있는 이야기가 되버렸다.
< 한반도의 북한 군대의 4대 노선 >
21세기 시작부터 북한 로동당 정책으로 , 선군 정책으로 이끌고 , 조평통, 6.15 공동 선언문
협약의 조항을 북한 중앙 로동당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추대하고 선군정치로 , 간섭하고,
이끌고 있는 안보적인 실정을 우리들은 알아야 한다.
1962년 12월 로동당 제 4기 5차 전원 회의에서 " 국방에서의 자위 원칙 으로 채택된
군사 노선, 전군의 간부화, 전군의 현대화, 전인민의 무장화, 전국의 요새화 를 뜻한다.
전군의 간부화( 선군정치의 선부론 적인 정치 형태 ) 는 북한군을 정치, 사상적으로 , 군사
기술적으로 단련 시켜 유사시에 모두가 한 계급 이상의 임무를 수행할수 있도록 하는것이며
전군의 현대화, 는 북한군을 현대적 무기와 전투기술로 무장시키고 아울러 현대적 군사
기술을 도입하는것을 의미한다. 전인민의 무장화 는 군대는 물론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모든
시설을 지하화 하고 북한 전역에 방위 시설을 구축하여 철벽의 군사요새를 만드는 것을
뜻한다. 북한이 국방에서의 " 자위 원칙 "을 군사정책으로 내세우게 된것은 중. 소 대립
과정에서 나타난 두나라의 태도 변화에 기인한것으로써 특히 소련의 원조 중단
( 독립기구 연합 결성 특히 나토연합과 미국의 화해시대의 통합정책 ) 이 보다 직접적인
요인이 었다. 소련은 중.소 대립에 즈음해 북한 이 친중국적인 외교 정책을 취하자 북한에
대한 군사 원조와 경제원조의 중지 및 삭감 조치를 취했으며 이에 따라 북한은 부득이하게
자위 정책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4대 군사 노선을 채택할 당시의 결의문에
잘 나타나 있다.
지금 북한 체제의 가장 절실한것은 정권 체제의 유지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북한의 김정일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300만명이 굶어죽는데도 체제 개방을 하지 않았었다.
북한의 정책을 보면 , 과거부터, 현재까지도 , 세계화의 개방 개혁 정보화 를 통해서
외교적인 , 내부의 요인과 외부의 요인의 영향을 사회속에서 표현하였다.
그것은 항상 일관 되게 정책으로 쓰고 있다.
그것은" 지피지기 ( 知彼 知幾 )는 백전 백승 " 이라는 전술과 전략을 항상 천년의 소리로
대내외적으로 선군정치에 활용하고 있으며, 항상 상대방을 파악하고, 알고있는것을
최고라고 영원한 대 전략으로 채택하여 표현하고 주장하고 있다.
국제 관계 속에서 ,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생존 전략으로 활용하고 구사해왔다.
다시 말하면 , PSI 전략 전면 참여 ( 우주 방어 전략 ) 에 모든것을 다바쳐서 , 상대방의
약점을 알아내려는것을 선군정치의 전략과 전술의 초점으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볼수 있다.
" 세상과 역사를 보는 전략안 ( 戰略眼 ) 관점에서 공자 , 순자의 경세적 ( 經世的 )
이론을 시대적 마다. 최고 전략이라고 한다고 볼수 있는것이다.
또 " 서로 사랑하라 . " 고 가르친 예수, 싯다르타 등 4대 성인들은 2쳔년 - 3천년 앞을
내다본 인류의 대전략가 들이었다. "
북한에 개방정부를 세워 주민들이 스스로 먹고 사는 길로 나가도록 국제 사회가 도와주는것이
핵문제를 비롯한 각종 " 북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척도로 표현하면 정도 ( 正道 ) 이자 동시에
상도 ( 常道 ) 라고 할수있는것이다.
1975년 4월 30일 은 " 자유 월남이 패망한 날이다. 내년이면 벌써 35주년이다.
1960-70대 사람들은 1975년 4월 30일 월맹의 탱크가 사이공의 대통령 관저 독립궁 철문을
부수고 월맹의 깃발을 올리는 외신 TV 장면을 기억할것이다.
베트남을 탈출하려는 외국인들을 태운 헬기가 바람을 일으키고 , 조각배에 몸을 실은
보트 피플들이 바다를 떠돌면서 물과 먹을것을 찾아 다른 나라에 상륙을 구걸하는 모습은
다큐멘터리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친숙하다.
베트남은 통일 후 낡은 사회주의 경제건설 이론에 따라 집단 영농제와 중공업 노선을
추구하다. 5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굶어죽거나 영양실조 합병증을 얻었다.
이런 사실은 베트남식 개혁 개방 ( 도이모이 ) 이후 외부에 조금씩 알려졌지만 ,
중국의 마오쩌둥이 60-70년대 인민 공사와 대약진 운동을 하다 ,
3천만명을 굶겨 죽인 사례와 어쨌거나 비슷한 유형이다.
중국은 과거의 이러한 모습을 알고 있기에 , 21세기 세계화의 개방 개혁을 추진하면서 ,
자본론이 절실하게 필요하였을것이다. 자신들도 자본론만이 중국 인민이 , 세계 공산당이
살길이라고 모든것을 다 받쳐서 , 자본론을 유치하는데 전력을 한치의 양보없는 정책을
펴나아가는 모습이다. 라고 생각할수 있다.
베트남은 1년에 안남미 ( 安南米 ) 3모작을 할수 있는 나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굶어죽은 이유는 잘못된 계급주의 이론과 사회주의 - 공산주의 경제 건설
이론을 맹신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히 베트남은 중국 문화대혁명과 같은 서로가 서로를
물고 뜯어 죽이는 진저리나는 계급 투쟁을 겪지 않았다.
이후 베트남은 1986년 부터 도이모이 정책을 채택하여 중국처럼 고속 성장을 해왔다.
그리고 지금은 오히려 중국보다, 미국과 더 친하게 지내고 있으며 , 한국과 각종 교역도
크게 늘어나 있다. 지금 국제 정세는 34년 전 월남 패망 시기와 비교할수 없는 정도로
변했다. 하지만 당시 월남의 패망이 그 당시도 안보국가였던 한반도 우리에게 던져준 충격은
매우 컸다. 강고했던 동서 진영 외교의 틀을 깨고 데탕트를 주도한 미국은 1972년 부터
중국과 수교회담을 시작 했다. 이어서 미국은 베트남을 비롯해서 아시아에서 발을 빼려고
했다. 당시 미 - 중 수교회담이 남북한에 던져준 파장이 컸다.
1971년 미국은 주한미군 7사단을 철수하고, 1976년 까지 나머지 지상군도 한국에서 빼버리
겠다고 발표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해 신년사에서 " 1971년은 국은을 좌우하는 중대한
시기 " 라면서 " 세계의 모든 나라가 자기 이익을 위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 " 고 비장하게 말했다.
이시기에 박 대통령은 중공업 위주의 산업개편을 하면서 자주 국방노선을 채택하고
방위산업을 확대 했다. 1972년 7월 4일 남북한은 역사적인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남한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의 김영주 노동당 조직 비서는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7.4 남북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주 내용은 자주 . 평화, 민족대단결의 통일 3원칙이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 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을 실현하여야 한다 " 는 내용에 더 강조점을 두었다.
" 서로 무력 침공을 하지 않는것 "이 더 중요했던것이다 .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급변하는 주변 정세에 따라 적아도 한쪽 손은 적의 심장에 대고 있어야
적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수있다고 판단한것 같다 .며 그것은 어쩌면 김일성 주석의 입장
에서도 마찬가지였을것 " 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박대통령은 더 이상 미국을 전적으로
믿기 어려웠고, 김일성 주석 입장에서도 중국이 철천지 원쑤인 미국과 수교할 경우 미국의
영향력이 남한을 타고 한반도 북쪽으로 올라올수 있다고 생각했을것이라는 뜻이다.
이에 따라 불과 몇달 뒤 박대통령은 10월 유신을 발표했고 , 그해 12월 길일성 주석은 강력한
국가주석제도를 도입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주석은 말하자면 " 이젠 미국이든 ,
중국이든 우리를 지켜주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생존해야 한다 " 고 각각 판단한것이다.
1975년 4월 30일 월남이 패망하던 날 박정희 대통령은 수출 진흥확대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박대통령의 통일 노선은 선 ( 先 ) 건설 과 후 ( 後 ) 통일 이었다.
월남 패망이후 지구촌에 많은 교훈을 주었다 .
현시기 북한 문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교훈을 주는것이 있다.
그것은 북한 문제를 풀어가는 1차 당사자는 어디까지나 우리 자신이며, 또 우리 자신이 철저히
준비한 뒤에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바탕으로 일. 중. 러의 도움을 받아내야 한다는것이다.
따라서 주체는 대한 민국이다.
지금 김정일 국방위원장 정권은 선군적인 군사 이슈를 확대하고 있다.
자신이 잘못한줄 모르고 유엔에게 " 사죄하라 . " 면서 핵실험과 대륙 간 탄도미사일을
쏘겠다고 했다. 유엔에게 사죄하라는 게 도대체 무슨 태도인지, 아마도 전 지구적
범위에서의 적반 하장 ( 賊反荷杖 ) 은 이 경우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정치적인 내막은 알수 없다. 지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군사 이슈를
계속 확대해야 정권 생존을 할수 있다고 생각할것이다.
그리고 점차 더 강력한 수단을 동원할것이라고 생각할수 있을것이다.
34년전 오늘 월남이 패망한 근본이유는 먼저 자기 자신부터 관리하는데 실패한것이라고
할수 있는것이다. 그 교훈을 오늘날에도 잊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 1996년 노벨 평화상 >
국제적 분쟁에서 눈길을 돌려본적이 없는 노르웨이의 노벨상 위원회는 1996년도
노벨 평화상을 동티모르의 행동주의자인 카를로스 필리페 시메네스 벨로 ( Carlos
Filipe Ximenes Belo ) 주교와 주세라모스 오르타 ( Jose Ramos Horta ) 에게
수여함으로써 동티모르의 독립운동을 전세계에 알렸다.( 동티모르의 피와 눈물 )
티모르 섬의 동쪽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동티모르는 20세기 거의 대부분을 포르투갈
식민지로 보냈지만, 포르투갈은 이곳을 방치하다시피 했다.
1970년대 중엽에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포르투갈은 1975년 11월 티모르섬에서 철수했다.
그러자 독립운동의 주요 파벌인 좌익단체 프레틸린은 동티모르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 자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12월 초 인접국인 인도네시아가 공산주의 확산을
우려한 서방 국가들의 묵인 아래 동티모르를 침공했고 이듬해에 동티모르응 인도네시아의
주 ( 州 ) 로 편입 시킨것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저항하는 주민들에게 군사력을 사용했다.
인권단체들이 추산한 바에 따르면 , 인도네시아가 이지역을 장악한 뒤 주민 60만명 가운데
1/3 이 목숨을 잃었다.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가 자국의 27번째 주라고 주장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를 제외한 모든 나라와 국제 연합 ( UN ) 은 그것을 승인하지 않았다.
노벨상 위원회는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20년에 걸친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지배를
' 조직적인 탄압 " 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인도네시아는 오랫동안 독립을 제창해온 망명
활동가 주세 라모스 오르타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 노벨상 위원회의 결정에 유감을
표명했다. 46세의 게릴라 출신 활동가 는 1970년 포르투갈에 의해 처음으로 추방딩했다.
1972년 동티모르로 돌아와 프레틸린 파벌과 함께 내전에 가담한 뒤 1975년 인도네시아
군이 동티모르를 점령하기 며칠전 다시 동티모르를 떠났다.
그후 라모스 오르타는 오스트레일리아 에서 줄곧 망명생활을 했다.
나중에 라모스 오르타는 게릴라 부대와의 관계를 부인하면서 동티모르에 평화를 회복할
야심찬 계획안을 발표하고 이에 대한 국제적 지지를 얻으려고 애썼다.
그는 또한 사우스웨일스 대학교 교수로 일하기도 했다.
48세의 티모르 원주민인 벨로 주교는 1983년에 가톨릭 주교로 서임 되었다.
벨로 주교는 주민의 90% 가 가톨릭 교도인 동티모르 지역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애국자로서
주민의 90% 가 이슬람교도인 인도네시아를 다스리는 수하르토 대통령의 잔인한 전술을
비난하는 가장 중요한 비판자였다. 벨로 주교는 명쾌한 태도 와 솔직한 성품 때문에 1989년
1991년 적어도 2차례 암살의 표적이 되었다. 그가 가장 주목할 만한 항의를 표명한것은
1991년 11월 동티모르의 수도인 딜리의 한 묘지에서 약 200명의 시위대가 학살된 뒤였다.
그는 수많은 부상자들을 몸소 안전한 곳으로 대피 시켰다. 1994년 7월 발표한 성명서에서
그는 동티모르 주민에 대한 염려를 표명한뒤, 동티모르에 주둔해 있는 군대를 감축할것
억압조치를 축소할것 , 가톨릭 교회에 좀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할것 , 언론의 자유를 허용할것
국제 단체들과 대화를 시작할것, 동티모르의 자주 독립에 대해 민주적인 국민 투표를 실시
하도록 허용하거나 , 그것이 안된다면 동티모르에 특별자치구의 지위와 더 많은 자치권을
부여하는 법률을 제정할것 등을 인도네시아 정부에 제의 했다.
벨로 주교는 12월 노벨상 수상연설에서 1964년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마틴 루터 킹 2세를
예로 들면서 , 동티모르 문제의 비 폭력적 해결을 촉구했다.
< 1999년 노벨 평화상 >
1999년 노벨 평화상은 파리에 본부를 둔 민간 재단의 독립적인 인도주의 기구인 국경 없는
의사회 ( Medecins sans Frontieres / MSF ) 에 수여 되었다.
이 단체는 정치적 폭력이나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 , 또는 의료나 보건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경감 시키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노벨상위원회는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 MSF 구성원들은 상당한 개인적 위험을 감수하며
활동하고 있다. MSF 는 1971년 적십자사 ( Red Cross and Red Crescent ) 의 중립성에
불만을 품은 프랑스 의사 10명에 의해 처음 결성 되었다.
MSF 는 비아프라 ( 나이지리아의 분리국 ) 와 동파키스탄 ( 지금의 방글라데시 ) 에서
앃은 활동 경험을 통해 해당국 정부의 초청을 기다리기보다는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갈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들은 해당국 정부의 뜻에 반대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그 곳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행위에 대해 발언할 의무가 있다고 믿었다.
노벨상 위원회는 " 국경이나 정치적 상황, 동정심 같은것과 무관하게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마땅히 도움을 받아야 한다. MSF 는 고도의 독립성을 유지함으로써 이러한
인도적 이념에 충실할수 있었다. " 고 밝혔다.
MSF 는 해당국 정부의 행동과 정책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는 이유로 해당국에서 여러차례
추방된 경험도 있었다. 한 예로 1995년 자이르 ( 지금의 콩고 민주 공화국 ) 와 탄자니아에서
예전에 르완다 대학살을 저질렀던 후투족 관리들이 난민 수용소를 통제하고 있다고 비난함
으로 써 추방되기도 했다. MSF 는 결성 이후 초반기의 주요 사업 중 하나로 1972년 니카라
과 지진의 희생자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그 밖에 MSF 의 주된 활동으로는 레바논 내전
( 1976 ) , 아프가니스탄 전쟁 ( 1979 )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공화국의 지진 ( 1988 )
체체니아 사태 ( 1995 ) 에서 벌인 희생자들에 대한 의료지원 등이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MSF 는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 수단, 시에라리온 , 부룬디, 르완다,
케냐, 지이르 등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기근을 해소하고 전쟁 부상자를 치료했으며,
난민 문제를 처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1989년 동유럽 여러나라의 정부가 붕괴하기 시작했을때 MSF 는 각국에서 보건 프로그램을
실시했고 , 1991년 이라크 , 터키 , 이란에서 쿠르드 난민들을 지원했다.
1996년에는 나이지리아에서 수막염 예방 접종을 주도했다.
그 밖에 MSF 는 아르메니아 에서 가족계획을 실시하고, 러시아에서 집없는 사람들을 돌보는
활동을 벌였다. 1990년대 후반까지 MSF 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1/4은 여전히 프랑스인들
이었지만 , 약 45개국에서 이 단체에 참가하고 있으며 , 해마다 80개국에 2000명이 넘는
지원자들을 파견하고 있다. 이 단체에서 일하는 의사들과 의료 전문가 들은 매달 소액의
급여를 받는다. MSF 는 의료 지원활동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 폭넓은 일반의 지지를
확보한 고도의 정치 세력으로서도 높은 명성을 누리고 있다. 또한 이단체는 1970년대
부터 출범한 범 세계적인 인도주의적 기구의 모델로 평가되고 있다.
노벨 평화상에는 " MSF 는 폭력과 야만적 행위로 얼룩진 위기의 상황에서 인도주의를
실천하며 서로 적대적인 세력들간에 회해를 이룰수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그와 동시에 용기 있고 헌신적인 지원자들이 희생자들에게 인간의 얼굴을 보여주고
희생자의 존엄성을 존중해 주며 , 평화와 화해의 희망을 제시해 준다, 고 쓰고 있다.
1901년 노벨 평화상이 제정된 이래 개인이 아닌 단체가 수상자로 선정된 경우는 이번이
19번째였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단체로는 적십자사, 국제 사면위원회, 등이 있으며
1997년에는 국제지뢰금지 운동 이 수상했다.
< 세계의 혁명가 - 프란츠 파농 ( 1925-1961)
파농은 "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 이란 책을 통해서 사상과 실천을 이야기 할수 있는
모습으로는 "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라." 뜻으로 즉 혁명을 하라. 고 세상체계는받아들였다고
이야기 할수 있는것인가 ?
파농은 혁명을 완수한 이들에게 , 혁명을 진행중인 이들에게 , 혁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충고, 와 경고 와 바램을 전달 하고자 노력 하였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더 필사적이 된다.
모든것이 미숙하고 부족한 시기, 아직 혁명의 성공이 명확해지지 않은 시기 , 혁명이후의
올바른 발전이 보장되지 않은시기, 하지만 오랫동안 침묵하던 민중들이 일어나 제국주의에
당당히 맞서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가던 시기. 한 가운데서 아마도 이 혁명가는 너무
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것이다.
그는 식민 지배에 맞서 싸울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혁명이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그의 목표는 인간이 소외를 겪지 않는 사회, 노동자 농민이 억압받지 않는 사회,
민중이 힘을 가진 사회를 만드는것이기에 , 단순히 혁명을 이룩하는것을 넘어서 그러한
사회를 만들수 있는 혁명을 고민한다. 혁명은 바로 그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인것이다 .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은 " 탈식민화에 대한 분석이자 제 3세계 나라들의 미래에 관한
고찰이라고 사회는 생각하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가 분석하는 탈식민화는 단순한 주권회복의 과정이 아니라 인간 개개인의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탈식민화, 인간의 해방으로 나아가는 탈식민화라고 이야기 한다.
그런 탈 식민지화는 폭력이 없이는 이루어질수 없었다는 결과론을 사회들은 제시한다.
파농은 진정한 해방에 실제적으로 도달하기 위한 조건을 분명하게 제시하면서
신생 독립국들에서 특히 아프리카의 대륙에 지대한 영향을 받게 한다.
" 검은 피부와 하얀 가면 " 이란첫 책을 출간한것부터 알수 있는것이다.
" 대지의 저주 받읁 사람들은 사르트르의 서문과 함께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르트르의 1961년 판 서문은 한동안 원문보다 더 많이 읽혀진 때가 있었을 정도로
유명한 글이다. 그러나 사르트르의 서문은 파농의 생각과 어조를 왜곡하는 면이
잇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파농이 이 글을 3세계인들을 대상으로 썼던 반면
사르트르는 유럽인을 대상으로 서문을 쓴 까닭에 파농과의 불일치가 나타나며
또한 사르트르는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다는것이다.
사르트르는 파농의 저작을 제 3세계가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의 목소리로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평가 한다.
그는 파농이 아프리카, 아시아 , 라틴아메리카의 형제들에게 설명하는 내용은
민족 혁명이 승리하려면 사회주의 혁명이어야 한다는 점과 제 3세계의 단결을
이루려면 먼저 각 나라가 독립을 얻은 뒤에도 예전처럼 농민층의 지도 아래
식민지 민중전체가 단결해야 한다는 점 " 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유럽인이 이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첫째, 파농은 유럽인이 스스로에게서
소외된 매커니즘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 유럽인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 폭력에 관한 진실을 깨달을수 있기 때문이다.
1장 : 폭력에 관하여 에는 파농의 폭력에 대한 개념이 들어 있다.
파농에게 있어 폭력은 곧 탈식민화이며 곧 해방이다.
폭력은 인간을 전면적으로 바꾸는것이고 사회구조 전체를 변화 시키는 것이다.
파농은 이러한 폭력이 왜 식민지에서 반드시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 그러한
폭력이 식민지 내의 구조와 주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한다.
파농은 1장에서 " 폭력 "을 분석함으로써 혁명을 이루어내는 방법을 설명하고자 한다.
2장 : 자발성의 강점과 약점 에서 파농은 " 혁명을 수행하는 사람들 에 관하여 이야기 한다.
혁명에 수행하는 사람들 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혁명에 참여하는 각각의 주체들인 민족정당의 지도자, 민족 부르주아지, 노동자 , 농민들의
특성과 이들 간의 관계들을 분석한다. 파농은 혁명 주체들 중에서 특히 지도부와 대중,
도시인과 시골인 ( 농민 ) 간의 갈등과 대립을 주목하고 이러한 갈등을 변증법적으로
변화, 발전 시켜나가는 방법을 설명하고자 한다.
2장에서 파농은 현실을 자각한 민중의 직접적 투쟁만이 식민주의로부터 벗어나 앞으로
전진할수 있음을 설득 시키고자 한다.
3장 : 민족의식의 함정 에서 민족주의 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 파농은 민족주의와
탈식민화 투쟁과의 관계를 분석하고 , 민족주의에 대한 현실화와 구체회를 시도한다.
민족주의 그 자체로서 충분한것이 아니라, 민족 내부의 모순을 해결할수 있는
즉 민중이 주체가 되는 민족주의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것이다.
3장 에서 파농은 혁명시기를 넘어서서 , 혁명 이후 식민지에서 독립된 국가들의 직면하게
될 어려움들을 경고하고, 그러한 신생독립국들이 취해야할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설명하고자 한다. 4장 : 민족 문화에 건하여 에는 민족문화 운동에 관한 파농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혁명운동 중의 한 방법인 민족문화 운동을 분석하고 그것의 의의와 한계를 지적
해내고자 한다. 파농은 민족문화 운동이 민중들의 투쟁과 유리되거나 , 새로운 민족의식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들에 대해 경고한다. 여기에서 그는 식민지배체제에 맞서서
투쟁하는 민족들이 지켜야 할 민족문화의 유산과 독립이후 새롭게 발전시켜 나가야할
민족문화의 발전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5장: 식민지 전쟁과 정신질환 은 " 정신질환 "에 대한것이다.
파농은 알제리민중의 민족해방전쟁에서 비롯된 여러 정신질환들을 분석하고 , 식민지배와
해방전쟁이 인간 개인의 정신에 얼마나 커다란 악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5장 은 그의 첫 번째 저작인 " 검은피부 , 하얀 가면 " 에서 전개된 문제의식의 연장선이라고
할수 있다. 파농은 만연한 폭력이 식민지 상황의 직접적인 산물임을 정신 분석학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며, 또한 그러한 폭력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설명하고자 한다.
6장 : " 결론 " 에서 파농은 제 3세계가 유럽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 새로운 인류의 역사를
시작해나가기를 주장한다. 이 마지막 장에는 새로운 세상 , 파농이 평생을 바쳐 꿈꾸었던
세상을 제 3세계 민중들이 만들어 나가길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이처럼 파농의 저작은 식민지 민중에게 있어 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 과정에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들에 대해 언급하고자 하는 총체적인 작품이라고 할수있다.
파농은 식민지 체제의 모순을 고발하고, 그러한 식민지 체제를 바꿔낼수 있는 방법들
제시하고, 해방 이후의 사회의 발전 방향을 그려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과정속에서의 주체와 구조 모두의 동학을 설명함으로써 역사의 변화를
변증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파농은 왜 혁명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혁명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한다. 이것에 대한 그의 생각들은 " 폭력 " 이라는 개념으로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파농은 먼저 식민지배라는 형태가 식민지 내의 피지배계층에 대해 가하는 폭력을
드러내 보인다. 특히 알제리를 비롯해 아프리카 전역에서 식민지 권력에 의해 계속
해서 자행되고 있었던 대학살은 " 억압자와 피억압자 사이의 모든 문제가 무력으로
해결될수밖에 없다는것을 잘 드러내고 있는것 " 이었다.
그리고 파농은 그러한 폭력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한다.
그 방법은 바로 폭력을 통한 폭력의 분쇄이다.
" 탈식민화는 언제나 폭력적인 현상일수밖에 없다. 적대적인 두 세력간의 처절한
투쟁을 거쳐야만 탈식민화가 이루어질것이다.
식민주의는 더 큰 폭력에 의해서만 물리칠수 있다.
이처럼 그는 식민지라는 상황이 피식민지인들에게 주는 폭력을 명확히 알고 있었으며
이러한 폭력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그것에 맞선 폭력밖에는 방법이 없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파농의 폭력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 먼저 그가 활동하고 있던 시공간을
먼저 이해하지 않을수 없다. 파농에게 있어 폭력론은 구체적이고 특수한 조건에서의
구체적이고 특수한 이론이기 때문이다. 파농이 이론과 현실을 분리될수 없는 변증법적
관계로 바라보았다면 , 그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이론과 그가 처했던 현실을
변증법적 관계로 파악해야 할것이다.
파농은 알제리를 " 마니교적 세계 " 즉 완전히 둘로 나뉘어져 있는 이중구조의 세계로
인식한다. 식민지 세계는 둘로 나눤다. " 알제리는 식민자와 식민지인으로 나뉘어져 있는
마니교적 세계이다. 지배하고, 착취하는 식민자와 억압받고 약탈당하는 식민지인은
철저히 나뉘어져 있다. " 마니교는 원주민을 비인간화시킨다.
즉 쉽게 말해 인간을 동물로 만드는것이다. 사실상 이주민이 원주민을 지칭할때
사용하는 용어는 동물학적인 용어이다. " 식민지 상황의 특징은 전 민족에게 이분법을
강요한다는데 있다. 한편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진 구조에서 폭력은 그러한
구조를 지탱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게 된다.
" 폭력은 식민지 세계의 질서를 지배한다. " 이처럼 식민지적 상황을 특징짓는 것은
인종차별주의이다. " 그것은 유럽인들로 하여금 원주민들을 가장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착취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인종차별에 대한 원주민 자신들의 반응은
그 체제에 대해 고정화 효과를 갖는다.
피압박자들이 자기들이 당하는 압박의 이유를 자신들만의 열등성에서 찾음에 따라
그 압박에 대한 저항의지가 감소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압박자는 피압박자들을 점점
더 그런 운명을 받아 마땅한 존재로 만드는 빈곤을 야기하고 그것을 항구화 한다.
공포와 착취는 비인간화되고, 착취자는 한층 더 착취하기 위해 이 같은 비인간화를
정당화한다.
파농은 알레리의 식민지적 상황에서의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느끼게 된다.
첫째 , 알제리에는 심각한 경제적 문제가 존재한다.
프랑스에게 이용당하고 수탈당함으로써 가난과 굶주림으로 가득 찬 사회가 된것이다.
둘째, 알제리인들의 의식에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
알제리의 정신병원은 환자로 가득 찰수밖에 없었으며 , 세상사회 가득히 정신분열환자로
가득찬 시대적 배경의 사회체계의 모습은 언제 , 어느 시대에 항상 나타나고 , 자신들을
합리화 시켜 , 정신병을 사회적으로 나타내지 못한다.
온갖 정신분열 증세들이 나타나고 그것을 합리화 시킬뿐이라고 말한다.
셋째 , 알제리인들 사이에서 반목과 갈등이 존재하고 있었다.
봉건귀족과 민족 부르조아들 간에 , 도시민과 농민들간에 치열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었다.
넷째, 폭력에 의한 지배가 존재한다.
한편 이러한 식민지적 상황은 파농의 폭력론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파농의 사상이
맑스주의와 일정정도 , 긴장을 가지게 한다.
파농의 관점은 기본적으로 맑스주의에 기반한것이다. 그는 맑스가 꿈꾸었던 세상을
공유하고, 그것을 위해 평생을 바친다.
그러나 파농을 단순히 마르크스 주의자라고 부를수는 없을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마르크스
주의가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 3세계 식민지 라는 특수한 조건하에서 파농은 마르크스를 확장 시키고 발전 시켜내고자
노력하게 된다. 먼저 파농은 식민지에서는 세계를 구분하는 단초가 인종이라고 주장한다.
" 식민지에서 경제구조는 상부구조 " 인 것이다. 즉 파농은 식민지 구조를 이윤추구나
경제적 착취의 관점에서만 보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식민지라는 마니교적 이중구조는 인종주의와 폭력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을 간과할수
없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식민지적 상황은 피식민지인들에게 끊임없이 폭력을
가한다. 이에 따라 피식민지인들은 폭력에 의해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영향은 필연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폭력의 발현을 이끌게 된다.
먼저, 파농이 살던 시대적 배경으로 당시 알제리에 만연하고, 있던 범죄와 알제리인들
상호간의 폭력에 대해, 그것이 알제리인들의 야만적 속성 때문이라고 보는 서구의 관점을
비판한다. " 그 당시의 알제리인들의 범죄성, 충동성, 살인의 폭력성은 신경체계가
잘못 조직된 결과도, 독특한 성격 때문도 아니라 식민지 상황의 직접적인 산물이다. "
식민지 상황으로 인해 알제리인들이 폭력성을 보이는 이유는 그러한 식민지 상황으로
인해 알제리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수 없기 때문이다.
" 폭력은 피식민지자와 식민지 통치자들 사이의 적대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피식민자들간의
관계까지도 특징짓는다. 식민지 구조의 비인간적 영향은 이 체제안에서 살고 있는 모든
개인에게 작용한다. 이와 같이 사회에 만연한 폭력에 의해 깊이 영향 받는 피식민지인들은
어떤 식으로는 도피라는 행동 양식을 분명히 확인할수 있다.
마치 혈육상잔에 전념하는것이 식민지주의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이는 문제와 관련된
불가피한 선택을 뒤로 미룰수 있도록 해주는듯하다.
집단적인 자멸은 원주민의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는 한가지 방식이 된다.
주술적 요소를 통해 자신들의 폭력성을 억제하기도하고, 다른 한편으로 세월이 흐르면서
원주민은 저개발 사회에서 흔히 볼수있는 공포스러운 신화를 끌어들임으로써 자신의
공격성을 억누르는 각종 금지를 강화한다. 또한 종교적 주술을 통해서 , 무력행사를 강요
강할수도 있다는것을 명심해야만 하는것이다.
집단적 춤을 통해 육체의 긴장을 해소하기도 한다.
우리는 원주민의 정서적 감수성이 무아지경의 춤을 통해 모두 분출되는것을 볼수 있다.
이처럼 피식민지인들은 폭력을 춤과 신들림을 통해 정서적으로 배출하기도 하고 동족 상잔의
전쟁을 벌여내기도 한다. 식민지 에 대한 최초의 반응은 싸움과 범죄 및 부족 항쟁으로 또한
원시적 종교와 마술에 대한 신앙 및 집단 무용으로 나타난다.
파농은 이러한 종교나 주술, 몽상과 광기를 부정적인 요인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는
이 모든것을 폭력의 과정으로 , 대항 폭력으로 가는 성숙으로 , 새로운 인간의 창조를 위한
최초의 단계로 보았다. 파농에 의하여 이러한 폭력의 분위기는 차차 행동화한 폭력으로
나아간다. 그 계기는 식민지의 탄압이다. 이처럼 폭력이 사회를 실존하며 ,
주체들의 생존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폭력을 해소해야 하는 상황속에서 . 이제 어떻게 폭력을
운동으로 전개하고 조작할것이냐 의 문제만 남게 된다.
소속된 개인들에게 끊임없이 폭력이 가해지는 사회, 그리고 개인들이 이에 대한 반응으로서
자기 파괴적 폭력을 행사하는 사회에서, 해결책은 폭력의 근원을 없애는 것민이
존재할뿐이며 그것은 폭력으로서만 가능하다. 식민지라는 엄격한 마니교적 이중구조의
세계에서는 잡아먹느냐 잡아먹히느냐 의 철저한 약육강식의 먹이 사슬 대립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반식민지 투쟁은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수밖에 없다.
이로써 식민지인의 역폭력이 정당화되고 폭력투쟁이 식민지를 해방시킬수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파농의 논리가 성립되는것이다. 그러나 파농이 폭력을 절대화하는 것은 아니다.
즉 어떤 조건하의 어떤 형태의 폭력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앞서 식민지의 폭력적 상황이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았다면 , 이제는 그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폭력이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자. " 탈식민화는 개개인에게 큰 영향을 주고
그들을 근본적으로 변화 시킨다. 폭력 은 즉 투쟁은 곧 탈식민화 는 다음과 같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첫째는 폭력은 민중을 단결 시켜준다.
폭력의 행사는 식민지 민중을 한덩어리로 묶어주며, 각 개인은 폭력이라는 커다란 사슬의
고리들이 된다. 해방전쟁에서 대중이 동원되면 각 개인의 의식에는 공통의 대의 , 민족의
운명 , 집단의 역사 같은 관념들이 싹튼다.
둘째 , 폭력은 개개인의 인간성을 회복 시켜준다.
개인적 차원에서 폭력은 정화의 힘을 가진다.
폭력은 원주민에게서 열등감과 좌절 , 무기력을 없애주고, 용기와 자존심을 되찾게 해준다.
셋째, 폭력은 민중을 주체로 만들어낸다.
폭력 즉 무장투쟁 곧 탈식민화 운동을 통해 민중은 해방이 모두의 과제이며 , 지도자라고
해서 특별히 우수한 사람은 아니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민중은 자신들의 행동으로부터 얻은 결과을 놓치지 않으려고 , 하며 자신들의미래와
운명을 살아있는 신의 손에 내맡기려 하지 않는다.
어제 그들은 완전히 무책임했으나 오늘은 모든것을 이해하고 모든결정을 내리고자 한다.
넷째, 폭력은 개량적이고 협조적인 지도부로부터 민중을 분리 시켜낸다.
폭력으로 인해 깨어난 민중의 의식은 일체의화해를 거부한다.
여기서 알수 있듯이 파농이 말하는 폭력은 단순히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가하는 물리적 공격
이 아니다. 파농이 말하는 폭력은 바로 운동 , 민중이 주체가 되는 비타협적 운동 을 의미한다.
그러한 운동을 텅해 민중은 억압받는 개별적 피식민지인에서 개인의 존엄을 지키고, 서로
단결하며, 해방의 주체가 되어 ,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요구하는 존재가 된다.
이처럼 폭력은 해방의 심리적 효과와 여러단체의 역동적 통합이라는 정치적 기능을 갖고있다.
파농은 해방운동이 개인들과 동시에 사회 구조를 어느 정도로 변화 시키는가를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파농은 폭력을 두가지 다른 국면으로 특징지어지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첫번째 국면에 있어 자발적이고 비조직적이며 아직 분명한 정치관을 갖고 있지 못한 폭력은
사회의 혁명으로 조직된다. 첫째 구면에 있어 폭력은 피식민지의 심리적 소외를 해결하고
둘째 국면에서 폭력은 소외를 야기하는 자본주의적 식민주의의 구조를 변혁 시킨다.
파농에게 있어 인간성은 단순히 폭력을 행사한다고 해서 회복되는것이아니라 비인간적인
상황속에 매몰되어 있던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내걸고 투쟁함으로써 찾아진다.
목숨을 걸어야 자유가 획득된다. 라는 헤겔의 말을 인용하면서 파농은 자유로운 인간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투쟁이 필요하다는것을 강조한다.
그런데 헤겔의 노예가 노동함으로서 자유를 찾는 반면에 파농의 노예는 주인을 죽임으로써
즉 폭력을 통하여 자유인이 된다. 헤겔과 파농의 노예는 모두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여
자유로운 인간이 된다는 점에서 일치하지만 , 헤겔은 자의식을 갖게 됨과 동시에
인간 존엄성을 되찾게 되는 반면, 파농은 자의식을 갖게 됨으로써 인간성을 되찾기
위한 투쟁을 시작하고 그 폭력 투쟁속에서 새로운 자의식을 깨우치게 되는 변증법적
과정을 겪게 된다. 결국은 폭력은 단순히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다.
폭력은 곧 그 만큼의 민중의 전진이라고 생각하고 표현하고 있다.
투쟁이란 바로 식민지 시대의 낡은 진리를 타파하고, 알지 못했던 측면을 드러내고
새로운 의미를 끄집어내고 , 이러한 현실들에 의해 은폐된 모순을 정확하게 지적하는
것이다. 투쟁에 참여하고, 투쟁덕분에 그 사실들을 알게 된 민중은 식민주의로부터
벗어나 앞으로 전진하며, 신비화의 모든 책동을 경고하고 , 맹목적 애국심에 대해
반대 한다. 오직 민중이 행사하는 폭력만이 민중 지도부가 조직하고 교육하는 폭력
만이 대중에게 사회적 진실을 이해하도록 할수 있다.
그 투쟁이 없으면 , 행동의 실천에 관한 앎이 없으면 , 위로부터의 약간의 개혁과
휘날라는 깃발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밑에는 분화되지 않은 대중이 여전히
중세의 삶을 살면서 내내 제자리 걸음만 할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파농은 자신이 태어나고 살았던 , 사회속에서, 단순히 알제리와 아프리카의 대륙의
식민지화의 폭력으로 얼룩진 , 국제적 사회에 알리기위해서,증언함으로써 비판을
자극적으로 표현하였을 것으로도 생각해 볼수 있을것이다.
다시말해서 , 죽음을 눈앞에 두고 , 자신의 처지를 , 권선징악으로 사회를 폭력으로
질서를 만들어서 시원하게 악이 응징당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올바른 사회를
바라보았을것이다.
파농은 5가지 반응성 정신질환과 알제리 전쟁과 분쟁이 직접적으로 유발한 5가지의
정신적 장애 그리고 고문으로 인한 4가지 정신장해 , 정신과 신체의 연관에 따른
병리현상을 사례별로 분석한다. 식민지 체제 자체의 범죄 충동의 원인현상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식민지 체제자체, 그리고 이프리카인들의 피식민지인들에게
가하는 폭력과 피식민지인의 대항 폭력 각각이 그것의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관찰자에게
미치는 정신적 장해를 분석하고 평가하여, 심각한 사회의 모습으로 이야기하였다.
오직 힘만이 존재하는 공간에 내동댕이 쳐진 안간은 주체를 용해시키고 , 분열시키면서
정신장해를 강요하게 된느것으로 평가 분석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상황이란
일단 오이디푸스 개념이 들어설수 없는 임계영역이며, 정신 장해가 끊임없이 만들어져
나가는 전장이다고 결과적인 결론을 이야기한다.
성경에는 , 세상을 주관하는자들을 능멸하면 특별한 형벌을 받는다고 이야기 합니다.
다시말해서 , 시대마다, 역사마다, 타작기를 만들어서 , 사회를 타작한다고도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 세상을 주관하는 것도, 천기를 운용하는 것도 좋지만 , 너희들은
왜, 표적이 되어 있는것이냐 하고 , 꾸중하고 계십니다.
진리는 너희를 자유케 한다 . 하고 성경에 써있습니다. "
" 믿음은 바라는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 "
너희들은 숨쉬는 소리를 들어 보았는가 ?
너희들은 무엇으로 숨을 쉬고 있는가 ?
또 너희들은 무엇때문에 숨을 쉬고 살고 있는가 ?
생명은 시대마다, 역사마다 , 태어나기에 위대 합니다.
생명에찬을 하기에 지구촌에서 유지를 할수 있는것입니다.
진리는 생존을 통해서 , 경쟁을 통해서 자유케 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목자의 올바른 선택으로 예비된 천국을 만들수 있는것입니다. "
< 놓아 주기 >
과거나 환상 혹은
부수적인 것에 집착하는 한
새로운 것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놓아줌은 자신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놓아준다는것은 당신이 기다리는 진리 그리고
미래의 은총이 올수 있도록 자신과 인생과 공동체의 희망과 비젼 그리고
자유를 주는 것이며, 여유있는 진정한 너와 나의 자유를 얻을수 있습니다.
지구촌의 참여 연대의 행복한 동행이기 때문일것이다.
초막절에는 불편함을 행복으로 절기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기를 주셨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초막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칠일 동안 초막에 거하며
광야에서 사십년 동안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 기뻐하며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초막절이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살던 집에서 나와 초막을 짓고 거기에
거하셨을까요 ? 바로 초원에서 , 가축을 기르는 공동체는 생존을 표현하는것을 알고
있기때문입니다. 초막은 집보다 불편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일년에 칠일은 거기서
살게 하셨습니다. 바로 생존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자라는 양을
기르는 모습을 양을 안고 계시는 모습을 생각해 보면 , 초막절도 생존에 행복한 모습으로
생각할수 있을것이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초막절은 지나온 광야생활을 체험하는 시간으로 , 힘든 역사를 명절로 정하여
항상 , 힘든 역사를 잊지 말라고 , 세계의 다원화 문화들또한 마찬가지로 이야기 합니다.
이스라엘의 사해의 성서가 발견된 모습또한 , 절벽의 토굴에서 생활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초막절은 지나 온 광야생활을 잊지 말자고 체험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어떻게 도와 오늘에 이르게 하셨는지를 몸으로 체험하는
시간입니다. 불편한 가운데서 기뻐하며 즐거워 하는 절기가 초막절입니다.
오늘의 초막절은 자신이 원해서 지킬수도 있고 , 원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으로 찾아온 초막절을 지킬수 있는것 또한 공동체의 질서 즉 진리
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지구촌의 사는 모든 젊은 부부들이 경제 위기를 먼저 감지한다.
미국의 젊은 부부들이 경제 학자들보다, 체감 경제를 통해서 먼저 경제 위기의 도래를
알았다는것이다. 미국에서 이번 경제 위기의 징후가 나타나기 직전에 출산이 급격히
줄어든것으로 드러나 젊은 부부들이 체감 경제를 통해, 경제와 금융 위기를 직감하고
임신을 자제한것이 아닐까 의문이 제기 되고 있다고 폭스 뉴스 인터넷판이 보도 했다.
최근 발표된 미국 정부의 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2007년 7월 부터 지난해 7월 사이
1살 미만의 유아는 0.9% 만 증가한것으로 나타났다.
이보다 1년 앞선 시기에 1살 미만의 유아가 2.7% 늘어난 것을 고려하면 출산이
급격히 줄어든 셈이다.
경기 침체기에 출산이 감소한다는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번 경제 위기의 징후가
지난해 9월에야 나타난점을 감안할때 이에 앞서 출산이 급감한 원인이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제기 되고 있다. 미국의 젊은 부부들이 위기의 도래를 일찌감치 체감했을 가능성
을 제기 했다. 출산 급감의 미스터리가 풀리지 않는 가운데 , 출산의 증감에는 분명
경제가 영향을 미친다 며 " 경기 전망이 나쁘면 젊은 부부들은 아이를 적게 갖는 경향이
있다 고 추측 하며, 말했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 어디 미국의 젊은 부부만의 이야기
만은 않을것 이라고 지구촌 친구 여러분의 이야기도 되는것 같다 .고 표현 하고 싶다.
남부지역은 석유산업이 활성화로 젊은 근로자들이 모여사는 노스다코타주 등지는
출산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다.
" 성경을 인용 " 정책으로 많이 활용하고 있다고 , 이라크진 보고서 공개 "
지난 2003년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직후 미국 국방부가 작성한 비밀 보고서 표지에
성경 구절이 자주 인용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미국의 남성 잡지인 GQ 는 " 전세계 최신 정보" 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미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가 작성한 보고서의 표지에 각종 성경 구절이 매일 씌여졌다고
보도 했습니다. 당시 이 보고서는 럼스 펠드 국방장관을 비롯해 부시 전 대통령 등
극소수의 인사들만이 열람을 할수 있었습니다.
GQ 는 일부 국방부 간부들은 이슬람 국가와 전쟁을 하면서 이같은 보고서를 만든
사실이 공개되면 국익이 손상될수 있다고 반대했지만 , 당시 정보 책임자들은
윗 사람들이 좋아한다며 성경 인용을 강행했다고 보도 했습니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세상을 주관하는것도 좋고 , 천기를 운용하는것도 좋고
하늘의 군대로 통치라는것도 좋지만 , 너희들은 왜 , 표적이 되어있느냐 !
하고 , 꾸중을 하는 모습 또한 , 우리들은 반성을 할수 있는것입니다.
목자의 올바른 선택은 예비된 천국을 만들수도 있습니다. "
지구를 살리는 일, 또한 참 쉬운것입니다 "
지구의 온난화 같은 세계적인 기후 변화에 , 지구촌 인류가 함께 참여 연대를 형성하면
지구는 구원을 받는다는 이론, 참 쉬운것인데 , 약속만 하면 되는것인데 ,
일상생활에 이산화 탄소 와, 생활속에 활성 탄소를 많이 활용하면 , 되는것입니다.
에너지 전기를 아끼는것부터 , 시작하면 , 인류는 구원을 받는것 입니다. "
전쟁과 분쟁 , 환란속에서 , 싸움을 아끼고, 줄이는 방법도 , 양극화 해소 방법만으로도
지구촌의 인류는 구원을 받을수 있는것입니다. 과학은 편리하고, 신비스러운 유비퀘터스
문화로 , 문명으로 만들어 살아가는 방법을 , 단순하게 만 생각했으면 합니다.
전기나 재활용품을 분리수거를 할때 함께 환경보호에 동참을 할때는
모든것이 해결이 되는것입니다.
어렵고 거창한 일 대신 작은 습관 하나로 지금 당장 지구를 살리는길에 동참해보는것
은 어떨까요 , 아러한 마음속에서 , 전쟁없고, 평화의 예비된 천국이 되는것입니다."
세상은 노력하면 누구나 보상받는다는 건 가진자의 논리입니다.
경제. 사회적 약자는 시대마다, 그 사회속에서 , 희생과 한계를 부딪히며
극복하는 모습은 기존 자본주의 틀안에서 보상을 받고 싶어합니다.
발전이 모든것을 다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자본주의를 도전하라는 세대들은 새로운 자본주의는 " 공생적 자본주의 "를
말한다고 했다. 하지만 빌게이츠 회장이 말한 , 창조의 자본론에서도 이야기한바 있다고
표현해보고 , 서로 비교 평가를 하면 , 더 좋은 경제의 모습이 될것이로 본다.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인정하면서 경제적 약자를 보살피는 틀이라는 설명이다.
다른 말로 " 공동체의 자본주의 라고도 하는데 , 생태계적인 공동체 운동과도 연관이 있다.
복잡한 유통과정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생산자들이 지역 공동체를 형성하고 소비자와
생산자가 자본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만들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위코노미 ( WE conomy ) 라는 단어도 쓴다.
위코노미는 우리 ( WE ) 와 경제 ( Economy ) 의 합성어로 약자배려 , 자선, 환경 보호 등
사회적 가치를 끌어안은 개념이다.
< 새로운 자본주의에 도전하라. > 는 사회적 기업 , 공정무역, 마이크로크레딧 , 사회 책임 투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 다섯 영역을 소개하며, 이를 자본주의의 새로운 모습이라 칭한다.
책 서두에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그림을 보면 성경 룻기에 나오는 한장면이 생각난다.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 갔지만 가난해 생계가 막막했다. 당시는 추수할때 떨어진 이삭을
그래도 두고 거둬가지 않는다. 농장 주인인 보아스가 이삭 주우러 온 룻에게 후하게 대한다.
두사람의 자손에서 예수님의 마음이 나온다. 이삭을 두는 마음 , 이삭을 줍는 마음으로
이 세대에 살아가야 한다는것입니다. 21세기 전후 개방 개혁의 통합 사회체계를 아직도
포기하지 않는 , 포기 못하는 ,권력자들의 모습속에서 새로운 이삭 줍기가 필요하며,
그것만이 가난한자와 있는자의 모습속에서 , 행복한 동행을 할수 있는것입니다.
그것이 위코노미 ( WE conomy ) 공생 자본주의 론 이라고 생각할수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바로 " 적극적 평등 실현 조치 법 " 으로 구제 하는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공정 무역은 영국의 노예해방을 위해 싸웠던 윌리엄 윌버포스와 함께
활동했던 동지인 퀘이커 교도들이 시작했다.
노예들이 휴일도 없이 일하면서 생산 하는 서인도제도의 설탕을 불매하고 동인도제도의
설탕을 대체구입하는 운동을 벌였다. 이는 노예 제도 페지 운동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 책임 투자는 존 웨슬리까지 이야기 할수 있다.
존웨슬리는 자본가들의 비 도덕성을 비판하고 노예제도 폐지, 감옥개선 운동 , 빈민구조 등
실질적인 사회 개혁을 시도했다. 이웃을 위해 돈의 전부를 사용하라고 외친 존 웨슬리의
영향으로 감리교도 중심으로 비윤리적 기업이나 , " 죄악 주식 " 에 투자하지 않는 켐페인이
전개 되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 퀘이커교도 캐도버리가 시작한 캐드버리
( Cadbury ) 를 꼽을수 있다. 캐드버리는 자본가도 노동자도 하늘 아래 평등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 노동자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고 정원이 있는 주택을 공급했다.
교회가 윤리적 소비에 관심을 기울이고 교육을 하는것이 필요하다.
또 투자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그 토대 위에 사회적 기업이나 공정 무역 기업에 젊은 사람들이 진출하는것이 바람직 하다.
생산지와 공정무역을 통해 최소한의 일거리와 실거리를 보장한다면 , 다음 세대에는
혜택이 돌아갈수 있을것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로 이야기 할수 있는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곳식이라 , 열매가 익으며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때가 이르렀음이니라.
또 가라사대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겨자씨 한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때에는 땅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 < 마가 복음 4장 26 - 32 절 >
바로 그렀습니다. 추수 감사절을 최고의 절기를 치는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꽃을 피고, 가을에 열매를 맺는 모습
그리고 겨울에는 , 풍성하게 추수한것으로 ,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위대한것입니다.
또한 , 신비롭다고 이야기 할수 있는것입니다. 지구촌 친구 여러분 들께서도
어렸을때 , 부모님께서 말씀하는 모습을 , 식물이 꽃을 피는것을 보면서이야기하는것
생각할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과 삶도 , 여기에 비유하여, 신비 주의 가 될것이며,
실천과 실리주의 가 될것입니다.
지금의 사회적 기업은 일자리 창출에 의미가 있지만 먹고 살 문제를 해결한데서 넘어서서
취업자가 계속적으로 일할것인가도 문제이다. 자아개발의 욕구등을 어떻게 만족할것인지는
아무도 미래를 장담할수 없기에 , 미래의 환경은 지속 가능한 고용, 신뢰적 , 신용을 바탕으로
믿을수 있는 경제 사회 구축이 필요한것입니다.
" 지속가능 "을 가장 잘 실천하는 사람이 어부 입니다. 미래의 자원, 즉 식량으로 지구촌의
미래의 정책으로 선정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부들은 알을 밴 물고기나 새끼 물고기를 잡지
않습니다. 어장 황폐화를 막기 위해서 입니다. 기업을 경영할때도 당장 회사의 이익을
취히기보다 회사 전체를 보고 일정 부분을 희생해야 할때가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 생각해서 꼭 자원을 투자해야 합니다.
중국 민족이 , 살기위해서 , 주장하는모습은 신비주의가 될수 없는것입니다.
바로 만만디 정책으로 , 윈윈 정략으로 , 그리고 포기하는 모습은 , 바로
실리주의의 모습이기 때문 입니다. 위의 내용과 같이 , 신비주의 와 실리 주의의
백지 한장 차이가 바로 , 위대한 사상 즉 못난모습의 형태를 갈고 닦고 잘가르쳐서
쓸모있는 , 가치있는 모습을 만드는것을 , 사회체계의 사상으로 이야기 할것입니다.
지구촌 친구 여러분들의 모습이 씨를 뿌려서 , 열매를 거둬 추수하는 모습을 믿습니다.
< 태양을 바라보고 살아라. >
태양을 바라보고 살아라.
그대의 그림자를 못 보리라.
고개 숙이지 마라.
머리를 언제나 높이 두라.
세상을 똑바로 정면으로 바라보라.
나는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
내 영혼을 잃지 않았기에
그 모든것을 가진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고통의 뒷맛이 없으면 진정한 쾌락은 거의 없다.
불구자라 할지라도 노력하면 된다.
아름다움은 내부의 생명으로 부터 나오는 빛이다.
그대가 정말 불행할때 , 세상에는 그대가 해야 할일이
있다는것을 믿어라.
그대가 타인의 고통을 덜어줄수 있는 한
삶은 헛되지 않으리라.
세상에는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는것나 만져지지 않는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수 있다.
< 헬렌 켈러 >
아무도 우리들의 허락 없이
우리의 삶을 망가뜨릴수 없습니다.
세계 러시아인들이여 !
술에서 깨어나서 ,
21세기시작으로 앞장서서
세상의 등불이 되어라.
( 세계 러시아 민족 협의회 일동 ! )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추도시 >
부엉이 바위는 알고 있었을까 ?
인권대통령의 역사는 어디로 가고
인권을 떨어뜨린 , 추락시킨
추한 사회가 되어버린
이승에서 마지막 화두가 되어버린
" 저기 사람이 가네 ... "
당신의 고통과 상관없던 그 사람이 이제 찾아와
슬픈 명복을 삼가 빕니다.
부엉이 바위는 알고 있었겠지요.
당신의 아름다운 미래의 모습은 , 영원히 사라지고
인권 세상사회가 사라지는 모습이 무엇인지를
당신이 낙화 ( 落花 ) 한것이 아니고
저희가 밀어 낸것 임을 말입니다.
45미터를 날으며 무슨 생각을 그리도 하시었나요 ?
삶과 죽음이 아니고
죽음과 삶이 한 조각이라시며
다시 어느 촌구석에서 필부로 태어나
당신이 바라는 선진 조국을 일구며
사무친 화환의 고통까지도 승화 되겠지요.
나를 버려달라 하셨으나 결코 버릴수 없는
한스런 정조차 않은 민족이니 어찌하겠습니까 ?
세상이 조문을 하건만은 ,
세계가 조문을 하건만 ,
당신은 담배 연기 처럼
재만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 당신은 인권을 하신분이기에
죽음 앞에서도 , 많은 벗을 남기고 ,
만은 동행자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죽을 자유를 범하신 탓은 원망치 않겠으나
기억케 하시고 , 못다한 세상 , 못다 태운 ...!
인생의 담배는 몽달이라도 ...
저희가 챙겨 가겠습니다.
수년전 그리스 방문시
저희의 어눌한 바램임에도 특유의 어투로
즉석 수락 해주신 " 세계 한인의 날 " 제정은
오래도록 기억될것이며 ...
공항을 떠나기전 회고록 집필을
그리스의 아름다운 섬에서의 기약은 무의로 끝났습니다만
이제 살아 남아야 하는 저희들의 몫으로 소중히 간작하며
한때나마 당신의 소박한 꿈때문에 ...
저희와 부엉이 비위는 행복해 했었습니다.
당신의 참뜻대로 ...
원망 없을 세상을 만들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모든 짐을 내려놓고 편안히 가소서 ...!
< 2009년 5월 25일 그리스 아테네 한인회 , 대표자 추도시 중에서 >
< 백학 >
나는 가끔 병사들을 생각하지
피로 물든 들녘에서 돌아오지 않는 병들이
잠시 고향땅에 누워보지도 못하고
학으로 변해버린 듯하여
그들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날아만 갔어
그리고 우리를 불렀지
왜, 우리는 자주 슬픔에 잠긴 채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잃어야 하는지 ?
날아가네 , 날아가네 .
저 하늘의 지친학의 무리들
날아가네 , 저무는 하루의 안개속을
무리 지은 대오의 그 조그만 틈새
그자리가 혹 내자리는 아닐는지
그날이오면 학들과 함께
나는 회청색의 어스름 속을 끝없이 날아가리
대지에 남겨둔 그대들의 이름자를
천상 아래 새처럼 목 놓아 부르면서
병사들이 고향에 다시 귀향하지 못하는 불귀의 객이 되어
이제는 카스피해 연안으로 날아드는 백학으로 돌아온다 .
산자를 위한 장례식을 철학자들은 말한다.
인간만이 죽음이 있다고, 인간 이외의 다른
생물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
단지 없어지는 것 뿐이다.
오직 인간만이 죽을줄 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 그래서 그것을 이겨내려고 하고
그것을 맞을 준비를 하기도 한다.
죽음이 있기에 삶은 삶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공동체 사회의 이야기는 다르다.
과거의 어느 독일의 사회학자는 말한다.
노동법은 알파와 오메가 같이 영원한 영생 이야기라고 ...!
<< 미국의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의 원문 >>
지금으로부터 87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이 대륙에서 자유속에 잉태되고 만인은
모두 평등하게 창조 되었다는 명제에 봉헌된 한 새로운 나라를 탄생 시켰습니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내전에 휩싸여 있고 우리 선조들이 세운 나라가 아니 그렇게
잉태되고 그렇게 봉헌된 어떤 나라가 과연 이 지상에 오랫 동안 존재할수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받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인 이 자리는 남군과 북군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에게 마지막 안식처가 될수 있도록
그 싸움터의 땅 한떼기를 헌납하고자 여기 왔습니다.
우리의 이행위는 너무도 마땅하고 적절한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쉼터에서 이 땅을 봉헌하고 축성하며, 신성하게 하는자는 우리가 아닙니다.
여기 목숨을 바쳐 싸웠던 그 용감한 사람들 , 전사자 혹은 생존자들이 , 이미 이곳을
신성한 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거기 더 보태고 뺄것이 없습니다.
세계는 오늘 우리가 여기 모여 무슨 말을 했는가를 별로 주목하지도 , 오래 기억하지도
않겠지만 그 용감한 사람들이 여기서 수행한 일이 어떤 것이었던가는 결코 잊지
않을것입니다. 그들이 싸워서 그토록 고결하게 전진 시킨 그러나 미완으로 남긴 일을
수행하는데 헌납 되어야 하는것은 오히려 우리들 살아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 앞에 남겨진 그 미완의 큰 과업을 다하기 위해 지금 여기 이곳에 우리들 자신입니다.
우리는 그 명예롭게 죽어간 이들로부터 더 큰 헌신의 힘을 얻어 그들이 마지막 신명을
다 바쳐 지키고자 한 대의에 우리 자신을 봉헌하고 , 그들이 헛되이 죽어가지 않았다는것을
굳게 굳게 다짐 합니다. 신의 가호 아래 이나라는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보게 될것이며
인민의,인민에 의한 , 인민을 위한 정부는 이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것입니다.
<< 링컨의 게티즈 버그 연설 원문 중에서 >>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전쟁까지 치르며 어렵게 독립국가가 됐다.
그리고 " 자유와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 는 명제를 내세우며
미국을 탄생 시켰다. 합니다. 연설을 통해서 미국이 어떤 국가인지
그 정체성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또 말했다.
그리고 링컨은 실제 정치를 통해서도 미국을 지키기 위해서 편을 가르지 않는
통합의 정치, 포용의 정치를 보여줬다. 이야기 할수 있는것입니다.
피터 드러커 ( Petel F . Drucker ) 는 그의 저서 "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에서
사회 변화의 근본을 지식이라고 지적하고, 미래 사회를 지식조직 사회인 탈자본주의 사회로
정의하고 있다. 지식적용의 과정을 3단계로구분할수 있다.
첫번째는 지식을 작업도구, 프로세스 및 제품에 적용되어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다시말해서 , 과거 2차세계 대전전후 산업 혁명으로 , 생산 자동화 시스템으로 , 전쟁의
무기들을 대량 생산하여, 세계의 미래 사회체계의 문명을 바꾸어 놓았다고 이야기 할수 있다.
두번째는 지식이 업무에 적용되어 생산성 혁명을 일으켰고 , 세번쩨는 지식이 지식에 적용되어
경영 혁명 ( Management Revolution ) 을 가능케 하여 자본주의 아래서 생산의 기본요소인
자본과 노동이 퇴색하고 지식이 최고의 생산요소로 등장한다.
다시말하면 과거 세계사중에서 , 지구촌을 금융 시스템으로 경영 세계화 시켰다.
하지만 , 지구촌에서 서로가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서 대립과 갈등으로 , 피를 흘리는
역사가 되었다. 시장 경제와 상권다툼과 통합 정책을 발표하여 , 결론은 세계를 식민지화
아니면 , 신탁 통치화 를 주장하여 , 과거 개화기 시대라는 역사를 이끌어서 , 문명의 충돌과
변화라고 , 지구촌의 패권다툼을 우리들은 과거 세계사를 통해서 알고 있다.
지구촌의 금융시스템 구축은 , 바로 세계 경제의 변화를 추구하게 만든 , 국제 주식을
거래할수있게 만든 시스템 , 즉 , 국제 금융증권시장이라고 이야기할수 있는것이다.
그리고 경제 체계의 기업들을 주식회사로 만들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는 경제의 변화로 표현하면 , 개벽으로 이야기 할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다시말해서 , 세계 금융시스템을 부정하는 세력들은 , 사회체계를 자본론을 세계화 하여
자본론을 지배, 통치하기위한 지구촌의 음모론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과거 세계사부터 금융 혼란의 극복을 위해 통화의 공급을 늘리기는 커녕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 ( IMF ) 는 통화량을 오히려 감소시켜 역사상 가장 큰 불황을 촉발하며
부패 금융연합이 불황과 도산을 야기한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의 탄핵을 시도 합니다.
치밀하게 인위적으로 계획된 음모다.
국민 모두를 지배하려고 절망적인 상황을 인위적으로 조장 했다.
세계 주식 투자를 이용하여 , 경제를 장악하여, 국민들을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 세계화의 경영 혁명은 지구촌의 자본론을 차지하는 것이 안건이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1세기 전후에 와서도 , 시장 경제의 통합과 패권주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국제적 경영 혁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은 지구촌의 위기론이 된다는것이다.
21세기 전후에는 바코드 물류 혁명 즉 개방 개혁의 세계화를 움직이는 모습 즉 유통 혁명으로
지구촌의 순환관계를 중요시 하였다. 다시말해서 바코드 물류 혁명을 수용할수 있는
미래의 유비퀘터스 RFID 시대를 맞이 하게되였다.
경영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체인 기업만을 대상으로 한 용어가 아니라 특정한 목표의
달성과 가치의 창조에 관심을 집중하는 특수목적의 조직체 모든곳에 적용될수 있다.
" 우리가 역사적으로 흘리는 언어는
보이는 물질의 세계는 언어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과 경영 혁명으로 표현하는것은 일치한다."
설걔도 없이 지어지는 건물은 없다. 다시말해서, 계획없이 세계사는 만들어 지지 않는다."
언어에는 창조력과 각인력 즉 유인력의 법칙이라는 놀라운 힘이 내제되어 있음을 기억하라.
" 우리가 흘리는 언어가 씨앗이 있다는것을 명심하여야 할것이다. "
탈자본주의 사회 즉 지식사회에서는 지식이 개인속에 존재하며 , 개인으로서의 사람이 중심이
되며 지식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것을 지식은 언제나 사람속에서 구현되어 있고
시대마다, 역사마다, 사람이 갖고 다니며, 사람의 공동체에 의해 창조 되고 증대되거나
개선 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할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변화된 사회를 " 탈산업 사회 " 혹은 " 산업 후기 사회 " 라고도 부르고 또
" 지식 정보화 사회 " 라고도 부른다. 지식정보화, 사회는 통신기술과 컴퓨터가 주축이 되며 ,
통신망을 사회하부구조로 하여 정보가 사회를 지탱하고 이끌어 가는 기본요소가 되며
물건을 생산하는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 지식을 생산하는것이 중요한 일이
된다. 미래사회는 사회 시스템 구축이 열매를 맺는 모든것이라고 하여도 , 틀리지 않다.
따라서 정보가 물건으로 중시되고 물건 아닌것이 물건으로 판매되며, 근대사회에서 강조
되어온 " 규모있는 경제 " 즉 세계 금융 시스템으로 이야기 할수 있는것이다.
" 규모의 경제 " 라는 사고 방식으로는 이해 할수 없는 조직 규모의 소규모화의 성향과
개인을 한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위치 시키는 사고방식에서 탈피해 복합적 관계의 시스템
속에서 자율성을 보장하도록 하여 환경 변화의 적응력을 갖게 한다는 경영 혁명을
이야기 한다는것이다. 거대 조직은 환경 변화에 적응 못하고 , 사라져버린 공룡과 같은
운명을 갖게 될것이다. 바로 지구촌의 운명을 이야기하는것이다.
이런 뜻에서 21세기 미래의 경영 혁명은 과거의 산업 혁명보다 , 휠씬 큰의미를 지닌
지식의 생산자, 와 창조 경영자의 혁명기를 맞게 될것이다. 바로 미래의 지구촌의
미래 운명은 경영 혁명에 있다고 보는것입니다.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행복한 동행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꼭두야 꼭두야 , 아라리 난다.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타박 타박 타박네야 , 아라리 난네.
자원의 완성은 행복한 동행입니다.
April 07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행복한 동행 / 지구촌 종교 재판과 심판자들 ! ( 33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행복한 동행 / 작성자 : 조옥현 ( cho. ok . hyun )
하늘과 땅과 사람은 하나 !
하늘과 땅과 친구는 하나 !
하늘과 땅과 사랑은 하나 !
하늘과 땅과 지구촌은 하나 !
하늘만큼 / 땅만큼 ,,, 지구촌 친구 여러분들 안녕 하세요.
생명은 태어나기에 위대한겻입니다.
생명 예찬을 하기에 지구촌에서 유지를 할수 있는것입니다.
진리는 사계절의 변화로 생존과 경쟁으로 자유게 하며,
살고 있는 것도 인류 이기 때문입니다.
멀리보고 깊이 생각합니다.
열린 마음으로 대화 합니다.
그리고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내린 결론에
대해서는 책임을 함께 지는 사회를 만들어 갑시다.
우리 스스로 만든 규범을 존중하고
약속은 협력하여 실천해 나갑니다.
여행처럼 살자 . ... 행복한 동행으로
나는 살고 있다. ... 행복한 동행으로
나는 가고 있다. ... 행복한 동행으로
그러나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태평하게 살고 있는
나 스스로가 놀랍지 않는가 !
인류는 지구촌안에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이기에 모든것이 다 가능합니다.
지구촌 안에서 적극적인 평등 실현 조치법만이 가능할수 있는것입니다.
21세기 전후의세계화의 인류는 남녀 평등의 자유는
양극화 현상으로 몸으로 울었기에 일명 " 뻐꾸기는 몸으로 울었다 "이기에
자원의 완성으로 행복한 동행을 할수 있는 사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 레이디 고다이버 부인의 참사랑 >
11세기 경 잉글랜드 중부지방의 코벤트리
레오프릭 영주가 농노들을 대상으로 지나친 징세를 보다 못한
사람은 농노의 대표도, 민중봉기의 우두머리도 아닌
레오프릭 영주의 부인인 " 레이디 고다이버 였다.
그녀는 남편인 레오프릭 영주의 과중한 세금 정책을 과감히 비판하고
세금을 낮출것을 요구했지만 거만한 레오프릭 영주는
너의 그 농노 사랑이 진심이라면 그 사랑을 몸으로 실천해라.
만약 당신이 완전한 알몸으로 말을 타고 영지를 한바퀴 돌면 세금 감면을
고려 하겠다라고 빈정대며 말을 했지요.
영주는 아내가 ...
그것도 알몸으로 자의로 걸을수도 없이 말을 타고 숨지도 못한채
영지를 도는것은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기 떄문에 영주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제의를 짧은 고민끝에 받아들이기로 하고 어느날의 이른
아침에 전라로 말등에 올라 영지를 돌게 됩니다.
영주 부인이 자신들을 위해 알몸으로 영지를 돈다는 소문을 접한 농노들은
그 마음에 감동하여 레이디 고다이버 부인이 영지를 돌때
누구도 그 알몸을 보지 않기로 하고 집집마다 문과 창을 걸어 잠그고 커튼을
내려서 영주 부인의 희생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이때 레이디 고다이버 부인의 나이는 겨우 16세였습니다.
레로프릭 영주의 경영 이야기 그리고 레이디고다이버 부인의 참사랑 경영 이야기 입니다.
고르바 초프 ( Mikhail Sergeyevich Gorbachov )
1931, 3, 2 러시아 스타브로폴 프리볼레 ~
소련 공산당 서기장 ( 1985 ~ 91 ), 대통령 ( 1990 ~ 91 )
199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러시아 연방 남서부 스타브로폴 지구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46년 콤소몰
( 공산주의 청년 동맹 ) 에 가입했으며 , 이후 4년 동안 국영 농장의 콤바인 기술자로 일했다.
콤소몰에서의 활동으로 능력을 인정 받아 1952년 모스크바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고
그해 공산당원이 되었다. 1955년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 콤소몰과 정규 당조직의 여러
직책을 거치면서 지역 당위원회의 제 1서기에 올랐다.
그는 1971년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지명되엇으며 농업담당서기 ( 1978년 )와
정치국원 ( 1980년 ) 을 역임했다. 그가 꾸준히 성장을 계속할수 있었던 이면에는
이데올로기 담당 서기였던 미하일 수슬로프의 후견이 큰 역할을 했다.
유리 안드로포프의 통치기간 동안 눈부신 활동을 보았던 고르바초프는 1984년 2월
취임 15개월 만에 인드로포프가 사망하고 콘스탄틴 체르넨코가 권력을 승계했을때
이미 차세대의 지도자로서의 부각되고 있었다.
1985년 3월 10일 치르넨코 마저 급사하자 정치국은 최연소 위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소련 공산당 서기관 으로 선출했다.
고르바초프는 노쇠하고 무능력한 당간부들을 패기에 찬 신진관료들로 교체하는 등
집권초기부터 자신의 위상을 확립하는데 주력했다.
첫번째 국내목표는 브레즈네프 시대이래 정체되어온 소련경제를 활성화시키는것이었다.
그는 이를 위하여 기술현대화를 표방했으며 노동생산성 증대와 부패한 관료기구의
혁신에 힘을 기울렸다. 피상적인 변화들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1987 ~ 88년 경제
및 정치체제에 관한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착수 되었다.
그라스노스트 ( 개방 ) 정책은 소련사회 전반에 해빙 무드를 조성했다.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가 크게 확장 되었고 , 언론은 보도와 현실비판에 있어서 전에
없는 자유를 구가했으며 , 정부당국은 스틸린주의 독재체제와의 영원한 결별을 선언
하기에 이르렀다. 페레스트로이카 ( 개혁 ) 정책은 소련 최초의민주화 시도였다.
복수후보자의 경합하에 부분적으로 비밀투표가 행해졌고 , 시장경제의 요소들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국가의 보조금과 모스크바의 지령에 의존해왔던 산업체들이
스스로 생산, 자금, 이윤을 관리하게 된것은 실로 획기적인 일이었으며
소규모의 가내 생산과 개인영업도 용인되었다.
그러나 국가경제에 대한 통제권을 잃지 않으려는 관료들의 저항 또한 만만치 않았다.
외교부문에서 고르바초프는 동,서 유럽 선진국들과의 우호증진을 통하여 통상
무역관계를 발전시켰다. 1987년 12월에는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회동하여
" 중거리 핵전력전폐조약 ( INT Teaty ) 에 서명했으며 이듬해에는 9년 동안 점령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을 철수 시켰다.
1988년 10월 최고 소비에트 간부회의 의장에 선출된 그는 경제개혁에 대한 공산당
내 반발 등으로 해서 입법 및 행정기구를 당으로 부터 독립 시킬 구상을 갖게 되었다.
1988년 12월 마침내 헌법개정이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양원제 의회인 인민대표대회가
창설되었다. 1989년 3월 복수후보. 직접선거의 원칙에 따라 인민대표회의 선거가 실시
되어 5월에는 제 1차 인민대표회의에서 진정한 대의 기구인 최고 소비에트를 구성했다.
고르바 초프는 최고 소비에트 의장으로선출되었다.
고르바초프는 1989년말부터 1990년 사이에 냉전에 종지부를 찍고 유럽의 정치구도를
변화시킨 장본인이었다. 그는 동유럽의 개혁주의자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이들 정권의
잇단 붕괴를 묵묵히 받아 들였다. 동독 . 폴란드 . 헝가리 . 체코슬로바키아에 민주
정부가 들어섬에 따라 소련군의 단계적인 철수가 이루어졌다.
1990년 여름에는 동서독의 통일을 수락했으며 통일 독일의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잔류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해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국제 정치상의 지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민주화와 지방분권화로 자유의 기운이 무르익어감에 따라 아제르바이잔 . 그루지야
우즈베크 등 연방 내 공화국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리투아니아 등지의 반소 소요
사태는 명백히 분리독립운동의 성격이 짙었다. 중앙아시아의 인종분규를 유혈진압한
고르바초프는 1990년 3월 리투아니아 공화국이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포하자 경제봉쇄를
통하여 이탈을 잠정 유보 시키는 동시에 연방탈퇴의 법적 요건을 마련하기 위한 헌법
개정작업에 착수했다. 민주화조치는 소련 공산당의 권위를 실추 시켰고 그는 이 여세를
몰아 국가권력을 행정기구로 대폭 이권 시켰다. 1990년 3월 인민대표회의에서 소련
대통령으로 추대된 고르바초프는 광범위한 행정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인민대펴회의는 헌법에 보장된 공산당의 일당독재를 폐지함으로써 복수 정당제의
법제화를 준비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전체주의 정치를 불식하고 소련에 대의제 민주주의를 이식하는데
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계획 경제의 요소를 일소하여 사기업과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는데는
비교적 소극적이었다. 그는 자유경제와 통제경제라는 전혀 상반된 두체제 사이에서
절충을 모색했고 , 그 결과 소련 경제는 별다른 대안도 마련하지 못한채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행정부가 취한 모순되고 자멸적인 개혁조치들은 경제혼란을 가중
시킬뿐이었다. 허물어져가는 공산당 지도자로서 새로운 법령과 개각을 통하여 사태의
수습에 안간힘을 썼지만 행정부는 이미 권위와 효율성에 있어서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었다. 대통령은 경제파탄, 민중의 욕구불만 , 소수민족국가의 세력확장 등으로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보안기구와 담내 보수세력에 가까워졌다.
1991년 8월 19일 오랫 동안 예견되어 왔던 쿠데타가 일어났다.
크림 반도의 여름별장에 머물고 있던 고르바초프는 부통령인 야나예프 , 국방장관 야조프 ,
KGB 의장 크류츠코프 등으로 부터 사임 압력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 가족들과 함께
연금상태에 놓았다. 그러나 KGB의 사전 검거를 면한 보리스 엘친 러시아 연방 공화국
의사당에 집결,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쿠데타 세력을 궁지로 몰아넣었고 80만의
시민이 소련 전역에서 반쿠데타 시위를 벌였다. 21일 새벽 의사당에 대한 공격이 5명의
사망자를 낸 채 실패한 뒤 강경보수파의 쿠데타는 3일 천하로 막을 내렸다.
고르바초프는 모스크바로 돌아온 즉시 대통령직에 복귀하여 엘친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했다. 8월 24일 경직하고 있던 공산당 서기장직에서 사퇴했으며 8월 29일 최고
소비에트는 지도부의 쿠데타 관여를 이유로 공산당의 활동을 정지 시켰다.
1500만 명의 당원과 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최고집권자가 당수로 있었던 소련 공산당이
마침내 불법화되고 만것이다. 쿠데타의 실패로 보수세력이 일소됨에 따라 보수파와 개혁파
간의 세력균형을 바탕으로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했던 고르바초프의 입지가 대폭 축소되고
반쿠데타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한 엘친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미국은 군비축소나 경화부채 ( 硬貨負債 ) 문제의 성격상 공화국보다는 연방 대통령과
관계를 가졌으면 했지만 독일의 경우 이미 개별 공화국 특히 러시아 로 협상창구를
바꾸어놓고 있었다,
고르바초프와 소련의 운영을 결정지운것은 소수민족의 독립운동과 그대안으로서의
연방조약안이 었다. 일찍이 1990년 11월 초안이 공개된 신연방조약은 강제에 의해
성립된 소비에트 연방을 합의에 따라 재구성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었다.
조약안은 소련의 국호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하고 각 공화국의 주권을 강화했으나
조세와 관세제도, 은행 , 통화 제도를 중앙정부의 관할하에 유지함으로 써 연방의
전반적인 해체를 방지하려고 했다. 획기적인 연방조약안도 소수민족 독립운동을
잠재우기에는 미흡했다. 발트 지역의 리투아니아 공화국은 아예 연방조약 협의에
불참했고 , 조약 초안이 공개된 이후에는 에스토니아 , 라트비아 , 몰다비아 , 그리고
아르메니아와 그루지야가 신연방에의 불참을 선언하고 나섰다.
옐친은 러시아 연방공화국의 권한 확대를 주장하며 신연방조약안의 대폭적인
수정을 요구 했다.
연방권한 축소의 주장은 리투아니아 공화국의 유혈사태와 1991년 8월 19일의
보수파 쿠데타를 거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고르바초프는 11월 14일 7개 공화국
지도자들과 새로운 연방조약안에 합의 했다. 주권국가연방 " 조약안은 공화국에
독자적인 외교권과 군대창설권을 부여한 점에서 이전에비해 연방권한을 휠씬
축소 시켰지만 중앙집권적 명령체계를 갖는 통합군의 구성을 보장하고 핵의 중앙통제를
강조함으로써 연방정부의 핵심기능을 담보해 놓고 있었다.
고르바초프는 그해말까지 신 연방조약안이 조인되지 않으면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겠다고
배수( 背水 ) 진 ( 陳 )을 쳤지만 옐친은 러시아 연방공화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연방
체제를 유지하려는 고르바초프의 노력에 제한적인 협조만을 보낼뿐이었다.
1991년 12월 8일 벨로루시의 브레스트에서 회동한 옐친과 우크라이나의 크라프추크
대통령, 벨로루시의 슈슈케비치 최고회의의장은 민스크를 행정수도로 하는 " 독립국가
연합 " 의 결성을 선언, 연방해체를 막아 보려는 고르바초프의 노력에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12월 21일 알마아타에서는 1992년 1 월 1일부로 독립국가 연합을 발족시킨다는
전제하에 그루지아를 제외한 11개 공화국이 협정안에 서명했다.
1922년 스탈린에 의하여 강제 구성되어 69년 동안 지속되어왔던 "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연방 "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12월 25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사임연설이 텔레비젼을 통하여 전국에 방영
되었다. " 나는 이제 우려뿐만 아니라 인민 여러분의 지혜와 의지에 대한 희망을 함께
지닌 채 대통령직에서 물러납니다. 나는 알마아타 합의가 진정한 사회적 동의를 이끌
어내고 개혁과정을 용이하게 하는 결과로 이어질수 있도록 나의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 할것입니다.
어느 문학 , 시인의 세상표현속에서 진, 선, 미의 인류의 살아있는 생명 즉 창조성를
노래 한 모습이다.
러시아 정신의 표현자인 톨스토이도 정화된 미를 사랑과 동일한 차원으로 보면서
사랑을 행동, 곧 삶 자체와 일치시키는 보편성을 보여준다.
이성에 의한 이러한 인식적 삶은 미적 과정을 거친 쾌감인 동시에 기쁨과 즐거움으로
사회체계에 환원된다고 보고 있다. 그 속죄의 희열로 러시아의 정신을 정립하려한것
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러시아 대문호의 모습을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이야기 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지식 계급의 대표작가로서 러시아의 부조리와 죄악에
대해 많은 사랑으로 속죄하려고 했다면 , 톨스토이는 행동으로 러시아의 정신을
정립하고 속죄하려고 했다. 그의 행동은 "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 " 하는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예술적 감정은 원래 그 본질에 있어 사회적인것이다.
결과로서 나타나는 개인의 생명은 좀 더 큰 보편적인 생명과 결합기킴으로서 이것을
확대하는것 , 이것을 사회체제 구도적 이론이며 예술적 주체 사상이라고 볼수 있다.
개인의 정서는 순간적이고 개성적인 것이지만 , 인류 보편적 정서와 감정은 시대를 초월
하며, 또 변하지 않는다. 감정과 정서의 보편성을 노래한것이 지구촌의 문학이라고
말하고 있다. 진 ( 眞 ), 선 ( 善 ) , 미 ( 美 ) 를 통해서 생명의 존재와 의미그리고 기능과
존재 가치 의 축복을 지구촌에서 아름다운 모습의 표현하는것이 , 살아있는 신의 존재와
생명 즉 인류의 모습이라고살아있는 표현으로 이야기 할수 있는것이다. 인류의 표현적인
감정이나 정서는 미의 요소인 동시에 사회의 문화 즉 문학을 구성하는 기본요소라고 말한다.
그리고 죽음을 하나님의 섭리로 인정하는 삶과 인생에 대한 철저한 긍정적 관점으로
보는것이다. " 미의 보편성 " 미학사상의 공통적인 저의는 두가지 근본적 견해로
이야기한다. 즉 첫째 미는 그 자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그 무엇으로서 절대 완전자 ( 관념,
정신, 의지, 하나님 ) 의 한 표현이고 , 둘째는 미는 우리에게 느껴지는 만족이되
개인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것이다.
예술가, 지도자 의 참다운 조건은 인류에대한 참다운 사랑이라고 말한다.
세기적 대문호 톨스토이는 예술의 존재 의미를 이렇게 쉬운언어로 , 그 보편성을 보여주고
있다. 흔히 우리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수 있는 조건과 추구하는 가치를 " 진,선,미 "로
표현한다. 진( 眞 )을 인간의 지성이 추구하는 가치라한다면 , 선은 인간의 의지가 지향하는
가치이다, 미 ( 美 )는 말그대로 아름다운세상 모습이라고 할수 있다.
소득 재분배와 관련한 정치철학적 문제로 흔히 공리주의, 존 롤즈주의, 로버트 노직주의
등의 기준을 제시 된다. 지구촌 친구 여러분 ! 이들의 견해를 잘못 설명한것은
어떤것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1) 공리주의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가정한다.
2)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기준을 제시 한다.
3) 공리주의와 존 롤즈주의를 비교할때 공리주의가 소득 재분배를 더 강조한다.
4) 로버트 노직은 본질적으로 재분배 정책은 필요없다고 본다.
5) 존롤즈의 견해에 의하면 정의란 무지의 베일에 가려진 상황에서 선택하는 기준으로
최소 수혜자의 복지를 중요시한다.
소득 재분배의 정치 철학으로는 전통적인 공리주의와 존롤즈의 진보주의 ( liberalism ),
로버트 노직의 자유주의 ( libertarianism ) 가 대표적이다.
"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 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공리주의는 한계효용체감을 기초로 한다.
부유한 사람은 1달러보다 가난한 사람의 1달러의 가치 즉 큰 효용을 창출하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총 효용을 극대화하려면 부유한 사람에게 1달러를 투자하는것보다는 가난한 사람에게
1달러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1달러의 가치로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생명이 죽고
살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수 있는것이다.
다시 말해서 극단적으로는 부자의 1달러를 가난한 자에게 투자를 하면 공리주의적 원칙이
성립되어 지구촌은 , 창조적 자본의 효율적인 활용으로 사회는 충족될수 있다고 보는 견해다.
그렇다고 공리주의자들이 모든 사회 구성원의 소득이 똑 같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것은 아니다
공리주의자들은 사람들이 경제적 유인에 반응한다는 원리를 인정한다. 즉 소득이 높은 사람이
많은 세금을 내고 낮은 사람은 정부의 보조금이나 사회 보장 제도의 혜택을 받아야 하지만
세금은 열심히 일하려는 의욕을 저해하므로 사회 전체적으로 손실이 된다.
( 현실적으로는 세금 감면 제도를 적용시키는 사회제도는 사실이다.)
그래서 공리주의자들은 평등에서 오는 이익과 근로의욕 저하에서 비롯되는 손해를 잘따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적극적 평등 실현 조치법으로 , 사회체계의 빈부 격차의 구제
원칙으로 보고 이야기 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존롤즈는 사회의 각 단체 , 법 , 정책이 정의로워야 한다는 전제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롤즈는 어느 누구도 자기가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그 사회에 태어날지 모른다고 가정하는
" 무지의 베일 " 뒤에 가려진 초기 상태에서 사회적 보상 심리적 원칙 즉 사회의 환원 으로
보며 가정 할수 있다고 생각할수 있을것이다. 모두 같은 입장에 있고 아무도 자신의 사적
이익에 유리한 원칙을 세울수 없다면 공정한 합의의 결과로 정의의 원칙이 도출된다는
것이다. 롤즈는 초기 상태에서는 누구나 자기가 소득 분배의 최하위층에 떨어지지
않을까를 염려하기 때문에 공공 정책의 목표는 사회 최빈층의 복지를 증가 시키는 것이
어야 한다고 추론한다 . 공리주의자처럼 모든 사람들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 수혜자층의 효용을 증대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최소 극대화 기준이라고 부른다 , 롤즈는 공의주의보다 소득 분배를 더 강조한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로버트 노직은 분배 원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쓸데없는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제 활동의 결과를 평가하기보다는 결과가 나온 과정의 공정성을 더욱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직등 시장 자유주의자들은 기회의 균등이 결과의
균등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모든 이들이 재능을 발휘하고 성공할수 있도록
기회의 균등을 보장해야 하고 이런 게임의 규칙이 정립되면 소득 분배에 대해 정부가
관여할 이유가 없다는 견해로 이야기 하고 있다.
지구촌 친구 여러분 ! 잘못된 견해를 찾아 보았습니까 ?
바로 정답은 3) 공리주의와 존 롤즈주의를 비교할때 공리주의가 소득 재분배를 더 강조한다.
하지만 , 친구여러분의 논리 여하에 따라 , 더 좋은 견해를 세울수 있을것이며, 아무리 나쁜
논리도 , 그것을 극복하여 , 더 좋은 견해도 만들수 있다는것을 믿습니다.
지구촌에서는 모든것이 다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수 있는것은 바로 똑 같은 인류의
공동체,단체들이 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 세상을 변화 시키기 보다는 나자신부터
변화 되어야 세상은 스스로 적용하여 변화가 될수 있는것입니다. "
공수래 공수거의 인생과 삶속에서는 살아 생존에 모든것을 다 바쳤기 때문에 , 마지막
황혼에의 정열까지도 다 받쳤기때문에 가지고 갈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 만이 유토피아을 향한 모습, 지상낙원의 통로가 될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 자원의 완성으로 행복한 동행을 할수 있다 "는 모습일것입니다.
어느 언론의 사설에서 발취 한 이야기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지구촌 친구 여러분들또한
많은 생각을 할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 ONE WAY "
거울속의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져보라.
진정 내꿈을 가로막고 있는것이 무엇인가 ?
혹시 그 꿈을 가로막고 있는것이 정작 자기 자신은 아니었는가 ?
주위의 여건을 핑계 삼아 나약하게 숨어 있던것은 아니 었는가 ?
비겁한 변명들을 걷어 버리고 목표를 똑바로 바라보라.
남들이 기대하는 것이 아닌 , 스스로가 원하는 목표를 세워라.
그리고 마음에 새겨라 !
가끔 나는 누구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갖곤한다.
또 내가 진정하고 싶은것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 말이다.
그렇게 묻다 보면 마음의 푯대가 새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푯대는 나른한 일상때문에 희미해지곤 한다.
과연 이런 푯대는 나의 인생에 있어 어떤 의미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것이며
어떻게 이룰수 있는것일까 ? 바로 " 꿈을 향하여 떠나는 것 "입니다.
그릇된 결정보다 더 위험한 것은 결정을 회피한 사람들은 결국 좌절 하거나
만족을 할수 없기에 무너지고 만다고 충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 살아가면서 두려움이 가득하고 낯선곳으로 떠난다는것은 그리 쉬운일은
아닐것입니다. 엉덩이 비빌 공간도 없이 무작정 떠난다는것은 어쩌면
사회 지도자로 보면 어리석은 행동일지도 모르구요 , 그러나 떠나지 않고는
새로운 세상을 볼수도 경험할수도 없음을 지구촌 친구 여러분들 ! 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일것입니다. 인생은 멀고 행복하다 할수 있는것입니다.
여러분들은 " one Way " 꿈과 현실을 다시 점검해 보세요 .
< 평화주의 ( Pacifism ) 역사의 흐름 >
국가의 필요성에 관한 법의 정의는 , 세상의이득을 위하여 , 타협될수 없는것을
타협하려 시도하는 사람들만의 사회를 형성 시켜 만들어 낸 질서이다.
1838년 " 평화 회의에서 채택된 결의 발표 "
1838년 보스톤에서 서명한 우리는 ,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 및 평화적인
전세계 개혁작업을 추진 하기 위해 채택하는 수단들을 표현하는 선언문을 공표함이
우리 자신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 ,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에 대한 책임으로 여긴다고
발표 하였다. 그 내용을 요약 하면 우리는 어떠한 인간의 정부에 대한 충성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류에게 있어서 오직 하나의 왕과 입법자, 하나의 재판관과 통치자를
인정한다. 우리의 국가는 세계이며 , 우리의 동포는 모든 인류이다.
우리는 오직 우리가 모든 다른 지방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태어난 지방을 사랑한다,
우리의 미국 시민들로서의 이익들과 권리들은 전체 인류의 그것보다 더욱 귀중한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국가적인 모욕이나 상처에 대하여 복수하기 위하여 어떤 애국심에도
호소할수 없다. 우리는 한 국가가 외국의 원수들에 대항하여 자신을 방어하거나 그의
침략자들을 처벌할 권리가 없으며 , 어떤 개인도 자신의 일을 위하여 그러한 권리를 소유하지
못하며 단위가 집합체보다 더 크게 중요할수가 없다고 , 법치주의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약탈을 자행하며 , 살상의 의도로 외국에서 몰려오는 병사들이 사람들이나 행정관에 의해
저지 될수 없다면 , 공공의 평화 또는 개인의 안전을 위하여 자국을 괴롭히는자에게
어떤 저항도 행해져서는 안된다고 톨스토이의 저서 / 하나님의 나라는 당신안에 있느니라 .
에서 인용하여 " 자유 민주주의 , 즉 평화주의 공화제도를 선포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 극단적인 "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잘 지킬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포함되었
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인류의 섬김이로 살아가는 모습 또한 같다고 볼수
있는것입니다. " 예수의 고난은 전세계의 평화의 호소입니다."
예수의 시대에도 군대를 인정하고 있다고 것을 보면 알수 있을것입니다.
12세기에 수립된 로마의 평화 ( Pax Romana ) 는 문명 사회만을 대상으로 추구하며
세계의 전체에 퍼져있는 야만인의 위협이 그칠날이 없어서 로마인은 이 위협에 대비해
변방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 세계 패권주의 야망으로 , 합리화로 통치자들이 되었다.
로마 제국은 1만 2천KM 의 길을 만들어서 , 르네상스의 그리스 신화를 이룩하였다는
이야기로 표현 할수 있는 것이다.
< 신약성서 > 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의 가르침은 일종의 평화주의적인 것이며 예수의 초기
급진적인 추종자들은 실제로 그렇게 해석했다.
예수가 말하는 " 평화 "는 종교적 윤리를 실천하는 소수 민족이나 종파에게만 적용되는
것인데 비해 그리스도교 교회는 전세계적으로 평화가 필요하다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예수가 살아있는 시절부터 군인의 존재를 인정하였다는것 , 평화 추구와 전쟁수행 사이의
불일치는 그리스도 교도들에게 부담스러운것이었다.
그러나 3세기 초 복음서의 특정구절을 들어 군대의 존재가 용인될수 있을뿐만 아니라
악마와 싸우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해석이 나왔다고 이야기 한다.
그 예로 성서에는 하늘의 군대 " 레판의 별 " 을 하나님이 인정한다고 표현 합니다.
5세기 초에 저술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 신국론 ( De Civitate Dei ) > 은
세속적 평화와 내세적 평화를 구분 했다. 그는 세속적 평화란 그리스도교의 법과 일치할때
만 용인될수 있는것이며 , 현세의 국가들은 당연히 교회에 봉사하고 , 교회의 권위를 파괴
하려는 자들로부터 교회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 했다.
바로 예수의 고난은 여기서 부터 시작되어 , 평화의 호소로 이어졌을것이다.
바로 측 전체주의에 의해서 군대를 인정하였기때문에 , 악법도 법이기때문에 지켜야
한다고 지구촌의 역사속에서 선교적인 모습의 이야기를 할수 있는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 사유재산과 국유재산으로 이야기하면 , 사유재산은 세습을 할수 있다는
것이며 국유재산은 세습을 할수없다는 < 신국론 > 을 이야기 할수 있습니다.
이같은 사상은 중세 내내 그 영향력을 발휘했고 종말론적인 제국주의의 황제들이
내세운 신화들과 빈번하게 결합 시켜갔다. 이들 황제들은 비 신자들을 탄압하는것이
세계의 평화를 가져오는 길이라고 믿었다. 당시에는 악마라고 간주되었던 비 그리스도교도
들로 부터의 위협이 끊이지 않았으므로 , 로마의 평화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의 평화도
비 그리스도교로 부터 영원히 수호 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것이다.
르네상스 이후 평화주의의 개념은 다양한 정치적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해 왔다.
17, 18세기의 주된 평화주의 사상은 정치권력이 군주로부터 일반대중에게로 이동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사상에 따라 전쟁은 군주들의 국가들 자신의 개인적 사유물로 생각
하여 전쟁을 일으키는 반면 반대현상으로 공화국은 평화를 사랑한다는 환상이 번져 나갔다.
이러한 사상의 부산물로 19세기 유럽에 평화주의적 기구가 창설 되었는데 , 총체적인 무장
해제나 국제간의 분쟁을 조절하기 위한 특별 법정 같은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렇게 하여 평화주의라는 사상은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되었으며, 이 주제에 대하여 폭넓은
논저가 저술 되었다. 이같은 사상은 후일 헤이그 국제 재판소, 국제 연맹, 국제 연합 ( UN )
잠정적 군축 회담등으로 결실을 맺었으나 전체적으로 보아 그 효과는 아주 제한 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19세기에는 5개국 강국이 서로 세력 균형을 이루는 정치적 구도를 통해 비교적
안정된 평화가 얻어질수 있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두번의 세계 대전, 핵위협,
개발국과 개발 도상국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등으로 인해 평화주의적 원칙과 실천이 잘이루어
지지 않았다. 그예로 들면 , 제네바 협약으로 일축 시킬수 있을것이다 .
과거의 러시아와 폴란드 종교의 역사에서 보듯이 우리들은 너무도 결과를 잘알고 있다.
평화주의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즘의 일부가 아니다.
레닌은 이것을 명백히 거부 했다. 그리고 칼마르크스의 저서에서 " 혁명과 전쟁 은
동의어다. 이들의 이론들과 엥겔스의 이론들은 , 국제적인 프롤레타리아의 세계적 혁명의
승리가 가져다 주는 계급없는 사회와 보편적인 평화를 목표로 하여 , 자본 계급들에
대항하는 " 정당한 " 전쟁의 필요성을 그 시대에 맞게 역설한다.
과거 소련의 이데올로기즘속에서의 양극화 대립은 , 사회주의 공산당의 통일 해방전선의
전략적 투쟁속에서, 퍼져나가 각 대륙마다, 해방기구를 두어 투쟁하게 만들었다.
소련의 붉은 군대의 해병대의 사회체계의 도미노적인 전략으로 과녁 즉 표적을 중심으로
즉 지구촌의 제국주의를 과녁삼아서 , 전체주의적 개방 개혁 세계화 혁명을 하였다.
또한 과거 의 전쟁으로 인하여 2차세계대전을 끝내고 , 러시아 는 동독을 관리하고 ,
서독은 미국이 관리하는 신탁 통치에 서명하여 , 동유럽과 동 , 서독을 분단 정책을 실시
하였다. 동서독의 통일 정책으로 독일은 통합하였다 하지만 , 소련이 붕괴되고 , 사회주의가
해체되어 동독일이 주장하는 블랙 채널를 통해서 지상낙원을 주장하였지만 소련 붕괴후 ,
러시아는 실속을 차리기 위해서 , 독립기구 연합을 결성하여 사회주의를 해체하고,
신 자유주의를 실천하여 독일과 유럽 연합기구를 , 나토연합으로 이루어 나갔다.
독일 통합을 통해서 ,블랙채널은 허구와 허상으로 판명 되었다고 세상을 보고 있다.
과거의 역사속에서 특히 2차 세계대전속에서도 러시아는 미국과 함께 세상을 구원한 국가로
기록 되어있다. 지금도 21세기전후 개방 개혁 세계화, 사회체계의 양극화 속에서도 ,
러시아와 미국은 국제적 무한 경쟁을 통해서 구세주로 사회체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고 할수 있는것이다. 과거 소련은 옛이야기로 흘러갈 뿐일것이다.
평화주의적 행동에는 일반적으로 두가지 접근 방법이 있다.
첫째는 평화주의를 옹호 하는 국가는 전쟁을 전면적으로 포기하는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 개인의 양심을 강조하는것으로 , 개인이 그 어떤 전쟁 또는 폭력 행위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주의를 국가 정책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지는 일반 대중에게 잘알려
동참 시키고 있는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이들은 특히 전쟁의 공지된 폐해를 강조한다.
인명이 손상되고 경제적 피해가 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은 도덕적, 정신적 타락이 오게
된다는 주장이다. 제 2차 세계 대전이후에는 핵무기가 내포하는 WMD ( 대량 살상 파괴무기
방지법 ) 또는 우주 개발을 통해 우주 방위 전략 즉 스타워즈 프로젝트 ( 레이저 무기 ) 즉
외교적으로 핑퐁 정책을 통해서 보듯이 양극화적인 대립과 경쟁을 예로 들수 있을것이다.
특히 미래의 전자파 무기가 내포하는 가공할만한 파괴력이 거듭 강조되는 , 지식 문화의
다원화 문명의 충돌을 거듭 강조 되고 , 경계 되었다는것을 이야기 할수 있는것이다.
여러나라에서도 개인들이 전쟁의 사악함을 비난하고 나섰지만 진정한 평화주의 운동으로
과거부터 세계 숭불정책으로 , 불교는 무살상 , 즉 불교의 석가모니는 제자등에게 절대 살아
있는 동물들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된다고 가르쳤다. ( 뉴 에이지 운동 )
BC 3세기 석가 모니 여래 세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아소카 대왕은 전쟁을 포기한다고
선언했지만 그가 말한 전쟁은 정복전에 한정 되는것이 었다. 그러나 그 뒤 불교는 불교가
도입된 나라의 군주들이 서로 전쟁하는것을 막을수 없었다.
이렇게 된것은 불교의 가르침이 개인의 완성을 강조한것이므로 그 가르침을 그대로 따를수
있는 사람의 공동체는 극소수에 불과 했기 때문이다.
21세기 미래의 평화주의는 세계화 속에서 다수결의 원칙을 적용하는 평화주의만이 진정한
참다운 평화가 될수 있을것이다.
생명은 시대마다, 역사마다,태어나기에 위대한 것입니다.
생명예찬을 하기에 지구촌에서 유지를 할수 있는것입니다.
피할수 있는 재난은 몸소 겪겠다고 고집피우지 맙시다.
진리는 생존이며 , 경쟁을 통해서 자유케 한다는 이야기 합니다.
보이는 차원이 일차원이라면 보이지 않는 차원은 3차원 이다.
보이지 않는 차원의 정로는 보이는 차원의 모든 경험을 한후에
3차원 세계의 진입하는 시간의 시차적 공간의 통로를 열수있는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미 보이는 차원의 모든것을 뛰어 넘어 버렸으므로
보이는 차원의 실상을 모두 알아버렸으며 , 그러기에 보이는 것들의 실상을 이미
알게 되어서 , 흥미롭고 신비롭지 못하기 때문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이 미래적인
창조과학의 문명을 3차원의 세계로 이어가는 미래의 가치로 보고 ,투자를 이루고 있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가치는 남에게 보여줄수는 없지만 스스로 내면이 꽉 채워지고
포만감을 느낀다면 , 내면이 차면 배고픔도 슬픔도 걱정도 아픔도 괴로움도 없으며
늘 변함없이 영생 즉 알파와 오메가 처럼 영원하다고 3차원의 모습을 주장 한다.
하지만 , 사회 체계로 , 표현할수록 사회는 너무 비싼 문명으로 인해서 , 스스로
퇴화할것이라고 주장 할수 있다. 지구촌의 자본과 자원은 한계가 있는것은 누구도 잘알고
있기 때문에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도태되고 말것이라는 것을 , 현실적으로 이야기
하면 20세기 부터 , 인구의 포화상태의 증가하는 모습에서 종말론을 주장하는것이 현실이며
인류의 능력의 한계를 우리지구촌 친구들은 모두가 우주의 만유인력의 법칙 즉 유인력의
법칙으로 알고 있다. 종교적으로 이야기 하면 천국을 3차원으로 보고 있다. 천국에가면 ,
모든것이 다 구비되어 있어 부족함이 없이서 내세에서 있는것은 필요치 않다는이론이
성립된다 . 천국에 가면 배고픔도 슬픔도 걱정도 없다는것이 바로 인류 즉 생명을 두고,
이끌어가는 지구촌이 추구하는 믿음의 역사 즉 영생은 알파와 오메가 처럼 영원하다는
것을 3차원의 세계로 보고 있는것 또한 , 인본주의의 생명들이 추구하는역사적 미래의
생명 즉 인류의 모습이라고 할수 있는것이다. 그래서 눈으로 볼수 있는 이 세상은 허구와
허상뿐이라고 표현한다. 인류가 과거부터 추구하던 21세기의 미래적인 첨단 과학 문명은
벌써 자본과 자원의 한계에 부딕치고 있는것 또한 우리 지구촌 친구 여러분들 앞에 피부로
느낄정도로 극단적인 경제와 금융과 안보와 교육 한계 즉 위기의 모습를 하고 우리앞에
처해있는것 또한 알고 있다. 미래의 3차원의 문명을 건설하기위해서는 , 우주 공간에
생명이 살기위한 환경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 반드시 고통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
인류의 생명윤리법의 정체성이 나타날수 밖에 없는것이다. 바보같은 융통성이 없는
사람들은 피하는 재주가 없기 때문에 당할수 밖에 없으며 , 지구촌 인류가 더나아가서는
우주의 심판을 받고 나서야 하나님을 의지하여 생명의 길로 들어설때에는 깨달음이 ,
섬김이로서의 후회하는 모습일것이다. 눈으로 볼수 있는 이 세상을 허구와 허상으로
보는것 또한 , 잠재력적인 보이지 않는 미래의 3차원의 세계의 한계를 극복할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될것이다.
21세기 전후의 개방 개혁 세계화의 사회체계속에서도 변화를 감당못하고 ,미래의 3차원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소련의 붕괴와 사회주의 해체의 모습을 통해서 , 우리들은
알수 있는것이다. 보이는 세계의 뒤에 숨어있는 지구촌의 허구 와 허상의 실체의 형태가
들어난다고 , 지구촌 더나아가서 우주의 실체는 어디를 가던 , 그 존재의 실상과 실체는
똑 같다고 이야기할수 있는것이다. 21세기 미래속에서 인류의 과거의 역사는 필요없는것
또한 미래의 창조과학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는 걸림돌이 될뿐이기 때문에 외면하고
무조건 창조과학으로 문명을 만들어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 인류는 알아야
할것이있다. 자본과 자원의 한계를 , 우주의 공간속에 , 지구는 작은 혹성일뿐이다.
광할한 우주 공간은 지구촌의 인류의 환경에는 맞지 않기 때문에 , 비싼 대가를 지불할수
밖에 없기에 자본과 자원의 한계를 극복할수 없는것이다. 극복한다 하여도 , 패권주의적인
욕심과 욕망과 야망에 의해서 파멸할수 밖에 없는것이라고결론을 이야기 할수 있는것이다.
보이지 않는 가치는 보이는 것 뒤에 보이는것의 소멸이 있는후에 가능한것인데 보이는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렿게 소멸되는것을 원치 않는다.
다시말해서 원한다고 하여도, 분쟁과 전쟁과 싸움과 경쟁으로인해서 , 소멸할수 밖에
없는것이다. 전쟁은 지구촌에서 더 나아가서 우주에서도 마찬가지로 질병중에 최고로
전염시키는 최악으로 , 국가의 질병이기 때문이기에 , 성립될수 없는것이다.
" 믿음은 보이지 않는것을 보는것이다. "
믿음은 바라는것들의 실상이요 . 보이지 않는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 ( 히브리서 11장 1-2 절 )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하는 이들이 잘나가는것 같아도
결국은 하나님은 승리 합니다.
고난의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앞당겨 보는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능멸 하고 바벨탑을 쌓은 21세기 사회체계를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신대로 역사는 흘러가기에 , 권선 징악으로 시대마다 , 역사마다.
인류의 모습으로 흘러왔다는 것을이야기 하고 있는것입니다.
마치 자연의 법칙처럼 , 봄 , 여름 , 가을 , 겨울 그리고 낮과 밤이 항상 스스로
찾아오는것을 이야기 합니다.
" 바로 인류가 부정할수 없는 삶의 모습입니다. "
부정하는 그들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는것을 진노와 분노를 역사마다
지구촌의 만물의 영장에게 실천하고 계십니다.
우주의 공간속에서 , 외계인을 보고 , 인류는 무엇이라고 자학을 하고 있습니까 ?
하나님께서 우주 공간의 외계인을 선택하여 축복을 주고 잇다고 생각합니까 ?
하나님의 모습이 외계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까 ?
하나님은 지구촌의 인류를 선택하였습니다. 성경에 써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외계인의 모습이 축복 받은 모습이라고 인류는 질투를 하고 있습니까 ?
외계인의 모습은 하나님께 저주 받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지구촌의 인류의 모습만이 아름다운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주 공간속에서 지구라는 혹성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바로 증거와 증인이 지구촌의 섬김이로역사속에 신앙의 진리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공간의태양계속에서 , 자연의 법칙 처럼 , 지구는 스스로 적용 당하였습니다.
만유 인력의 법칙처럼 유인력으로 이끌려 갔듯이 , 창조주의 하나님의 계획대로
스스로 적용하듯이 이끌려가는것뿐이 없는것입니다.
바로 지구의 역사와 미래의 문화, 그리고 문명인으로 살아 남는것 뿐이 없는것입니다.
" 보이는 것은 끝이 기필코 있습니다. 그렇다고 보이지 않는것은 보이지 않기에
또한 끝이 있는것입니다. 하지만 , 자연의 사계절의 법칙 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 , 낮과 밤
처럼 유인력의 법칙 처럼 , 변화를 우리들은 진리로 감당하여야합니다.
바로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
지구촌은 보이는 현상으로의 치리가 진행이 되면서 , 보이지 않는 가치 ( 전체 주의적인 모습 )
가 쌓이게 되고 , 어느 정도 양이 차면 보이는것의 치리도 사회체계도 끝이납니다.
가치의 설정이 진행이 되면서 내면의 풍요로 인하여 점점 걱정근심이 없게 되고 , 유토 피아 ,
지상 낙원이 언제부터는 외형도 채워지기 때문에 모든 사상이 통하게 되어
이룰수 있는것입니다, 바로 , 삼위 일체의 언약의 약속이 믿음으로 ,
알파와 오메가 처럼 영생이 영원하게 만들어진것입니다.
박목월의 < " 아침마다 눈을 뜨면 , 아름다운 세상이 보인다. >
사는것이 온통 어려움인데
세상에 괴로움이 좀 많으랴 .
사는것이 온통 괴로움인데
그럴수록 아침마다 눈을 뜨면
착한 일을 해야지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서로서로가 돕고 산다면
보살피고 위로하고 의지하고 산다면
오늘 하루가 왜 괴로우랴 .
웃는 얼굴이 웃는 얼굴과
정다운 눈이 정다운 눈과
건너보고 마주보고 바라보고 산다면
아침마다 동트는 새벽은
또 얼마나 아름다우랴 .
아침마다 눈을 뜨면 환한 얼굴로
어려운 일 돕고 살자 마음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하나님은 날마다 금빛수실로
찬란한 새벽을 수놓으시고
어둠에서 밝아오는 빛의 대문을 열어 젖혀
우리의 하루를 마련해 주시는데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불쌍한 사람을 돕고
괴로운 이가 있으면 괴로움을 함께 나누고
앓는 이가 있으면 찾아가 간호해주는 ...
아침마다 눈을 뜨면
밝은 하루를 하나님께 감사 하고
착한 일을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빛같이 신선하고 빛과 같이 밝은 마음으로
누구에게나 다정한 ...
누구에게나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고
내가 있으므로 주위가 좀 더 환해지는
살며시 친구 손을 꼭 쥐어주는
세상에 어려움이 한두 가지랴 .
< 챨리 채플린의 인생관 >
내가 맛보았던 불행 , 불운이 무엇이었든
원래가 인간의 행운, 불운은
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같아서
결국은 바람따라 달라지는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
나는 불행에도 그다지 심한 충격을 받지 않았으며
행운에는 오히려 순수하게 놀라는게 보통이었다.
나에게는 인생의 설계도 없으며 철학도 없다.
현명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인간이란 모두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것이다.
__ * 챨리 채플린의 자서전 중에서 * __
세계 교회의 지도자들과 인권운동가들이 지난 3500년 동안 수백만명의 사람들을 억압했던
카스트 제도에 맞서는 운동을 보다 국제화하기 위한 행보를 펴고 있다.
카스트 제도로 인하여 차별 받은 인구는 세계적으로 2천 6백만 명이며 , 그중 2천만명이
인도에 거주하고 있다. 인도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 카스트 제도의
사성 ( 四姓 ) 에 속하지 않는 " 불가촉천민 " 들은 오염되고 , 오염시키는 사람들로 사회에서
인식되며 민주주의 의 모든것에서 열외 되어 있다. 이들 스스로가 " 억압받는 사람 들 " 이라는
뜻의 달리트 ( Dalit ) 라는 단어로 자신을 칭할 정도다.
인도의 교회와 인권 단체는 카스트 제도 문제를 중대 이슈로 다루고 있지만 , 우리만으로는
해결할수 없는 문제 " 라고 말한다. 이에 지난 3월 방콕에서 열린 세계 에쿠메니컬 회의에
참석해 " 우리는 여러분의 하나된 힘이 필요하다 " 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회의는 달리트들을 위한 정의에 관한 세계 에쿠메니컬 회의 라는 타이틀로 WCC 와 LWF
( 루터교세계 연맹 ) 의 공동기획 , CCA ( 아시아 기독교 협의회 ) 주최로 열려으며 ,
95명의 세계 교회 지도자들과 인권운동가들이 참석해 달리트의 역사와 문화 , 달리트 여성들
의 성적 억압 , 달리트 강제 노동 , 힌두교도들에 의한 달리트 크리스천 살해 등을 이슈로
다뤘다. 또한 회의 참석자들은 UN ( 국제연합 ) 이 카스트제도문제에 목소리를 내게
만들었다. UN 산하 인종차별 철폐 위원회, 여성차별 철페위원회 등이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또 오는 4월 20- 24일 UN 주최로 제네바에서 열리는 " 더반 리뷰 컨퍼런스 " 에 이 문제가
의제로 추가 됐다. , 이 컨퍼런스는 인종주의와 인종차별에 대한 세계 공동의 대책을 강구하기
위한 모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교회 지도자들의 카스트제도 반대 운동은 계속될
전망이다. WCC ( 세계 교회 협의회 ) 는 " 방콕회의에서 결의한 " Bangkok Declaration "
은 달란트들을 위한 정의 활동을 계속적으로 하기를 요청하고 있다 " 고 전세계 에쿠메니칼
단체들에게 전했다. 또 " 방콕 회의에서 결의한 " Bangkok Declaration " 은 카스트 제도도
문제를 전담하는 태스크 그룹을 설치할것을 요청하고 있다 " 고 강조했다.
1970년대 후반 한국에서 민중 해방 신학이 나왔던것과 흡사하게 , 요즘 인도에서는 " 달리트
신학 "이 떠오르고 있다. 달리트는 인도의 계급사회에서 가장 하위계층인 불가촉천민으로
그뜻은 압제받는 사람들 " 이다. 인도에서 1억명을 웃돌고 있으며 , 3천 5백년 동안 " 불결하고
오염된 존재 " 정도의 취급을 받아왔다,
달리트 신학은 하나님이 달리트들의 해방을 위해 함께 일하고 계신다는것에 기반했으며
인도학교 사이에서 대두되고 있다. 달리트신학은 현지에서 " 달리트들의 잃어버린 권위와
인권을 찾는 새로운 운동으로 인정받고 있고 , 인도교회 한 지도자는 " 이신학은 달리트들의
잃어버렸던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되찾아 줄것 " 이라고 평가했다.
달리트 신학과 더불어 떠오르고 있는것이 " 달리트 판차야트 무브먼트 ( Dalit Panchayat
Movement;yat = assembly , Panch= of five ) 다. 이운동의 특징은 달리트들의 과거
희생이 아닌 , 숨겨진 잠재력에 포커스를 맞춘것이다.
달리트운동가인 Jyothi Raj 박사는 " 희생자 의식에 먼저 접근하고 극복방법을 후에 찾는
것은 해결이 될수 없고 , 오히려 열등의식을 키울수있다 " 며 지금까지 한번도 표출된적이
없는 달리트들의 잠재 가능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그는 이러한 운동이 인도의 현재
역사 기록 방식을 바꿀수도 있다며 " 달리트들은 역사적으로 희생당해 왔지만 , 역사기록에
있어서도 희생자 " 라고 말했다.
달리트 판차야트 무브먼트 " 에 속한 달리트들은 압제적인 카스트 사회제도에 도전한다.
예를 들어 달리트들은 전통적으로 상위계급 사람들의 죽은 동물을 운반해 왔는데 ,
이 운동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은 " 우리는 당신의 죽은 동물과 상관이 없다.
당신이 그것을 옮기고 땅에 묻지 않는다면 우리도 그럴수있다 , 고 말한다.
이들은 협상하는 법도 배운다. 전통적으로 달리트들은 무덤을 팠지만 교육받은 이들은
" 무덤을 파려면 2천루피를 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일을 하지 않을것이다.
라고 말한다. 달리트 판차야트 무브먼트는 인도의 Kartanakas Tumkur 구역에서
시작됐는데 , 10명의 리더들로 이뤄져있고 여기엔 연장자, 젊은이 , 여성이 포함되어있다.
10명중 5명은 반드시 여자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들은 이 운동을 매우 긍정적으로
내다 보고 있다. 요즘은 정부에 살곳을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들 중 90% 는
땅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 마하트마 간디의 기도문 >
마하트마 간디는 그의 어록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 사람은 몸에 음식이 필요하듯, 우리의 영혼에도 기도가 필요하다.
그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 인도는 우리나라입니다.
모든 인도 사람들은 우리 형제이고 자매들입니다.
우리는 인도를 사랑하고 풍요롭고 다채로운 문화 유산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항상 그 가치를 존중합니다.
그분들의 기쁨이 곧 네 행복입니다.
지구촌의 친구들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지 못하는 많은것들과
우리가 선택할수 있는 많은것들 ...
그리고 선택의 우선 순위에 의해서
결정되는 수 많은 우리의 삶의 질을 두고
우리는 그것들을, 때로는 ...
모두를 운명이라 하기도 하고
모두를 자신의 쟁취였다고 믿으면서
우리가 생활 할 오늘의 날씨를 선택하지 못하는데도
우리는 선택할수 없는 많은
하느님의 영역은 걱정하면서도
정작 , 우리가 지을수있는 내얼굴의 밝은 표정과
우리 마음속의 그릴수 있는 따뜻한 기상도는
남이 만들어 주는것이라는 착각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외식을 하면서 짜장면을 먹을까 ?
짬뽕을 먹을까 ? 잠시라도 선택을 가능하면서도
노모의 문병이 먼저인지 ?
비지니스 모임이 먼저인지 ? 그런것에는
너무나 당연히 발길의 우선순위을 정하곤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한번, 딱 한번 만이라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제까지 내가 해왔던 선택과 선택의 우선순위는 그렇다 치고
이제부터의 나의 선택은 어떤것이여야 하며
내 선택의 우선 순위는 어찌 되어야 할지를
세상은 어두워 질것이고 그대는 불을 밝혀야 하리라 .
오 , 인간이여 , 생이 그대를 저버려도 멈추지 마라.
오 , 인간이여 , 그대가 약하든 , 강하든 쉬지 마라.
혼자만의 고투를 멈추지 마라.
세상은 어두워 질것이고 그대는 불을 밝혀야 하리라.
그대는 어둠을 몰아내야 하리라.
오, 인간이여 , 생이 그대를 저버려도 멈추지 마라.
< 사회를 병들게 하는 일곱가지의 악 >
또는 < 나라가 망해가고 있는 일곱가지의 징조 > 라는
무서운 경고로도 인용되고 있는 < 간디 >의 이 경구들이
21세기 시대를 시작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모두에게
많은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첫째는 원칙없는 정치
둘째는 노동없는 부 ( 富 )
셋째는 양심없는 쾌락
넷째는 인격없는 교육
다섯째는 도덕없는 경제
여섯째는 인간성없는 과학
일곱째는 희생없는 신앙
막 출발하려는 기차에 간디가 올라탔습니다.
그순간 그의 신발 한짝이 벗겨져 플랫폼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기차가 이미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간디는 그 신발을 주울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간디는 얼른 나머지 신발 한짝을 벗어 그 옆에 떨어뜨렸습니다.
이유를 묻는 한 승객의 질문에 간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바닥에 떨어진 신발 한짝을 주웠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에게는 한짝만의 신발로는 아무런 쓸모가 없을겁니다.
하지만 내게도 쓸모가 없어져버린 나머지 한 짝을 그에게 주면
그 사람은 온전한 신을 신게 되지 않겠습니까 ?
지구촌의 인본주의 와 신본주의 사상이든지 , 온전한 신을 섬김이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 온전한 신체와 온전한 믿음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모습이 신발의 두짝이 ,
온전한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 바로 세상이 온전할수 있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 나부터 , 작은것부터, 지금부터 , 변화는 시작 되어야 합니다. "
사람의 신체중에서 , 발은 신발이 한짝이면 , 바로 장애인 입니다.
사람은 발이 두개가 있기예 , 신발도 두짝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가정에서의 부부는 일심 동체가 되어야 만이 온전한 가정을 이룰수 있는것입니다.
바로 우주 만물의 음양의 진리적 법칙 이기도 합니다. "
우주의 법칙 처럼 , 지구는 동그랗기에 항상 제 자리에 서있는것입니다.
바로 우주의 법칙 처럼 , 만유 인력의 법칙 처럼 , 유인력으로 이끌려 세워지는것이
세상적인 모습의 음양의 법칙 입니다.
" 우주의 생태계의 신진대사를 하지 않는 힘이 부패한다고 주장하는것이 옳다면
어떤 경계를 넘어서면 , 미래의 기계적인 문명의 힘은 부패한다는것도 사실상 똑 같이
피할수 없는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의 외침이 항상 정당한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 당신은 정의( 正義 ) 가 무엇인지 절대로 알수 없는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하늘을 향해 다가가고 있습니다. ( 스페이스 법칙 )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사람들이 다시 천국( 유토피아 , 낙원 ) 에서 내려오고 있습니다.
저기 신을 능멸하고 바벨탑을 쌓은 저기 위에는 아무걱정도 없다고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위기는 충분히 언급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기의 해결을 위한 비젼이다.
이를 위한 아이디어가 부족한것이 아니다. 이를 위한 사회체계의 주체 사상이 부족한것
또한 아니다. 부족한것은 변화를 가져오려는 정치적인 주체 사상의 용기와 사회적인
의지만이 궁극에서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살아있는 영혼만이 승리 할것입니다.
나는 현재 우리에게 닫치고 있는 지구촌의 위기 즉 환경재앙 때문에 결국은 우리가
더 나은 삶의 경험을 통해서 인생을 생명윤리법으로 향하는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을수 없으리라고 믿습니다. 나는 방향을 잃을때 북극성을 찾아 이정표로 삼습니다.
북쪽으로 가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북극성에 도달하려는것은 물론 아닙니다.
동서 남북 , 모든 방위를 알고 찾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
지구촌의 모습은 어떻게 보고 싶습니까 ?
지구촌의 친구 여러분들이 보는 시각적인 사회의 모습은 똑같은것입니다.
밝게 빛나는 대륙은 부자의 땅, 어두운대륙은 빈자의 땅 이라고 합니다.
지구가 가장 아파하는 대륙에 사는것은 , 어느누구도 세계화에서 평가를 할수 있습니다.
지구촌은 항상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는 , 우리 이웃은 , 우리 가족들은 항상
먹고 살기 위해서 , 더 잘살기 위해서 , 노력하는모습이 전부라고 이야기 합니다.
자연의 법칙 처럼 , 태양이 떠오를때 일어나서 일하라.
세상은 공짜가 없다고 , 이야기 합니다. 또한 낮에 열심히 일하고, 해가 지면 , 밤에는
휴식을 취하고, 숙면의 밤을 지내라고 , 이야기 하고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꾸준히 , 열심히 , 온힘을 다하여 자연이 말하는 바를 거역하고 역행하며,
피할수 있는 재난을 , 몸소 겪겠다고 , 이야기 만 하고 있는것 같은 모습을 합니다.
21세기 현실속에서 , 지구촌 친구 여러분들이, 세워져있는, 서있는 세상모습은
무엇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 바로 요구하고 있는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세상과 희망으로
볼수 있을것입니다. 지구촌의 그 화려함속의 뒤안길도 , 다시한번 우리의 모습으로
표현되어야 될것입니다.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 행복한 동행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 꼭두야 꼭두야 , 아라리 난다.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타박 타박 , 타박네야 ! 아라리 난네 .
자원의 완성은 행복한 동행입니다.
March 19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행복한 동행 / 지구촌 종교 재판과 심판자들 ! ( 32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행복한 동행 / 작성자 : 조옥현 ( cho.ok hyun )
하늘과 땅과 사람은 하나 !
하늘과 땅과 친구는 하나 !
하늘과 땅과 사랑은 하나 !
하늘과 땅과 지구촌은 하나 !
하늘만큼 / 땅만큼 ... 지구촌 친구 여러분 , 사랑합시다.
사랑하는자는 형통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 2008년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한 기도 >
예루 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자는 형통하리로다. ( 시편 : 122편 6절 )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이스라엘에 있는 백성들과 거민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시옵고
그 땅의 지도자들이 그들의 모든 문제를 주님께 의탁하며
주님의 뜻을 이룰수 있게 하여주시고
이스라엘 땅에서 테러와 폭력이 사라지고, 유대인과 아랍인 모두가
메시아 예수안에서 화해하도록 하여 주시고 , 역사적으로 환란과
핍박과 죽음을 당해 온 유대백성의 과거의 아픔을 치료해 주시고
보호하사 평강이 임하게 하여 주시고 , 특히 그들의 청년들이 진리를
듣고 깨달아 그들에게 이미 오신 메시아 예수를 영접하게 하여 주옵소서 ! / 아멘 "
앙리 뒤낭 ( Jean Henri Dunant ) 와 파시 ( Frederic Passy )
장 앙리 뒤낭 (Jean Henri Dunant / 1828년 - 1910년 ) 은
국제 적십자의 창설자이다.
어머니 앙트와 네트와 아버지 자크 뒤낭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제네바 시의회에서 의원으로 활동 했으며 어머니는
종교 개혁자 장 칼뱅을 존경하는 개신교신자였다.
부모의 영향을 받아 청소년기부터 환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구호하는데
힘썼으며 1844년 영국 복음주의자들이 만든 기독교 사회 운동 단체인
YMCA ( 기독교 청년연합회 ) 창설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힘이 아닌 아버지의 경제적인 도움을 받아서 활동하는 한계를
발견하자,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에 지역주민들의 빈곤퇴치를 위한
제분회사 즉 밀가루 공장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1858년 이탈리아 통일전쟁때 제분회사의 수리권을 얻고자 북이탈리아로
나폴레옹 3세를 찾아가던 길에 프랑스및 사르다니아 연합군 그리고 오스트리아군 사이의
솔페리노 전투에서 생긴 수천의 부상자들의 참혹한 전투가 막 끝난 카스틸료네 마을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 그곳에서 많은 전상자들이 그대로 버려져있는 비참한 광경에 충격을
받게 되었고 , 인근 마을 부녀자들과 함께 아군과 적군의 차별 없이 전상자들을 돌보아주기
시작했으며, 참여하고 만나 국적에 구애없는 구호에 참가했다. 그후 제네바로 돌아온 뒤낭은
솔베리노 전투의 참상과 그의 체험과 이때의 경험을 " 솔페리노의 회상 ( Unsouvenir
de Solferino ) "( 1862년 )에 실렸는데, 이책에서 앙리 뒤낭은 상병자를 간호하기 위해
헌신적이고 자격있는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구호단체를 평시에 각국내에 설치할것과
군대 부상병을 돌보는 군의료요원들과 군목들을 보호하고 이들의 의료활동을 보장할수
있는 전시의 부상자구호를 위한 국제적인 조약을 체결할것을 제안하고 중립적 민간
국제기구 창설의 필요성과 역설하였다. 이 제안은 유럽 각국으로 부터 큰호응을 받아
1863년 국제 적십자 위원회가 창설 되었고 다음해인 1864년 정치, 종교, 이념의
중립성 유지 , 국적에 구애없는 구호활동을 원칙으로 하는 제네바 협약이 체결 되었다.
이 국제회의를 통해 흰색바탕에 붉은십자 모양의 표장을 선정하고 , 10개 조문의 적십자
규약을 채택함으로써 국제 적십자 운동은 정식으로 시작 되었다.
적십자 활동을 하느라 부모가 물려준 유산을 포함한 전재산을 모두 써버린 앙리뒤낭은
1867년 고향인 제네바를 떠나 프랑스 파리에 이사하여 글을 옮겨적는 일을 하였다.
1871년 프랑스와 독일간의 보불 전쟁이 벌어지나 앙리는 프랑스 국방 위원회의 보조를
받으면서 구호를 활동을 하였다.
1892년에는 스위스출신 의사의 배려로 알프스가 보이는 양로원에서 1910년 별세할때까지
여생을 보냈다. 1901년 박애정신과 평화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제 1회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 적십자 운동의 아버지 "로 불리며, 1864년 뒤낭의 생일인 5월 8일을
적십자의 날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파시 ( Frederic Passy / 1822년 - 1912 년 )
프랑스의 경제 학자 , 국제 중재의 주창자
1901년 적십자를 창설한 장 앙리 뒤낭과 함께 최초의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프랑스 최고 행정 재판소의 회계감사관 ( 1846년 - 49 년 ) 으로 일한뒤 파시는
여러 경제개혁과 자선활동에 관련된 저술과 강연 , 조직활동에 몰두했다.
열렬한 자유무역주의자인 그는 영국의 경제학자인 리처드 코브던이나 그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던 존 브라이트와 함께 19세기 자유주의 전통에 속한다 .
평화를 위한 파시의 활동은 크림 전쟁 ( 1853년 - 56년 ) 때부터이다.
정기간행물 < 탕 Le TemPs > 1867년에 평화를 호소하는 글을 실어 룩셈부르크를
차지하기 위한 프랑스와 프로이센 간의 전쟁을 막는데 크게 기여 했다.
같은 해 그는 국제 평화 연맹 ( Ligue Intemationale de Ia Paix ) 을 창설했는데 이조직은
후에 국제 분쟁의 중재를 위한 프랑스 협회로 알제분쟁의 중재를 위한 프랑스 협회로 알려졌다.
프랑스 - 프로이센 전쟁 ( 1870년- 71년 ) 뒤 그는 알자스로렌의 독립과 영구중립을 제안했다.
1881년부터 프랑스 하원의원으로서 프랑스형 기아나와 수리남 간의 경계에 관하여 프랑스와
네덜란드 사이에 벌어진 분쟁을 중재하여 성공했다. 그는 국제의회연맹 ( IPU /1889년 )
설립에 일조했고 여생을 평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국제 적십자 위원회 ( International Committee Of the Red Cross , ICRC )는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스위스의 민간 기구이다.
제네바 협약에 따라 전쟁, 내란, 등의 국제적 혹은 비국제적 무력분쟁에서 전상자, 포로,
실향민 피난민, 민간인 등의 희생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국제적십자 위원회는 1917년 과 1944년 , 1963년 세 차례에 걸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로
했다. 각국의 적십자사 또는 적신월사와 함께 국제 구호 운동을 펼치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국제적십자운동의 창설자인 앙리 뒤낭과 그외 4명의 제네바 시민이
전시 부상자구호를 위해 1863년 설립했던 " 전시부상자구호위원회를 전신으로 하고 있다.
본부는 제네바에 있으며 전 세계 60여개국의 분쟁지역에 80여개의 대표단을 설치하고
활동하고 있다. 무력분쟁이 없는 경우 지역을 관할하는 지역 대표단을 설치하고 있는데
동아시아 지역의 경우 중국 베이징에 대표단이 있다.
국제 적십자 . 적신월 운동 ( INternational Red Cross and Red Crescent Movement )
은 전쟁, 자연재해 등에서의 희생자들과 기아 선상의 난민들을 돌보기 위한 목적으로 조직된
인도주의적 단체이다. 창설자 앙리 뒤낭은 1858년 이탈리아 통일전쟁의 참화를 목격하고
여러 나라에 인도주의 단체의 결성을 제창하여 1863년 제네바에서 국제 적십자 운동이
시작되었다. 빅토리아 시대에 영국 적십자사는 인류의 복지에 많은 공헌을 했다.
제 2차 세계 대전 등 큰일이 있을때마다 적십자사는 각지에서 인도주의 구호 활동에
전념하였다. " 국제 적십자 사 " 라는 표현이 종종 쓰이지만 , 실제로 이 이름을 가진
공식 기관이 있는것은 아니다. 이 운동은 같은 원칙과 목적, 상징을 공유하는 여러 독립
단체로 이루어져 있다 .
< 제네바 협약 >
앙리 뒤낭의 혁신적인 제안 내용을 검토하여 그 실천 방안을 모색토록 하기 위해 발족된
5인 위원회 ( ICRC 의 전신 ) 가 주동이 되어 1863년 10월에 소집된 국제 회의는 각국에
적십자사를 설립하자는 결의를 채택 하였으나 전지에서 부상자 및 구호요원의 보호문제는
국가간의 협정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였다. 그리하여 이듬해인 1864년 8월
스위스 연방정부의 초청으로 16개국 26명의 정부 대표들이 참석한 외교회의가 제네바
에서 개최되었고 2주일 뒤인 8월 22일 12개국 정부대표가 최초의 제네바 협약에
서명 하였다. 이 협약의 정식 명칭은 < 육전에 있어서 군대 부상자의 상태 개선에 관한
1864년 8월 22일자 제네바 협약 > 으로서 10개 조문으로 되어 있다.
이 협약의 목적은 전지에서 부상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군인은 국적을 불문하고 보호하고
치료하여 주며 그들을 구호하는 요원이나 시설을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데 있었다.
이 최초의 제네바 협약은 육전에서의 전쟁 희생자만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점차 전쟁의
양식이 변화함에 따라 이것을 해전에 적용하기 위하여 1899년 헤이그에서 1864년 8월
22일 제네바 협약의 제원칙을 해전에서 응용하기 위한 1899년 7월 29일 헤이그 협약
즉 전문 14개조의 제 2 제네바 협약이 제정 조안 되었다.
또한 부상자 , 조난자 못지 않게 육체적 , 정신적 고통을 당하는 전쟁 희생자 , 즉 포로의
인도적 대우에 관한 협약은 제 1차 세계 대전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 포로의 대우에 관한
1929년 7월 27일 제네바 협약 , 즉 전문 97개 조의 제 3 제네바 협약이 제정 조인되었다.
이 3개의 제네바 협약이 제 2차 세계대전까지 적용되는 과정에서 발견된 결함이나 미비한
상황을 보완하는 작업이 끝난 후 ICRC 에 의해 바로 착수되어 3년여 동안의 노력 끝에
1948년 제 17차 적십자 국제회의에 제출 되었고 1949년 제네바에서 개최된 외교회의에서
전시에 있어서의 민간인 보호에 관한 협약 ( 제 4 협약 ) 을 포함 현행 < 1949년 8월 12일자
전쟁 희생자 보호에 관한 제 4 협약 > 이 채택 되었다.
그 4개의 협약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육전에 있어서의 군대의 부상자 및 병자의 상태 개선에 관한 1949년 8월 12일자
제네바 협약 ( 제 1 협약 )
해상에 있어서의 군대의 부상자 , 병자, 및 조난자의 상태 개선에 관한 1949년 8월12일자
제네바 협약 ( 제 2 협약 )
포로의 대우에 관한 1949년 8월 12일자 제네바 협약 ( 제 3협약 )
전시에 있어서의 민간인 보호에 관한 1949년 8월 12 일자 제네바 협약 ( 제 4협약 )
이 상의 4개 협약의 규모는 429개 조문과 11개의 부속 서로 이루어져 있으며 성문화된
전쟁법규의 약 80%를 차지 한다. 1997년 말 현재 188개국이 가입 하였으며 실질적으로
강대국 전부를 포함한 세계 모든 국가라고 할수 있으므로 제네바 협약은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 법규라 할수 있다. 우리나라는 1966년 8월 16일 자로 제네바 협약에 가입
하였다. < 추가 의정서 >
1949년 새로운 제네바 4개협약이 제정된 후에 한국 동란, 중국전쟁, 월남 전쟁 , 인도,
파키스탄 전쟁, 기타 아프리카 각지에서의 무력분쟁에서 게릴라 전투원의 취급, 민간
항공기와 그 승무원의 문제등 기존의 제네바 협약으로는 규율할수 없는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였기 때문에 ICRC는 1968년 세계 인권선언 20 주년에 즈음하여 유엔총회가
채택한 < 무력 충돌시의 인권존중 결의 사항 > 이 계시가 되어 1972년 부터 2회의 정부
전문가 회의와 4회의 외교회의 ( 19784년 - 1977년 ) 을 거쳐서 1977년 6월 8일
< 국제적 무력 충돌 희생자 보호에 관한 1949년 8월 12일자 제네바 협약 추가 의정서 1 >
의 조문과 < 비국제적 무력충돌 희생자 의 보호에 관한 1949년 8월 12일자 제네바 협약
추가 의정서 2 > 의 28개 조문을 채택 하였다. 한국은 1982년 1월 15일자로 2개의
의정서에 비준 하였고 같은 해 7월 15일자로 발효 되었다.
평화 주의 ( Pacifism )
평화주의분쟁을 종식 시키는 방식의 하나로 전쟁과 폭력의 반대 개념이 원칙의 입장에서
보면 국가가 교전을 개시하거나 개인이 전쟁에 참가하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잘못된
것으로 판단된다. 고대 사회에서 일부 집단은 전쟁을 필요악이라고 생각한 반면 어떤
집단은 아예 악한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여러나라에서 개인들이 전쟁의 사악함을 비난하고 나섰지만 인류 최초의 진정한 평화주의
운동은 세계 숭불 정책으로 , 불교는 무살생, 즉 불교의 석가모니는 제자들에게 절대 살아
있는 동물들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된다고 가르쳤다.
BC 3세기 석가모니 여래 세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아소카 대왕은 전쟁을 포기한다고
선언했지만 그가 말한 전쟁은 정복전에 한정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뒤 불교는 불교가
도입된 나라의 군주들이 서로 전쟁 하는 것을 막을수 없었다.
이렇게 된것은 불교의 가르침이 개인의 완성을 강조한것이므로 그 가르침을 그대로 따를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서양의 고전시대에 평화주의는 극소수 지식인들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이상에 불과했다.
스토아주의를 포함한 그리스의 평화관은 민족이나 왕국의 집단적 행동에 바탕을둔것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평화로운 행동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로마 시대에 평화란 국가나 왕국간의
협약에 의해 얻어지는것으로 정의되었으며 , 이협약에 의해 " 공정한 " 상황이 창조 되고
또 쌍방간의 인지를 얻어낼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같은 사법적 접근은 어디까지나
문명 사회 에만 적용되는것이었다. 따라서 12세기에 수립된 로마의 평화 ( Pax Romana )
는 문명 사회만을 대상으로 하고 야만인은 배제했으므로 전세계적인 개념은 아니었다.
게다가 야만인의 위협이 그칠 날이 없어서 로마인은 이 위협이 그칠날이 없어서 로마인은
이 위협에 대비해 변방을 지켜야 했다.
복음을 전파한 그리스도교는 집단의 평화는 물론 개인의 비폭력도 주장했다.
< 신약 성서 >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의 가르침은 일종의 평화주의적인 것이며 예수의 초기
급진적인 추종자들은 실제로 그렇게 해석했다. 예수가 말하는 " 평화 " 는 종교적 윤리를
실천하는 소수 민족이나 종파에게만 적용되는것인데 비해 그리스도교 교회는 전세계적으로
평화가 필요하다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예수가 살아있던 시절부터 군인의 존재를 인정하였다는것 ,평화추구와 전쟁수행 사이의
불일치는 그리스도교도들에게 부담스러운것이었다. 그러나 3세기초 복음서의 특정 구절을
들어 군대의 존재가 용인될수 있을뿐만 아니라 악마와 싸우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해석이
나왔다고 합니다. 5세기초에 저술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 신국론 De Civitate Dei >
은 세속적 평화와 내세적 평화를 구분했다. 그는 세속적 평화란 그리스도교 법과 일치
할때만 용인될수 있는 것이며 , 현세의 국가들은 당연히 교회에 봉사하고 교회의 권위를
파괴하려는 자들로부터 교회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사상은 중세 내내 그 영향력을 발휘했고 종말론적인 황제들이 내세운 신화( 神話)
들과 빈번하게 결합되었다. 이들 황제들은 비신자들을 탄압하는것이 세계의 평화를 가져
오는길이라고 믿었다. 당시에는 악마라고 간주되었던 비 그리스도교도들로 부터의 위협이
끊이지 않았으므로 , 로마의 평화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의 평화도 비 그리스도교로부터
영원히 수호 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르네상스 이후 평화주의의 개념은 다양한 정치적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해 왔다.
17, 18세기의 주된 평화주의 사상은 정치권력이 군주로부터 일반대중에게로 이동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사상에 따라 전쟁은 군주들의 왕조적 야망과 권력투쟁으로부터
일어나는것이라고 생각 되었으며 , 따라서 군주들은 국가를 자신의 개인적 사유물로 생각
하여 전쟁을 일으키는 반면 공화국은 평화를 사랑한다는 환상이 번져나갔다.
이러한 사상의 부산물로 19세기 유럽에 평화주의적 기구가 창설되었는데 , 총체적인
무장해제나 국제간의 분쟁을 조절하기 위한 특별 법정 같은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렇게 하여 평화주의라는 사상은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되었으며, 이 주제에 대하여
폭넓은 논저가 저술 되었다. 이같은 사상은 후일 헤이그 국제 사법재판소, 국제연맹
국제 연합 ( UN ) , 잠정적 군축 회담 등으로 결실을 맺었으나 전체적으로 보아
그 효과는 아주 제한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19세기에는 5개 강국이 서로 세력균형을
이루는 정치적 구도를 통해 비교적 안정된 평화가 얻어질수 있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두번의 세계대전, 핵위협, 개발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 등으로 인해 평화주의적 원칙과 실천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평화주의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즘의 일부가 아니다.
레닌은 이것을 명백히 거부 했다. 그리고 칼 마르크스의 저서에서 " 혁명과 전쟁 " 은
동의어이다. 이들의 이론들과 엥겔스의 이론들은 , 국제적인 프롤레타리아의 세계적 혁명의
승리가 가져다 주는 계급없는 사회와 보편적인 평화를 목표로 하여 , 자본 계급들에 대항하는
" 정당한 " 전쟁의 필요성을 역설 한다.
평화주의적 행동에는 일반적으로 두가지 접근방법이 있다.
첫째, 평화주의를 옹호하는 국가는 전쟁을 전면적으로
포기하는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는것이다.
둘째, 개인의 양심을 강조하는것으로 , 개인이 그 어떤 전쟁 또는 폭력행위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주의를 국가정책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지는 일반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특히 전쟁의 공지된 폐해를 강조한다 . 인명이 손상되고 경제적 피해가 오며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은 도덕적, 정신적 타락이 오게 된다는 주장이다.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핵무기가 내포하는 , 미래의 전자파 무기가 내포하는
가공할만한 파괴력이 거듭 강조 되고 경계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구촌 친구 여러분들은 , 세상의 근본을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나는 지구촌에서 , 우주공간에서 , 이야기하면 생명을 발견하기 위하여
사는것과 찾는것이라고 , 영원한것을 구하고 세우는것이라고생각합니다.
하다못해 , 인생과 삶을 왜 ! 찾는것입니까 ? 영생으로영원한 삶을 세우기 위한것입니다.
하다못해서 복지사회와 병원과 의료 행위를 왜 찾는것입니까 ? 살기위해서 찾는것입니다.
맛있는 음식과 양식을 왜 찾는것입니까 ? 살기 위해서 세워 놓는것입니다.
지구촌의 모든것 , 특히 미래의 " 사이버 월드사회 " 를 왜 주장하고 찾는것은 살기 위해서
세워 놓는것입니다.
" 모든 근본의 생명을 찾는것은 살기 위한 인본주의주체사상 과 근본주의 주체사상 이기
때문이라는것을 우리 지구촌 친구여러분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종교와 신앙과 신의 존재 즉 로고스 같은 가치를, 인류의 이웃을 지구촌에서
왜 찾는것입니까 ? 우주의 공간속에서 , 살기위해서 유인력 법칙으로 , 만유인력 법칙으로
살기위해서 , 세워놓기 위해서 찾고 구하는것입니다. 하다못해 지구촌의 유토피아 지상낙원
은 언제 만들것입니까 ? 벌써 , 천지 창조 시대부터 , 21세기 까지 흘러가고 있습니다.
지구촌에서 , 정보화 통신의 혁명으로 , 개방과 개혁과 통합정책으로 지구촌을
세계인으로 왜 모든것을 구하고, 찾고 있는것입니까 ? 왜 , 21세기에 와서 또 다시
세계는 자유인이다는 신자유주의의 외침이 있습니까 ?
바로 단 한가지 살기위해서 모든것을 찾고 ,구하고 ,세워놓는것입니다.
지구촌의 인류 미래의 비젼 즉 인본 주의 주체 사상을
추구하는것 또한 ,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다 못해 , 지구촌에서 문명의 제품들을 왜 , 창조력을 발휘하여
만들어 내고 찾고 있는것입니까 ? 바로 단한가지 , 살기위해서 만들어 내는것입니다.
미래의 국가와 정부와 사회와 민족근본주의 를
왜 ! 찾고 세우는 것 또한 , 살기 위하여 만들어 내는것입니다.
왜 ! 과거부터 인류는 미래를 건설하고, 문명사회라고 찾고 구하고 세워놓고, 도구주의화
시킨 인류의 역사라고 지구촌의 역사와 시대마다 , 인류는 무엇을 추구 하려고 ,
혈안이 되어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 과거시대마다, 사회체계의 비젼으로 , 주체 사상을 주장하고,
사회 문화 혁명이라고 하였습니까 ? 왜 , 사회주의 , 공산주의 , 자유 민주주의, 제국 주의 를
근본적으로 , 사회의 문명이라고 단정과 규정으로 , 정립하려고 이야기 합니까 ?
왜 과거부터, 종교의 의미로 " 인민과 신의 존재 " 와 로고스사회 공동체로 , 근본주의라고
주장하고 생각하며 , 미래의 비젼 즉 예언이라고 , 서로가 잘났다고 투쟁을 믿음이라고
표현 합니까 ? 바로 단한가지 잘 살기 위해서 주장하고, 찾고, 구하고 지구촌에
세워놓는것입니다. 바로 생명 윤리법으로 규정을 하였던 것입니다.
생명은 태어 나기에 위대한것입니다. 바로 단지 살기 위해서 입니다.
생명예찬을 하기에 지구촌에서 유지를 할수 있는것 입니다.
진리는 생존이며, 경쟁을 통해서 , 자유케 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하다못해 지구촌의 인류는 시대마다 인류의 역사로 평화 수호를 비젼으로 제시하였습니다.
평화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세계가 하나의 단위로 조직되어 회원국인 각나라들을
단속할수 있는 힘이 생길때까지는 하지만 사회 문화의 오류로 미래 문명의 충돌뿐입니다.
전쟁포기가 세계 국가 정책이 근본적으로 될수 없다는 것을 미래적으로 입증하고
있는것입니다. 평화주의를 지지하지 않는사람들 역시 전쟁의 폐해가 심각하고 ,
국제적 단속과 관리기관이 필요하다고 , 모두가 정치적 사회체계에서, 시인하지만
이들집단들은 평화주의자가 지구촌의 질서를 타락 시켰다고 , 외면하고,
탈세계화 시켰다고 간과했다고 주장합니다.
즉 평화주의적 정책을 채택했다가 외부의 침략을 받았을때 직면하게 되는 온갖 폐해를
어떻게 감당할것인가 , 합리화 시키며, 떠 넘기기 식 ,정책으로 일관하고 그것을 지구촌의
역사라고 , 외면하기가 , 시대마다, 역사마다, 문명마다, 사회마다 바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것 입니다. 이들 지구촌 평화주의자들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간과했다고
주장합니다. 즉 평화주의적 정책을 채택했다가 외부의 침략을받았을때 직면하게 되는
온갖 폐해를 어떻게 감당할것이며 , 외부의 침략자들이 대량 수감 또는 대량 학살을
저지르면서 평화주의자들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 평화주의적인 사람들을
전체주의적 체계에 종속 시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평화주의자들은 이런 지적에 대하여 그런 억압을 받고서도 비폭력으로 대하면 가장
야만적인 침략조차도 무장해제 시킬수 있다고 말하고 , 주장하고 , 비젼을
정치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비폭력은 비폭력적인 저항을 의미하는것인데 일반 대중들이
정복자나 압제자의 강권( 强勸 )에 전혀 협력하지 않음으로써 이들에게 어려움과 불편함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일어난 여러가지 사건들은 이런 평화주의적
대응이 침략자를 무장과 무장 해제 시키지 못할뿐만 아니라 평화주의적인 사회까지도
보존할수 없음을 의미로 부여하고 보여 주었습니다. 또한 중세에서
아돌프 히틀러 나치 체제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적 시간적인 의미를 부여하는것을
명예로 알고받아들이는것을 있지 못하고 ,
잊어 먹고 있다는것을 생각해보아야 할것입니다.
평화주의를 지지하는 그리스도교 세력들은 엄청난 박해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 사회주의 , 공산주의 , 패권주의 , 제국주의를 일방적으로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도 과거부터, 상권다툼으로 , 생존권으로 욕심이 많았기때문에 상대적으로
미움을 받았다는것입니다. 모두가 평화주의적인 정책을 폈으나 수세기에 걸쳐서
더욱더 심한 박해를 받았을 뿐이라는 시대에 맞는 역사가 전부입니다.
평화주의적 비폭력의 대응은 극단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적은 정치 권력과 그 권력내부에
일부라도 평화주의를 이해하는 양심세력이 있을때만 그 효력이 있다고 할수 있는것입니다.
대부분의 비평화주의자들은 외부의 침략에 대해 전혀 저항을 하지 않는 나라는 곧
그 침략국의 제물이 되고 , 또 그 침략자는 더욱더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표현 할것이라는
것만 예측 할수 있다는것을 과거의 역사와 시대마다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 차원의 평화주의에 비해 개인 차원의 평화주의는 비교적 흔한 현상이라고 할수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소규모 그리스도교 세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충실히 이행하여
군복무의 이행을 거부하고 그에 따르는 형사적, 민사적 불이익을 기꺼이 감수해 왔다.
양심적인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모두 평화주의를 지지하는것은 아니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평화주의적 행동 철학 , 윤리 도덕적인 인권적 양심선언과 생명윤리법을
표현 하였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는 이야기 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국가가 교전( 交戰 ) 중일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평화 주의자들
사이에도 많은 의견 차이가 있다. 국가의 전시동원체제에 절대 응할수없다는 극소수의
사람에서부터 실제 총을 쏘는 전투에 참가하는것 이외에는 모든군사행동에 기꺼이 참가
하겠다는 사람까지, 피난 가겠다는 모습까지 다양하다.고 이야기 할수 있는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구촌의 다원화 문화적인 모습으로 표현하면 합리화가 되는것이다.
" 국가의 필요성에 관한 법의 정의는, 세상의 이득을위하여 , 타협될수 없는것을
타협하려 시도하는 사람들만의 사회를 형성시켜 만들어낸, 질서이다. "
1838년 " 평화 회의에서 채택된 의 견의 발표 "
1838년 보스톤에서 서명한 우리는 ,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 및 평화적인
전세계 개혁 작업을 추진하기 위해 채택하는 수단들을 표현하는 선언문을 공표함이
우리 자신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에 대한 책임으로 여긴다고
발표하였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우리는 어떠한 인간의 정부에 대한 충성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류에게 있어서 오직 하나의 왕과 입법자, 하나의 재판관과 통치자를
인정한다. 우리의 국가는 세계이며, 우리의 동포는 모든인류이다.
우리는 오직 우리가 모든 다른지방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태어난 지방을 사랑한다.
우리의 미국시민들로서의 이익들과 권리들은 전체 인류의 그것들보다 더욱 귀중한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국가적인 모욕이나 상처에 대하여 복수하기 위하여
어떤 애국심에도 호소할수 없다. ...
우리는 한 국가가 외국의 원수들에 대항하여 자신을 방어하거나 그의 침략자들을
처벌할 권리가 없으며 , 어떤 개인도 자신의 일을 위하여 그러한 권리를 소유하지
못하며 , 단위가 집합체보다 더 큰 중요할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약탈을 자행하며 , 살상의 의도로 외국에서 몰려오는 병사들이 사람들이나 행정관에
의해 저지될수 없다면 , 공공의 평화 또는 개인의 안전을 위하여 자국을 괴롭히는
자에게 어떤 저항도 행해져서는 안된다.고 " 톨스토이 의 저서 / 하나님의 나라는 당신
안에 있느리라 " 에서 인용하여 , 자유 민주주의 , 즉 평화주의 공화제도를 선포하였습니다.
" 믿음은 보이지 않는것을 보는것이다. "
믿음은 바라는것들의 실상이요 , 보이지 않는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 ( 히브리서 11장 1-2)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하는 이들이 잘나가는것 같아도
결국은 하나님은 승리합니다. 고난의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앞당겨 보는것 , 그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신대로 역사는 흘러가기에 , 시대는 흘러왔기때문입니다.
마치 자연의 법칙 처럼 , 봄, 여름 , 가을 , 겨울 그리고 낮 과 밤이
항상 스스로 찾아오는것을 이야기 합니다.
" 바로 인류가 부정할수 없는 삶의 모습입니다. "
그들때문에 하나님 이름이 더럽혀지는것에 분노를 느낌입니다.
우주 공간의 태양계 속에서 , 자연의 법칙 처럼 , 지구는 스스로 적용당하였습니다.
유인력의 법칙처럼 , 만유인력의 법칙처럼 , 하나님의 계획한대로 이끌려가는것입니다.
바로 지구의 역사와 미래의 문화, 그리고 문명인으로 살아 남기때문입니다.
지구촌의 최고 지도자가 지녀야 할 자질과 조건, 인격으로 존경받는 존귀한 모습으로
갖추어야 할 4가지 항목은 꼭 알아야 합니다.
첫째가 건강입니다.
둘째가 비젼입니다.
셋째가 정열입니다.
넷째가 설득력 입니다.
다섯째로 이야기하면 , 책임과 결단력 , 선택력 입니다.
첫번째의 건강에 대하여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것입니다.
건강은 지도자뿐만이 아니라 만인에게 해당 되는 조건이다.
두번째 조건인 비젼이란 한마디로 미래를 제시할수 있는 능력이다.
국민들에게 지금은 어려울지라도 이 어려움을 극복하여 나가면 밝은 내일이
있음을 보여줄수 있는 능력을 일컫는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희망을 보여주는
능력이라고도 할수 있다.
세번째 조건인 정열 , 곧 Passion 은 정치에서든 경영에서든 최고지도자가 지녀야
할 기본이다.정열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되는 속성을 지닌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쓴 " 역사철학 " 이란 명저가 있다.
이 책의 말미에 헤겔이 쓰기를 인류의 오랜 역사를 살피건데 인류사에 큰 업적을 남긴
지도자들의 공통된 특성이 정열을 지닌 사람들이었다고 하였다.
네번째 조건인 설득력은 현대사회에서 일꾼들이 지녀야 할 필수조건이다.
더욱이나 민주주의 사회나 , 공산주의 , 사회주의 , 자유 , 평등 , 박애 를 근본목적으로
추구하겠다는 주체 사상의 공동체들은 , 설득력이 장점으로 표현되어야
미래가 있는것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일찌라도 국민들이나 구성원들을 설득하지
못하고서는 성공에 이룰수가 없다. 설득력에서 중요한것은 설득력은 타고나는것이
아니라 , 공동체의 다수결의 원칙을 준수할때 훈련에 의하여 이루어지는것입니다.
마지막 조건으로 이야기 하면 , 결단력, 선택력 , 책임력은 최종적으로
열매를 맺는 조건들이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에 " 상호존중에 기반한 새로운 출발 "을 제안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 국가의 최대 명절인 이란력 ( 曆 ) 설날 20일인 " 나우르즈 " 를
맞아 발표한 비디오 메시지에서 " 새 행정부는 전 영역에 걸쳐 외교를 통해 미국. 이란
양국 간에 건설적 관계를 추구하려한다 " 고 말했다. 오바마의 메시지는 이날 중동
지역에 위성을 통해 수신되는 " 미국의 소리( VOA ) " 방송 및 중동지역 방송들을 통해
이란어 자막과 함께 전송되어 언론에 보도 되었다. 외신들은 " 역사적인 대 ( 對 )이란
직접 호소라는 " 올리브 나뭇가지를 꺼내 들었다 ( AFP ) " 30여년 계속된 적대 관계를
청산하는 첫 걸음 ( 뉴욕 타임스 ) " 이란을 악의 축 " 으로 편가르기식 했던 부시 정권과의
확실한 결별 ( CNN ) 등으로 큰 의미를 부여 했다. 오바마는 이란은 국제사회에서 합당한
지위를 되찾을 권리가 있으며 , 이런 지위는 테러나 무기가 아니라 이란 국민과 문명의
진정한 위대함을 드러내는 평화적 행동을 통해 달성될수 있다. 고 말했다.
이란의 음악, 문화, 예술은 수세기에 걸쳐 세계를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 며 " 양국 관계가 오랜 세월 긴장 상태에 놓였지만 이란의 새해 첫날을 맞아
공통의 인류애가 우리를 한데 묶어 주고 있음을 상기하고자 한다 " 고 덧 붙였다.
이란 정부는 즉각 환영의사를 밝혔다.
이란 대통령 언론 보좌관인 알리 아크바르 자반페크르 는 AFP 통신에 " 과거의 상호
차이를 극복하자는 미국 대통령의 제안을 환영한다" 고 말했다.
그는 이차이를 극복하려면 미국 정부가 과거의 잘못을 인정. 수정해야 할것 " 이라면서도
" 오바마 대통령이 행동할 의지를 보인다면 이란도 그에게 등을 돌리지 않을것 " 이라고
말했다. 국제 사회도 환영 일색이다. 하비에르 솔라나 ( EU )외교 정책 대표도
" 이란과 국제 사회의 관계에 새장을 열 매우 건설적 메시지 " 라고 높이 평가 했다.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 차관은 " 심도 있는 대화를 통해 이란 핵 프로그램의
평화적 성격에 대한 신뢰를 되살릴수 있을것 " 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구촌의 평화가 두나라의 관계 개선으로 이루어지길 바랄뿐입니다.
개혁. 개방의 포문을 연지 30년 , 중국은 세계 3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는 등
놀랍도록 발전했다 . 글로벌 금융위기로 각국 경제가 위축되면서 자본주의가
시험대에 오른 가운데 이같은 발전상은 더욱 빛나 보인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 중국이 세계를 보는 방식과 세계가 중국을 보는 방식 "
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같은 발전상 이면에는 내부적인 정치 및 경제적인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고 지적 했다. 현재 자본주의가 공황상태에 놓여있는 가운데 중국은 비교적
안전한 것처럼 보인다. 유럽, 일본, 모두 전후 최악의 경기후퇴에 진입했고 ,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도 " 수퍼 파워 " 를 잃었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 패권주의 "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밝혀왔지만 , 중국이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 " 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도 더 이상 " 중국은 자국의 경제 발전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 세계
무대에서는 겸손한 역할자를 추구한다 . " 는 입장을 고수하지 않는다.
그는 중국을 위대한 힘 ( Great PoWer )이라고 묘사하면서 , 미국의 방탕한 소비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티모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취임 직후 중국이 환율을 조작
하고 있다 고 지적하면서 기선 제압에 나섰지만 ,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중국을 방문하는등 중국의 존재감은 확대되고 있다.
이가운데 내달 개최 예정인 선진 20개국 ( G 20 ) 회담이 미국과 중국의 G2 회담이 될것이
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중국이 남중국해역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면서 미국이 최신예
구축함을 급파, 이해역을 두고 양국이 대치를 벌이고 있는 점도 이같은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 중국의 부상( 浮上 )은 기존 부시 행정부의 독주를 견제하고자 했던 유럽은
물론 아시아에서의 라이벌 부상 ( 浮上 )에 대해 과민한 일본의 우려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의 상황도 만만치 않다. 21세기 들어 가장 어려운 한해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의 실직자는 2000만명에 달하는 등 사회 불만은 고조되고 있다.
최근 이같은 중국의 상황을 감안해 세계 은행은 중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6.5%로
제시 했다. 다른 국가와 비교할때 엄청난 성장세지만 , 여태 두자릿수의 성장률을 구가 하던
중국에는 " 경기 후퇴 " 와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게다가 전 세계적으로 " 자본주의 " 경제 발전 모뎀에 대한 의구심이 짙어지는 가운데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있는 중국에서 이같은 체제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중국 좌파 국가주의자들은 현 시기를 시장경제 체제를 중단할수 있는 기회로 보고있다.
이시기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내에 중국을 다자 ( 多自 )무역 시스템에 편입하도록
유도하지 못한다면 역사는 그를 실패했다 고 평가할것이다.
단기적으로 그는 중국이 여태까지 공언한 약속을 지키도록 하고, 착오에 대해 경고할 임무를
지니고 있다. 이와 관련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 장관의 경우 중국의
티베트 및 인권문제에 대해 해결하려는 자세를 지속적으로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고한다.
정부의 국가인권위원회 조직 축소문제가 제네바 유엔 유럽본부에서 진행된 제 10차 유엔
인권 이사회 에서 공식 제기 됐다. 알렉시 아사타슈빌리 멕시코 국가인권위 대표는 이날
대표 발언을 통해 " 한국 국가 인권위의 인원 및 사업을 상당히 감축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방침은 커다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고 주장했다.
아사타슈빌리 대표는 이날 한국과 멕시코 , 호주, 인도, 뉴질랜드 , 말레이시아 ,
아프가니스탄 등 7개국 국가인권기구를 대표해 발언했다.
그는 " 유엔 인권 최고대표와 국제 인권위원회가 우려를 표명했는데도 불구 , 한국 정부는
국가 인권위의 조직을 구조조정하려고 한다. 면서 그것은 인원의 20%를 감축함으로써
한국 국가 인권 권위의 핵심 사업들에 심각한 영향을 줄것 " 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그런 조치들을 강요하는것은 독립적이고 효과적인 국가인권기구로서
기능하는 한국 국가인권위의 능력을 제약할것 " 이라고 말했다.
아사티슈빌리 대표는 세계 경제침체에 직면해 상당수 국가의 인권기구들이 극심한
예산 삭감을 비롯한 심각한 도전들을 겪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하고 , 각국 정부의 전향적
대응을 촉구 했다. 앞서 나바네템 필레이 유엔 인권최고대표에 이어 제니퍼 린치 국가인권
기구 국제 조정위원회 ( ICC ) 의장은 각각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앞으로 공식 서한을
보내 국가 인권위의 조직 축소 계획을 감행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방침에 깊은 우려를 표시
하고 재고를 촉구하기도 했다.
행정 안전부는 국가 인권위의 5본부 22팀 4소속기관을 1관 2국11과 3소속기관 ,으로
조정하고 , 정원도 208명에서 164명으로 44명 ( 21.2% ) 줄이는 개편안을 전하면서
이를 정부부처 차관회의를 거쳐 국무회의에 상정, 통과 시키겠다고 밝힌바 있다.
당신이 차지하지 않는다면 , 적이 가져가 당신을 무너뜨릴것이다 . !/ 권력의 법칙
어지러운 시대일수록 물밑에서 벌어지는 , 동물의 약육강식 세계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인간의 사회속의 법칙인 파워게임은 치열하다. ! / 권력의 법칙
도덕이나 실력이 아니라 권력게임에 능한자가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 사회 직위와
위치관계 !/ 권력의 법칙 사소한 말실수와 행동이 생사를 결정하던 시대에 살아남은법칙 !/
권력의 법칙 이책의 역사적 사례들이 이를 증명한다. 로버트 그린은 홀로 선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파멸할수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세상이 작동... 하는 리모컨, 컨트롤 ,
유도장치, 방식과 이면의 패권주의의 진실을 똑바로 바라보라고 말한다. / 권력의 법칙
피할수 없을 바에야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당하지 않는다는 파워게임 / 권력의 법칙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라도 , 무엇보다도 조직을 잘 이끌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방법 / 권력의 법칙 이책을 읽는 이들에게는 비장의 무기이지만
적에게는 치명적인 상처를 줄수 있는 ,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 백승의 위험한 책 /
권력의 법칙 그렇기에 전세계 리더들이 서재에 반드시 감추고 있는 " 권력 바이블 "
무서운 책 / 권력의 법칙 독자들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 무서운 모습이기에
외면해왔던 진실과 현실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로버트 그린에게
열광하게 될 세상 이야기 책/ 권력의 법칙 권력을 쟁취하고 , 유지하고, 발휘하기 위한
사회체계 /권력 법칙 지구촌의 3천년 역사를 시행착오로 만든 권력의 바이블 /
권력의 법칙 현실세계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 / 권력의 법칙입니다.
권력의 법칙이라는 책의 모습으로, 세상 사회체계 이야기로 비유해 보았습니다.
로마교황청에서 카톨릭의 교리와 구원의 진리를 부활의 확정하기 위하여 신부들의 모임을
소집하였다. 그 모임에 초대받은 사람가운데는 칼 라너라는 신학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신학자들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한 사람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모임을 가지던 중간에 서로의 의견이 통일되지 않는 어려운 문제가
생겼다. 그러자 회의를 주재하던 사회자는 잠시 회의를 중단하고 , 함께 회의에 참석하던
신부들에게 각자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구한 뒤에 다시 모여서 회의를
계속하자고 제안 하였다. 그리하여 거기에 참석한 모든 신부들은 각자 자신의 기도처소로
들어 갔다.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었으나 대부분의 신부들은 20분 정도 기도한 후에
뛰쳐 나오며 "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어려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 " 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직 신학자 라너만은 이직도 그의 기도실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마도 우리의 박식한 신학자 라너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올것이다 " 라고 기대 하였다. 시간이 한 30분 쯤 더 경과한 뒤에 라너의 기도실에서
누군가가 뛰쳐나왔는데 , 뛰쳐나온 분은 라너가 아니라 , 하나님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머리를 흔들면서 말씀하시길 " 라너의 말이 너무 어려워서 도대체
무슨말인지 모르겠다. 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 목자의 올바른 선택으로 , 예비된 천국을 만들수 있는것입니다. "
안셀름( Anselm ) 의 고전적 정의에 따르면 신학이란 꼭두각시 , 허수아비 ,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거나 무비판적인 반복하는것이 아니라 , 생명 탐구하는 과정으로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이다. 신학이란 하나님을 향한 신앙속에서 우리에게 알려진 충만한 진리를
질문하는 가운데 계속적으로 탐구해가는 과정이다.
신학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속에서 시작한다.
신학은 아무런 전제없이 시작하는 학문이 아니다. 신학에는 분명한 출발점이 있다.
출발점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맺어가는 출발점 즉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현실에 대하여 우리는 신앙으로 응답하는 가운데 신학으로 출발한다.
다시 말해서 , 예수의 고난은 전세계의 평화의 호소이다는 모습속에서 보면
신학의 출발점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즉 나의 모습이 되는것이다.
신학은 고백으로 시작한다. 고백은 항상 긍정적인 모습, 즉 생명이 충만한 모습이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에 신학으로 알수 있는것이다.
만약에 세상속에서 인류에게 계시의 현실이 없거나 부정된다면 , 신학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학문이 아니라 오직 인간 자신의 종교적 소원을 기술하는 학문이 될수밖에 없다.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충만한 진리이다. 진리는 한정될수 없는 충만한 진리이며
신학이기때문이다. 신학은 우주의 공간처럼 무한대의 창조적인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신학은 언제나 자신의 출발점을 기억함으로써만 참으로 생명 신학이 될수 있는것입니다.
신학은 인간학에서 머물지 아니하고, 살아계신 하나님과 부활하신 에수 그리스도의
참 진리를 추구하여 영원한 영생의 길, 즉 구원의 통로를 연결하는 모습입니다.
신학은 세상 질문에 답변하는 , 사회의 질문에 답변하는 실천적인 증거를 보여주는
학문입니다. 참된 신앙과 신학은 계속적으로 질문을 던지며 탐구하는 가운데
진리를 향하여 나아가는 새롭게 변화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신학은 마지막이 없으며 , 계속적으로 부활하며, 영원히 살아가는 생명의 표현입니다.
신학은 신이 없기에 그 즉시 즐기는것 보다 , 신이 있기에 그 즉시 즐기는것이 보기에
더 좋은학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도 항상 영원토록 동일하지만 ,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언제나 변화하는 가운데 있으며 모호한 상황을 연출하는
인간학에 머물고 있는것이 현실이기에 때문이다. 신학은 , 올바른 선택과 올바른 결정으로
방향을 제시하는 생명의 명제가 주어져 있다는것을 명심하여야 만 한다.
말의 자유를 통해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데 , 오히려 말의 자유가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자유가 상처를 주고 못을 박았습니다. 그렇다고 말의 자유룰 포기
할수는 없습니다. 자유로운 말은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하늘이 주신 권리입니다.
다만 그 말에는 울림과 떨림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 지구촌 역사속에서 한번 속으면 속인 사회가 잘못이라고 하지만 , 두번 , 세번 속으면
속은 사회는 잘못이고 바보다 " 라고 세상은 말하고 싶어한다. "
" 제노사이드의 개념화와 유엔 협약 "
흔히 국가 권력 혹은 그에 준하는 권력체의 대리 집단 이 특정 집단 구성원을 절멸할 의도를
갖고 체계적인 계획속에서 실행한 집단학살 로 정의되는 " 제노사이드 ( Genocide ) 는
인종이나 종족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genos 와 살인을 의미하는 라틴어 cide 를 결합
하여 만든 합성어로 폴란드 출신 법학자 라파엘 렘킨 ( Raphael Lemkin ) 에 의해
1943년 처음으로 개념화 되었다. 즉 현대어로는 죽음의 행진 , 또는 인종 청소 ,
킬링필드 , 대량 살상 무기 방지법 를 이야기할수 있다.
성경으로 이야기하면 시대마다. 역사마다. 타작기를 만들어서 세상을 타작하는 모습을
, 탄압과 억압과 박해로 표현할수 있다. 다시 말해서, 말세와 종말론을 주장하는 역사를
이야기 할수 있다.
이어 2차 세계대전기간 동안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를 목도한 렘킨은 제노사이드는 " 어떤
집단을 절멸할 목적에서 그 집단 구성원들의 생활에서 본질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토대들을
파괴하기 위해 자행되는 다양한 행위들로 이루어진 공조 가능한 집단의 계획 " 을 뜻하며
제노사이드의 목표는 " 한집단의 정치 제도와 사회제도, 문화, 언어, 민족감정 , 종교, 경제적
생존기반을 해체하고 , 개인적 안전, 자유, 건강, 존엄성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 심지어는
그 집단에 속한 개인들의 생명까지 파괴 " 하는데 있다고 포괄적으로 규정 히였다.
유엔과 국제사회속에서 제노사이드 범죄의 반인도성을 확인 하고 , 그범죄를 명령하고 집행한
사람뿐만 아니라 , 그범죄를 조장하는 " 철학 "을 수립하고 가르친 사람까지 처벌할수 있는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여 , 제노사이드를 자행한 나라에 대해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집단책임까지도 물어야 한다는 렘킨의 제안과 주장은 1946년 유엔 총회에서 의제로
상정되었고, 결국 " 정치적 , 종교적 , 인종적 혹은 어떤 다른 이유 "에서 자행된 제노사이드
범죄를 비로소 국제법상의 범죄로 공인하는 인류 최초의 유엔 결의문이 채택 되었다.
그리고 1948년 파리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1946년의 제노사이드 결의안을 바탕으로
" 제노사이드 범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 이 92개국의 찬성으로 공식 채택 되었다.
유엔 제노사이드협약 은 " 1)구성원을 살해하는것 2) 집단 구성원에 대해 중대한 육체적
정신적 위해를 가하는것 " 등을 제노사이드 범죄 행위라고 적시하고 " 제노사이드 범죄를
저지른 자. 공모한자. 교사한자. 미수자. 공범자. 등을 처벌 대상으로 규정 하였다.
1948년 유엔 제노사이드 협약 의 정신은 20세기 들어와서 유난히 거세게 일기 시작한
집단학살의 야만적 물결을 , 인류의 이름으로 이성의 보편적 가치와 기준에 따라
저지함으로써 세계의평화를 도모하자는것이다.
2005년 기준, " 제노사이드 협약 "을 비준한 국가는 모두 137개국이며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 일본 등 50개 국가는 아직도 협약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우 " 유엔 제노사이드 협약 "이 채택된 후 무려 38년이 지난 1986년 에
이르러서야 비준 되었다. 다시말해서 사형제도 폐지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수 있다.
독일의 전 대통령 바이츠 체커는 이렇게 말했다.
"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사람은 현재에 대해서도 맹목이 되어 버린다.
과거의 비인도적인 행위를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은 새로운 감염의 위협에
노출된다. " 라고 이야기 하였다. "
" 주님안에 모든것이 있습니다. "
주님안에 모든것이 있습니다.
주님안에 은혜가 있습니다.
주님안에 길이 있습니다.
주님안에 사랑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 안에
죽음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안에
부활도 있습니다.
주님안의 은혜로
내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건이
참 의미를 회복합니다.
주님안의 길에서 ]
소중한 만남들과 규칙을 따라 목적지에 이릅니다.
주님안에서 사랑으로
오래 참음과 감사함의 비밀을 압니다.
인생과 은혜
그길과 사랑이 다힐때
주님안에서 죽음, 그안에
마지막이 아닌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 있음을 믿습니다.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 행복한 동행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꼭두야 꼭두야 아라리 난다.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타박 타박 타박네야 , 아라리 난네 .
자원의 완성은 행복한 동행입니다.
March 06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행복한 동행 / 지구촌 종교 재판과 심판자들 ! ( 31 )얼레리 꼴레리 아리랑 ! / 행복한 동행 / 작성자 : 조옥현 ( cho.ok.hyun )
하늘과 땅과 사람은 하나 !
하늘과 땅과 친구는 하나 !
하늘과 땅과 지구촌은 하나 !
하늘만큼 / 땅만큼 ... 지구촌 친구 여러분! 안녕 하세요.
지구촌의 독립 국가들의 독립 선언문으로
세상을 구원과 해방 이야기로 , 치유하여 봅시다.
모두가 항상 건강 하세요 .
세계 인권 선언
전문
모든 인류 구성원의 천부의 존엄성과 동등하고 양도할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및 평화의 기초이며 ,
인권에 대한 무시와 경멸이 인류의 양심을 격분 시키는 만행을 초래하였으며 , 인간이
언론과 신앙의 자유, 그리고 공포와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릴수 있는 세계의
도래가 모든 사람들의 지고한 멸망으로서의 천명되어 왔으며
인간이 폭정과 억압에 대항하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반란을 일으키도록 강요받지 않으려면
법에 의한 통치에 의하여 인권이 보호되어야 하는것이 필수적이며
국가간에 우호관계의 발전을 증진하는것이 필수적이며
국제 연합의 모든 사람들은 그 헌장에서 기본적 인권, 인간의 존엄성 과 가치, 그리고
남녀의 동등한 권리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 하였으며 , 보다 폭넓은 자유속에서 사회적 진보와
보다 나은 생활수준을 증진하기로 다짐하였고
회원국들은 국제연합과 협력하여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보편적 존중과 준수를 증진할것을
스스로 서약 하였으며 , 이러한 권리와 자유에 대한 공통의이해가 이 서약의 완전한 이행을
위하여 가장 중요하므로 이에 국제 연합총회는
모든 개인과 사회 각 기관이 이 선언을 항상 유념하면서 학습및 교육을 통하여 이러한
권리와 자유에 대한 존중을 증진하기 위하여 노력하며, 국내적 그리고 국제적인 점진적
조치를 통하여 회원국 국민들 자신과 그 관할 영토의 국민들 사이에서 이러한 권리와
자유가 보편적이고 효과적으로 인식되고 준수되도록 노력하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과 국가가 성취하여야 할 공통의 기준으로서 이 세계 인권선언을 선포한다.
제 1 조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인간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부여 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
제 2 조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과 같은 어떠한 종류의 차별이 없이 , 이 선언에 규정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 더 나아가 개인이 속한 국가 또는 영토가 독립국
신탁통치지역, 비자치지역이거나 또는 주권에 대한 여타의 제약을 받느냐에 관계없이
그 국가 또는 영토의 정치적, 법적 또는 국제적 지위에 근거하여 차별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제 3 조
모든 사람은 생명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제 4 조
어느 누구도 노예상태 또는 예속 상태에 놓여지지 아니 한다.
모든 형태의 노예 제도와 노예 매매는 금지 된다.
제 5 조
어느 누구도 고문, 또는 잔혹하거나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처우 또는 형벌를
받지 아니 한다,
제 6 조
모든 사람은 어디에서나 법앞에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권리을 가진다.
제 7 조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어떠한 차별도 없이 법의 동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 위반되는 어떠한 차별과 그러한 차별의 선동으로부터 동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 8 조
모든 사람은 헌법 또는 법률이 부여한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에 대하여 권한있는
국내법정에서 실효성 있는 구제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 9 조
어느 누구도 자의적으로 체포, 구금 또는 추방되지 아니 한다.
제 10 조
모든 사람은 자신의 권리, 의무, 그리고 자신에 대한 형사상 혐의에 대한 결정에 있어
독립적이며 공평한 법정에서 완전히 평등하게 공정하고 공개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 11 조
1, 모든 형사피의자는 자신의 변호에 필요한 모든 것이 보장된 공개 재판에서 법률에
따라 유죄로 입증될때까지 무죄로 추정받을 권리를 가진다.
2, 어느 누구도 행위시에 국내법 또는 국제법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작위 또는 부작위를 이유로 유죄로 되지 아니한다. 또한 범죄 행위시에 작용될
수 있었던 형벌보다 , 무거운 형벌이 부과되지 아니 한다.
제 12 조
어느 누구도 그의 사생활, 가정, 주거, 또는 통신에 대하여 자의적인 간섭을 받거나 또는
그의 명예와 명성에 대한 비난을 받지 아니한다. 모든 사람은 이러한 간섭이나 비난에
대하여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 13 조
1, 모든 사람은 자국내에서 이동 및 거주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2, 모든 사람은 자국을 포함하여 어떠한 나라를 떠날 권리와 또한 자국으로 돌아올
권리를 가진다.
제 14 조
1, 모든 사람은 박해를 피하여 다른 나라에서 비호를 구하거나 비호를 받을권리를 가진다
2, 이러한 권리는 진실로 비 정치적 범죄 또는 국제 연합의 목적과 원칙에 위배되는
행위로 인하여 기소된 경우에는 주장될수 없다.
제 15 조
1, 모든 사람은 국적을 가질 권리로 가진다.
2, 어느 누구나 자의적으로 자신의 국적을 박탈당하지 아니하며 자신의 국적을 변경할
권리가 부인되지 아니 한다.
제 16 조
1, 성인 남녀는 인종, 국적 또는 종교에 따른 어떠한 제한도 없이 혼인하고 가정을
이룰 권리를 가진다. 그들을 혼인에 대하여 , 혼인기간중 그리고 혼인해소시에 동
등한 권리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
2, 혼인은 장래 배우자들의 자유롭고 완전한 동의하에서만 성립한다.
3,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단위이며,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제 17 조
1, 모든 사람은 단독으로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재산을 소유할 권리를 가진다.
2, 어느 누구도 자의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박탈당하지 아니 한다.
제 18 조
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종교 또는
신념을 변경할 자유와, 단독으로 또는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그리고 공적으로 또는 사적으로
선교, 행사, 예배, 및 의식에 의하여 자신의 종교나 신념을 표명하는 자유를 포함 한다.
제 19 조
모든 사람은 의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간섭없이 의견을
가질 자유와 국경에 관계없이 어떠한 매체를 통해서도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 얻으며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제 20 조
1, 모든 사람은 평화적인 집회 및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2, 어느 누구도 어떤 결사에 참여하도록 강요받지 아니 한다.
제 21 조
1, 모든 사람은 직접 또는 자유로이 선출된 대표를 통하여 자국의 정부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2, 모든 사람은 자국에서 동등한 공무담임권을 가진다.
3, 국민의 의사가 정부 권능의 기반이다. 이러한 의사는 보통 , 평등 선거권에 따라
비밀 또는 그에 상당한 자유 투표절차에 의한 정기적이고 진정한 선거에 의하여
표현된다.
제 22 조
모든 사람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 보장을 받을 권리를 가지며 , 국가적 노력과
국제적 협력을 통하여 , 그리고 각 국가의 조직과 자원에 따라서 자신의 존엄과
인격의 자유로운 발전에 불가결한 경제적 ,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들을 실현할 권리를 가진다
제 23 조
1, 모든 사람은 일, 직업의 자유로운 선택, 정당하고 유리한 노동조건 그리고 실업에 대한
보호의 권리를 가진다.
2, 모든 사람은 아무런 차별없이 동일한 노동에 대하여 동등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3, 노동을 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과 가족에게 인간의 존엄에 부합하는 생존을 보장 하며
필요한 경우에 다른 사회보장방법으로 보충되는 정당하고 유리한 보수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4,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를 가진다.
제 24 조
모든 사람은 노동시간의 합리적 제한과 정기적인 유급휴가를 포함하여 휴식과 여가의 권리를
가진다.
제 25 조
1, 모든 사람은 의식주, 의료 및 필요한 사회 복지를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와, 실업, 질병, 장애, 배우자사망, 노령 또는 기타 불가항력의
상황으로 인한 생계 결핍의 경우에 보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2, 어머니와 아동은 특별한 보호와 자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모든아동은 적서에 관계
없이 동일한 사회적 보호를 누린다.
제 26 조
1, 모든 사람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교육은 최소한 초등 및 기초단계에서는
무상이어야 한다. 초등교육은 의무적이어야 한다. 기술 및 직업교육은 일반적으로
접근이 가능하여야 하며, 고등교육은 모든 사람에게 실력에 근거하여 동등하게
접근 가능하여야 한다.
2, 교육은 인격의 완전한 발전과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의 강화를 목표로
한다. 교육은 모든 국가, 인종, 또는 종교 집단간에 이해, 관용, 및 우의를 증진하며
평화의 유지를 위한 국제 연합의 활동을 촉진하여야 한다.
3, 부모는 자녀 에게 제공되는 교육의 종류를 선택할 우선권을 가진다.
제 27 조
1,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며, 예술을 향유하고 과학의
발전과 그 혜택을 공유할 권리를 가진다.
2, 모든 사람은 자신이 창작한 과학적 , 문학적 또는 예술적 산물로 부터 발생하는
정신적 , 물질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 28 조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 규정된 권리와 자유가 완전히 실현될수 있도록 사회적, 국제적
질서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제 29 조
1, 모든 사람은 그안에서만 자신의 인격이 자유롭고 완전하게 발전할수 있는 공동체에
대하여 의무를 가진다.
2, 모든 사람은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행사함에 있어 ,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를 당연히
인정하고 존중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과, 민주사회의 도덕 , 공공질서 및 일반적 복리에
대한 정당한 필요에 부응하기 위한 목적을 위해서만 법에 따라 정하여진 제한을 받는다.
3, 이러한 권리와 자유는 어떠한 경우에도 국제 연합의 목적과 원칙에 위배되어야 행사
되어서는 아니 한다.
제 30 조
이 선언의 어떠한 규정도 어떤 국가, 집단 또는 개인에게 이 선언에 규정은 권리와
자유를 파괴하기 위한 활동에 가담하거나 또는 행위를 힐수있는 권리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아니 된다.
국제 사면 위원회 ( Amnesty International )
인권 침해, 특히 언론과 종교의 자유에 대한 탄압과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투옥 및
고문행위를 세계여론에 고발하고, 정치범의 석방과 필요한 경우 그 가족들의 구제를 위해
노력하는 국제 기구 , 런던에 본부가 있으며 1977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1961년 5월 28일 런던에서 피터 베넨슨 변호사의 노력으로 설립 되었으며 , 그는 헝가리 ,
남아프리카 공화국 , 스페인 등지에서 정치범들의 변호를 맡았고 인권신장을 위한
국제 기관 창설에 힘써왔다. 1961년 - 75년 의 국제 사면 위원회 국제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숀 맥브라이드 로서 1974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1980년 대 초기에 Al 는 150명으로 구성된 국제 사무국과 40여 개국에 설치된 해외지부
그리고 100여개국 20만 정도의 개인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보통은 회보 , 연례보고서, 배경자료 등에 정부의 비행을 밝히는 일을 하지만 주요 활동은
전세계에 파견되어 있는 " 선정 위원회 " 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선정 위원회는3 -8명으로 구성 되어 있으며 " 양심수 " 에 관한 일정수의 사건을 맡아
석방때까지 관계 정부에 항의 편지를 낸다. 런던 본부에 있는 조사 부는 전세계의
인권운동가들 및 관련정당과 긴밀히 협조하여 활동정보망을 구성 한다.
가시철사로 감긴 불타는 촛대가 국제 앰네시티 의 상징이다.
국제 앰네스티( Amnesty: 사면 위원회 )는 세계 최대의 인권단체로 1961년 부터
지금까지 특정 정부, 이데올로기즘 , 종교, 고문추방운동, 사형폐지, 난민 보호운동
국제 사법정의 실천 운동 등 활동 모든 사람이 세계 인권선언과 국제 인권 기준에
명시된 모든 인권을 누릴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등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1977년 국제 앰네스티 의이름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으며 , 국제 앰네스티는
활동에 있어서의 효과성과 공정성 만큼이나 높은 신뢰성을 인정 받고 있습니다.
국제 앰네스티의 신뢰도는 유럽에서 모든 기업, 정부기관, 국제 기구들을 통틀어서
전세게에서 가장 신뢰받는 이름 중 하나임을 밝혔습니다.
1661년 5월 28일 " Amnesty 61 " 활동으로 인권운동 시작
1961년 12월 10일 ( 세계 인권선언일 ) 에 영국 런던에 위치한 성공회 교회인
성공회 성 마틴 교회에 촛불을 밝힘으로 인권의 소중함을 알림
1962년 양심수와 가족 구호를 위한 양심수 기금 마련
1970년 이스라엘의 아랍계 양심수 탄압의 실상 고발
1974년 9월 11일 실종자들의 사진을 실은 칠레 인권보고서를 작성하여
칠레 피노체트군사 독재 정권의 인권 침해를 고발 .
1976년 11월 16개국 167명의 구금된 노조 활동가 명단 발표 .
1977년 노벨 평화상 수상
1978년 국제 연합 인권상 수상
1979년 아르헨티나 군사 독재정권 당시 실종자 2665명에 대한 명단 발표
1984년 제 2차 고문 반대 캠페인을 전개로 유엔에서 고문 방지 협약을 채택하는 성과를 거둠
1987년 인권 침해와 인종 차별에 악용되는 미국의 사형제도 비판 ( 보고서 발간 )
2008년 7월 4일 노마 강 무이코 동아시아 조사관이 한국의 촛불집회 조사 목적으로
방문, 한국 정부와 경찰의 과잉진압, 특정 일간지 광고 기업체에 대한 불매 운동에 대해
엄단 방침을 밝힌 것등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현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지 조사
미국의 독립선언 이나 ,프랑스의 인권선언이 사회 전체가 공인하는 원칙으로 민주화를 이끌어
냈듯이 " 헌장 " 이 가지는 의의는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고 말했다.
인권은 항시적인 관심사 라고 밝힌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언급에서도
강조된바 있듯이 역사적으로 프랑스는 인권 보호의 전언을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
프랑스가 평화를 위해 일한다는것은 곧 인권수호를 위해 일하는 것과 같다.
아프가니스탄, 코트디부와르 , 레바논 , 코소보에 이르기 까지 프랑스군이 파병된
모든곳에서 평화와 민주주의 그리고 자유와 인권보호를 위해 싸우고 있다
인권문제에 있어 프랑스는 누구를 가르치고자 하는 입장이 아니라 , 인권의 발전을
이룩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세계 인권선언 60주년을 맞이하여 " 인류가족 모두의 존엄성과 동등하고 양도할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평화의 기초이다 " 라는 밝힌 세계 인권선언
전문 내용의 참뜻을 다시 금 되새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 총장은 인권 선언을 영구적인 " 인류의 희망의 유산 " 이라고
칭한바 있습니다. 호어스트 쾰러 독일 연방 대통령의 축사 에서
세계 인권 선언이 발표되고 6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인권 선언의 30개 조항을 모든
인간이 경험할수 있도록 만드는 일은 여전히 우리의 임무입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이룩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이며 , 양도할수 없고
분할할수 없는 인권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자유와 인권에 대한 외침은 유럽의 분단 극복
과 독일의 평화 통일의 동력이 었습니다. 또한 인권보호를 위한 토대로 지난 수십년간
주요 국제 협약을 통해 지속적으로 개선 되었습니다.
반고문협약도 그 좋은 예이며 , 민권과 정치 분야, 그리고 경제, 사회, 문화 분야의 권리에 관한
양대 국제 협약 역시 국제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기준을 제정 했습니다.
인권고등판무관 과 국제 형법재판소는 이러한 권리들의 실현에 기여 합니다.
또한 유엔의 보호 책임과 기업에게도 인권의 책임을 의무화 하는 글로벌 콤팩트 등과 같은
새로운 구상은 인권의 발전에 기여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간의 존엄성 보호와 인권 존중은 지구 여러곳에서
확보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고문을 당하고 굴욕을 겪으며 그들의 권리와
생존의 터전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또 그 어느때보다도 세계 여러 지역에서는 빈곤과 전쟁과
인권침해가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개발과 평화와 인권은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에
모두 함께 실현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하나뿐인 이 세상에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갈수 있습니다. 독일국민은 평화와 자유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서 우러나와 우리는 인권을 위해 노력해야 할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인권침해가 발생하는곳에서 우리는 침묵해서도 안되고 , 침묵 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이는 우리 독일에도 해당 됩니다. 인권은 늘 새롭게 다시 선언 되어야 하고 , 주장 되어야 하며
방어 되어야 합니다. , 바로 여기서 그리고 전세계에서 말입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 총장은 세계 인권 선언 60주년 기념행사에서 " 세계 인권선언이 탄생한 이후
먼길을 걸어왔지만 , 현실은 적어도 아직은 인권선언이 제시한 비젼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
면서 " 휴식을 취할 여유가 없다 고 밝혔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 수백만명이 처절한 빈곤과 차별, 잔혹한 폭력에 신음하고 있고
이 세계에서 야만적이고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 고 지적 했다. 그는 지난 세월 인권을 위해 싸워온 인권활동가, 여성, 장애인
인권 전문가, 비 정부기구 ( NGO ) , 언론 등을 거론한뒤 " 오늘은 그들의 날 " 이라면서
" 인권을 아는자는 권력을 이겨내야 한다 " 고 역설 했다.
반기문 총장은 " 유엔 인권 이사회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질수 있다 " 면서 그러나
회원국들은 당파적 입장이나 지역적 분열을 넘어서야 하며 UPR ( 보편적 정례 인권검토 )
제도를 활용해 어느 곳에서 발생하든 인권침해 행위에 대처하고 해당 국가들을 압박해
인권 사항들을 따르도록 해야 한다 " 고 덧 붙였다 .
이어 그는 " 우리는 모두 세계 인권선언에 담긴 영원하고 보편적인 원리들이 단지 영감이나
열망이 아니라 , 이세상 모든 인민 삶의 기초가 될때까지 노력을 계속할것을 다짐하자고
촉구 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도 메시지를 통해 지도력을 장악한
사람들이 세계 인권 선언에 걸맞은 인간적 세계를 구축할 용기를 지니고 있는냐 의 여부가
지금보다 더 중요한때는 없다면서 " 세계 인권선언이 모두에게 현실이 되느냐 여부는
여러분의 손에 달렸다 고 말했다.
한국은 인권 보호가 정치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국가의 존재 이유라는 사실을
배웠다 " 고 덧붙였다.
" 인권 OTL - 조국의 선언 " < 우린 자격이 있다. >
인권운동은 좌건 우건, 진보건 보수건 , 남이건, 북이건 일체의 권력에 의한 억압, 차별과
싸우면서 성장한다. 인권운동은 인권친화적 정치세력이 권력을 잡길 희망하고 또한
원조하겠지만 , 그러한 세력이 권력을 잡는 순간 인권운동은 그 권력과도 " 새로운 "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인권운동은 독자적 잣대와 문법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권운동은 인권의 법제화를 추구해야 하지만 , 그 속에 갇혀서는 안된다.
인권운동의 궁극적 지향은 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사람에 맞추어져야 한다.
보통 사람 하나 하나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자존감을 높이는것은 법제화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만약 인권운동이 법제화 운동으로 좁아진다면 인권운동의 주인은 법률가가 되고 말것이다.
인권의 이름 아래 이뤄지는 이권추구를 경계해야 한다.
인권은 개인과 특정 집단의 이권과 연관돼 있지만 , 공동체의 발전과 다른 공동체 구성원과의
연대와 협력을 모색하는 개념이다. 세계인권선언 제 29조의 말을 빌면 " 공동체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의무 " 가 잊혀져선 안된다. 중국 상인의 특징을 묘사한 책 이름을 빌리면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을 못 참는다 . 라는 모토가 인권운동속으로 들어오는것을 막아야 한다.
인권운동은 불의를 못 참는 데서 출발하며, 불이익은 나누고 조정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세계 인권 선언 제 28조는 "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 나와 있는 권리와 자유가 온전히 실현될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사회 체제 및 국제체제에 살아갈 자격이 있다 " 라고 규정한다.
오늘날 국가를 비롯한 모든 인간 공동체가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여야
한다는 생각은 마치 만고의 진리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일반화 되기 시작한 이념일뿐이고, 그 사상이 일반 시민들이 느낄수 있도록 실행 되기 까지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였고 여전히 많은 숙제를 안고 있는 실정이다.
구 공산국가를 비롯한 독재 국가에서 잔인한 인권유린이 자행되어 왔음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인권 국가라고 자처하던 미국에서도 여전히 흑인 인권의 보장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조직적이고도 대규모로 자행되는 인권유린 행위이다.
1970년대에는 캄보디아에서 폴포크 정권에 의하여 지식인과 도시민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학살이 일어났고 1980년대에는 이라크 정부에 의하여 쿠르드족 학살이 있었다.
1990년대에는 세르비아 민병대에 의하여 보스니아 거주 무슬림을 상대로 한 인종청소가
자행되었다 21세기를 전후한 시기에도 이러한 조직적인 인권유린과 대규모 학살은 여전하다.
수단 정부가 개입된 것으로 의심되는 다르푸르 학살사건이 벌어졌고 현재에는 짐바브웨 에서
정권욕에 사로 잡힌 독재자에 의한 인권유린이 벌어지고 있다.
모두가 문명 국가들과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는 동안에 일어나고 있는 비극들이다.
도와 주어야 할 우리의 인도적인 역할은 정치적인 이해 타산으로 한계에 부딕쳐 왔다.
우리 국내에서도 개방 개혁 정책으로 외국에서온 이주민과 근로자에 대한 인권 문제가
사각지대에 남겨져 있다. 안타까운 점은 구속력이 없는 세계 인권선언은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이다. 법적 구속력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선언 이 아니라
처음부터 " 조약 " 으로 만들어야 한다. 선언을 만드는 과정 초반 , 가장 논쟁이 된것도
" 조약 " 이냐 " 선언 " 이냐 문제 였다. 당시 유엔 회원국 중 소국들은 단순한 권고나
결의안이 아닌 큰 국가나 작은 국가를 똑같이 구속하는 조약을 원했다.
하지만 두 강대국, 미국과 당시 소련은 이행 장치 없는 선언 또는 원칙들을 담은 성명을
끈질기게 주장 했다. 논쟁은 결국 이행조항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 선언 " 으로 마무리 됐다.
60주년을 맞은 세계 인권 선언이 무색할 만큼 현재 제 3 세계와 인권 사각지대에서는
아직도 " 죽음의 행진 " 을 계속 하고 있다는것이다. 인종 청소와 민간인 학살 , 종교 및
신앙 탄압과 인권 박해가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다시말해서 , 개방 개혁 세계화 정책에서
사회 체계를 장악 하고 , 전쟁속에서나 있을 부역을 시키는 문화 충돌과 전쟁을 아직도 도미노
현상으로 전리품으로 인간을 취급하는 자행하고 있다는것을 이야기 하고 싶은것이다.
유비 퀘터스 바이오칩 RFID 시대에는 더욱 조심하지 않으면 , 미래의 사회체계 시스템이
감시체계의 , 최악의 모습으로 이끌릴수 있다는것을 명심하여야 할것이다.
최근 가장 새롭게 대두된 심각한 인권 위기는 올해 취임한 반기문 유엔 사무 총장이
" 최우선 과제 "로 공언한 수단 다르푸르 사태이다.
1956년 까지 수단을 지배한 영국은 수단 북부의 소수 아랍계 주민은 우대하고 남부와
서부지역에 거주하는 다수의 아프리카계 주민들을 차별했다. 2003년 수단 서부 다르푸르에서
" 수단 해방군 ( SLA ) 과 정의 평등 운동 ( JEM ) 이 주축이 돼 봉기가 일어났고 ,
이에 수단 정부는 " 잔자위드 ( Janjaweed ) 라는 민병대를 결성해 대응했다.
그러나 잔자위드는 더욱 심각한 살상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닫치는 대로 주민들을 죽이고
여자들을 강간 했다. 2003년 부터 지금까지 20만 명이 희생됐고,2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파괴된 가옥은 4만여채에 이른다. 정부의 비호를 받는 이슬람 민병대의 학살이 계속되자
국제 형사재판소 ( ICC ) 는 지난 7월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을 기소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석유라는 무기를 쥔 바시르는 꿈쩍하지 않았고 국제 사회도 냉담하게 방관하고 있다.
인권유린은 다르푸르만의 비극은 아니다. 고문과 학살을 비롯한 비인도적 행위들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 , 콩고민주공화국 , 레바논 , 라이베리아 , 네팔
중국 등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유엔 평화 유지군들은 , 대륙의 해방 기구의 군대들의
모습이 어린 자식들과 싸움을 할판으로 , 안타까운 인권 유린 모습에 가슴이 아파하고,
어처구니한 모습이다. 과거 이데올로기즘 시대에 소련의 붉은 군대 , 해병대의 스탈린식의
사회체계속에서 통일 해방전선의 전쟁전략과 전술로 유명한모습으로는 표적과 과녁으로삼아 ,
숙청과 부역을 시키며, 이지메 ,문화로 한번 물면 놓아주지 않고 , 승부가 결정질때
까지 , 죽을때까지 무력화 투쟁한다는 모습을 21세기전후 , 개방개혁 사회체계속에서 ,
탄압과 고립정잭과 테러와 보복 정책으로 자행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언론을 통해서
많이 보고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 집시들에게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 "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경제 불황의 여파로 지난 연말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은
헝가리는 참으로 어려운 여건을 직면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IMF 에 추가로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있지만 동유럽 헝가리 뿐 아니라 여러나라들이 동시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IMF 는 난색을 표하고 있으며 EU 연합에 속한 서유럽의 나라들 역시 이웃 나라의
어려움들을 살필 여유가 없다. 만약 IMF 에 다시금 요청한 구제금융을 받을수 없고
EU 연합에서도 헝가리의 어려운 형편을 외면하게 되면 디폴트 ( 채무불이행 ) 수순으로
갈것이라는 언론매체의 연일 나오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사실 헝가리의 어려운 경제문제는 단지 헝가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웃 서유럽 과의
더나아가서는아시아의 문제며, 지구촌의 전체 대륙의국가관계의 문제로 복합적인
문제로 , 경제의 회복이 헝가리자체에서 해결될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 세계 경제인
연합체의 문제도 아니라 , 지구촌 모두와 유엔 안보리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러한 이유로 대다수의 동유럽에 위치한 나라들의 형편이 비슷하지만 그중에서도
헝가리의 경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더욱 악화된 형편이다. 다시말해서 지구촌에서
시장경제가 나쁜나라의 본 이라고도 할수있을 정도로 이야기 할수 있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위기를극복하기 위해 국가의 재정지출을 줄이고자 사회, 복지 등에
관련한 보조금이나 연금 수혜자들의 연금을 줄여가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헝가리에 있는 집시민족은 극빈층으로 , 대다수가 국가에서 주는
보조금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집시들에게 그 동안 정부에서
지급해오던 유아 및 아동 보조금, 학비보조금, 실업자 수당, 등의 보조금등이 줄어들게
되자 많은 집시들은 당장 고리사채를 쓰는가 하면 외상으로 물건을 구입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난방이 필요한데 집시들의 가옥에는 가스나
유류를 이용한 난방을 사용하고 있는 가정이 그리많지 않다는 것이다.
혹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소수의 집시 가정에서나 이러한 난방이 가동될까 대다수의
집시 가정들은 나무를 때서 겨울을 난다 . 집시들이 살고 있는 마을 주변을 살펴보면
천지에 널린것이 나무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곳에서나 나무를 할수 있는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지방 자치 단체의 소유이거나 개인 소유여서 이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나무를 하게 되면 불법이다. 만약에 불법으로 나무를 하다가 경찰에
적발 되면 상당한 액수의 벌금을 내거나 죄가 중하면 교도소에까지 가야 하는경우도 있다.
시골 마을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땔감이 될만하면 무엇이라도 구할수 있지만 도시에 살고
있는 집시들은 땔나무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도시에 살고 있는 집시들은 평소에는
도시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한다. 그러나 겨울을 나는 동안에는 시골마을
보다 못한것이 땔나무를쉽게 구할수 없다는 점이다.
경찰들이 도시로 들어오는 길과 나가는 길에 서있다보니 외부에서 나무를 해올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어린 아이가 있는 어느 집시 젊은 엄마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옷가지를 태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겨울에 추위를 덜 느끼고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나는것은 가난한 이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말에도 " 배부르고 등 따뜻하고 ... " 라는 말이 있는데
아마도 " 등이 따뜻하다 " 는 의미는 추위를 느끼지 않고 " 라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된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본능적인 욕구는 " 따뜻함 " 이 아닐까 싶다.
몸이 따뜻하고 마음이 따뜻한 삶, 누구나 동경하는삶이라 생각한다.
힘든 삶을 사는 집시민족들에게 " 그리스도의 따뜻함 "을 전하고 싶을따름이다.
영국의 사학자 아놀드 죠셉 토인비 ( Amoid Joseph Toynbee )는 자신의 평생을 바쳐
저술한 역저 , 역사의 연구 ( A Study of History ) 를 통해 인류의 시작으로부터 현재까지
존재 했거나 존재해온 또는 존재하고 있는 인류의 문명수는 모두 28개 이고 그 중 완전히
성숙한 문명이 21개 , 문명으로 잉태되기는 했지만 탄생하지 못하고 유산된 문명이 2개
문명으로 탄생 하였으나 충실하게 자라나지 못하고 저지 당한 문명이 5개 라고 주장했다.
계속해서 그는 완전히 성장한 21개 문명중 현재 살아남아 있는 7개 이외의 문명은 다 멸망
하였고 현존하는 문명들도 서구 문명에게 절멸되었거나 동화되어 가고 있다고 피력했다.
역사속 문명의 흥망성쇠를 다룬 역사의 연구 ( A Study of History ) 에서는 문명의 쇠퇴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는데 문명이 쇠퇴하는 진실한 원인을 첫째 , 창조적인 소수가 창조적인
힘을 잃고 단순히 지배적인 위치의 수소로 변화함으로써 둘째, 이를 따르던 다수들이 모방을
중단하게 되고 그결과로써 셋째, 사회전체의 통일성 상실 등 세가지로 꼽았다
토인비가 주장한 문명의 흥망성쇠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 도전과 응전 " 이라고
할수 있다. 토인비는 문명이 도전과 응전에 의해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면서 발전되어
왔다고 주장했다. 인류의 역사는 각 시대마다 도전과 응전을 통해 역사의 문명을 주관하는
민족이나 국가가 계속해서 바뀌며 진전되어 왔으며 , 한문명이 다른 문명의 도전에 대하여
바른 응전이나 대응을 못했을때, 그 문명은 역사속에서 퇴출당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사실, 집시들문화와 유대인의 역사는 토인비가 주장한 문명이론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것이 유대인의 역사는 앞서 거론한 토인비의 이론과는 배치되는 많은 사실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 때문에 토인비도 유대역사를 축소시켜 역사의 화석이라고 주석에서만
가끔 언급했을 뿐이다. 유대인은 토인비가 지적한 문명의 쇠퇴 원인들을 모두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 그문명을 역사속에 찬란히 빛내고 있다. 짚시문화와 유대인의 창조적 소수가
지닌 탁월한 지도력은 나라가 없이 떠돌아다니는 상황에서도 그들만의 문명을 유지 시켰을
뿐만 아니라 신앙을 바탕으로 한 철저한 자녀 교육을 통해 다수의 모방자를 만들어 내는
그 문명을 더욱 발전 시켰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어떤 상황속에서도 항상 단결하는 강한
결속력을 지니고 있다. 도전과 응전의 개념도 유대인에게는 예외가 아닐수 없다.
역사속에서 짚시문화와 유대인만큼 많은 고난을 겪은민족은 아마 없을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인비의 이론처럼 역사속으로 사라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천년 동안 문명을 이어 왔다. 앞으로도 , 미래적으로도 , 짚시 문화와 유대인들은
역사가 있기에 이어갈것이다.
" 전세계에 흩어져 사는 경계선상의 경계인들인 , 디아스포라 민족들의
독립된 국가 의 미래를 향하여 꿈을 키우기 바랍니다. "
자유 민주주의의 성숙은 정치 선진화의 선결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 주체들이 먼저
헌법을 존중하고, 법칙주의의 원칙과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먼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주인의식만큼의 사상으로 기본 가치로 중요시 하여야 만 할것입니다.
"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 라는
어느 철학자의 외침속에서 이야기 할수 있는것입니다.
상대적 가치를 존중하는 포용만이 상쟁이 아닌 상생의 정치를 가능케 할수 있는것입니다.
정치적 지위가 높은 사람과 지식이 높은 사람들 일수록 더 높은 도덕성과 양심과 책임으로
솔선수범을 하여야만이 잘살수 있는 사회풍토가 정착될수있으며 더나아가서 사회를 위해
희생하고 기여한 만큼 , 그 희생과 봉사에 걸맞는 지위를 부여 받는 풍토가 정착돼야
정치의 질이 높아지고 , 정치가 국민의신뢰를 회복시켜야만 할수 있는 모습일것이다.
우리는 작지만 효율 적인 정부, 역동적인 시장의 원칙을 추구한다.
우리는 국민 개개인의 선택의 자유와 자유 경쟁이 만들어내는 높은
효율성과역동성을 신뢰한다.
우리는 결과의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이 훨씬 정의로울뿐만 아니라 사회의 진보시키고
성장을 지속할때만 진정한 분배의자본론적인 정치도 실현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 정책 운용의 방향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하며 , 사유 재산권과 기업 활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각종 제도와 규제를 과감히 , 개혁하여야 시장경제가 활력이 되살아날것이다.
지속적인 시장 개방을 통해서 경쟁력을 향상를 위해 구조조정을 적극 지지하여야 할것이다.
기업은 물론 , 근로자, 자영업자, 소상인, 주부, 고객들 등 모든 경제 주체에게 경제의욕을
불어 넣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사상적 기반으로 삼고자 하는 공동체 자유주의는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보는 자유주의를 공동체적 보완을 통해 발전 시키겠다는 사상을 말한다.
인류의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최선의 사회발전의 원리로 존엄과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정치적 자유주의 와 시장의 자원분배기능을 통해 경제 발전을 도모하여야만 한다.
하지만 자유주의가 개인의 정치 경제적 자유라는 가치만을 강조할 경우, 결과의 평등만을
강조할경우는 각종 경제적 격차와 차별, 사회적 갈등, 과 대립, 공동체적 연대의 균형,
개인의 파편화 등의 문제를 피할수 없다. 이러한 문제들이 계속 쌓이면 공동체는피폐해지고
결국에는 자유주의 자체의 지속도 불가능하게 된다. 이처럼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의 강조가
야기하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적 연대와 사랑 그리고 배려와 나눔을 증시하는
공동체 주의적 보완 과 접목이 요구된다. 이는인간은 본래 개체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적 존재라는 사회적인 철학 사상을 인식과 고취 시켜야만 하는것이다.
그것이 역사적인 현실에서 출발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 근대화 산업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된 결과 , 즉 빈부 격차 , 소외등의 문제와
극도의 개인주의적 경향이 나타나게 됐다. 역사적 맥락에서 자유주의는 다원화 문화속에서의
경쟁으로 신분적, 종교적 지배에서 과소평가된 역사의 문화적 오류로인해서 , " 죽음의 행진 "
이라는 탄압속의 사회체계를 만들어 지배와 간섭과 냉전의 암투적인 투쟁으로 발전하게 | |||